어느 사회건 변화론자와 안정론자라는 두 세력 사이에는 격렬한 갈등과 반목이 벌어질 것이며, 한국도 마찬가지로 둘 사이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심하게 벌어질 것이다. 안정론자 들이 정치적인 헤게모니를 쥐면 ‘나눠 먹기’와 평등에 에너지를 쏟아 부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철지난 사회주의의 아류를 21세기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기초로 삼게 될 것이다. 이런 선택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지적 에너지와 창조성의 억제로 말미암아 가난과 빈곤을 낳는 사회라는 결과를 불러올 뿐이다.
변화론자와 안정론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안정론자들은 변화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과거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세세한 규칙이나 계획을 세워 통제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믿는다. 그들은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정부가 모든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변화론자들은 안정이 정상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늘 변화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인간이 지닌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행착오나 실수까지도 인정한다. 그들은 무엇인가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다시는 인류 역사에 현실 사회주의건 이론 사회주위건 아니면 유사 사회주의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20세기의 실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격차의 확대, 빈부 차의 심화, 장기적인 불황, 불안감 증대 등 변화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환경은 일부 공동체에게 역사의 실책을 반복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세계화로 개방된 환경은 특정 공동체가 세계사의 순리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지만, 결국은 더 이상 사회적 비용을 감내할 수 없어졌을 때 그 공동체는 스스로 그 방향을 수정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동체의 정치적 선택은 구성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기도 하고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누가 변화론자인가를 또렷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글로벌경제에서 궁극적인 승자는 변화론자의 특성을 가진 개인이 될 것이다. 그런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 역시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버지니아 포스트렐의 정의를 바탕으로 정리한 ‘성공하는 변화론자의 7가지 습관’을 통해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식으로,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첫째, 변화론자는 자신이 틀렸을지 모르며 내일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기술이나 지식, 믿음에 대해 오만하지 않고 자신의 지식이나 기술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열은 시장에서 판가름 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둘째, 변화론자는 어떤 이에게는 최선이, 다른 이에게는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남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다양성을 헤아리고 관용을 생활화 한다.
셋째, 변화론자는 배우고 창조하며 세상과 발맞춰 나가는 것을 윤리적으로 소중히 여긴다. 그는 자유롭게 배우고 자기 뜻을 펼치며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때 행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넷째, 변화론자는 쾌락이 아니라 부단한 추구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보다 나은 것을 만들고 모다 나은 세상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한다.
다섯째, 변화론자는 일탈(새로운 사고)도 비판도 학습이라고 믿는다. 훗날 투자를 후회하게 될지언정 지금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알고 싶어 한다. 그는 혐오스런 실험도 참고 지켜볼 각오가 되어 있으며 또한 비판은 변화라는 역동적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믿는다.
여섯째, 변화론자는 선택과 경쟁이 일으키는 풍부한 가능성 앞에서 희열을 느낀다.
일곱째, 변화론자는 변화의 방식에 고정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시도와 실천 심지어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방식이야말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과정을 중시하며 그런 과정이야말로 인생에서 ‘정말로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믿는다. 그는 자유로운 실험과 학습의 기회가 보장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진보를 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