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용씨,태석이 승준이 아빠,투르크 전사….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그래요,난 당신을 그저 당신이라고 부를래요. 먼저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독일에 가서 응원하려고 호텔 예약까지 다 해놨는데 갑자기 몸이 아파 못 가게 됐잖아요. 그렇지만 여기서 더 열심히 응원할 게요.
당신이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동점골을 넣었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방망이질했는지…. 하도 좋아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렇지만 박수는 못 쳤어요. 자고 있던 애들이 깰까봐서요. 그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며 ‘우리 을용씨 만세?’ 하고 소리 없는 함성만 질렀죠. 본선 경기 땐 애들 안 재우고 함께 응원할 게요.
시간이 참 빨리 가네요. 당신이 한·일월드컵에서 뛰고 있을 때 뱃속에서 발길질하던 태석이가 벌써 아빠처럼 멋진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종알거리는 걸 보면 말이에요. 우리 태석이가 아빠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아세요? 아빠처럼 멋진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니까요.
당신은 지난 한·일월드컵 때 1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죠. 이번 월드컵에선 우리 귀염둥이 두 아들을 위해 두 골 넣어줘요. 그럼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죠. “이 욕심쟁이가 왜 자기 건 부탁 안 하나”라고요. 좋아요. 날 위해선 어시스트 2개만 부탁해요.
경기가 시작되면 내 눈엔 당신밖에 안 보여요. 당신은 언제나 열심히 뛰어다녀요. 한결같음,이게 당신의 매력이죠. 그래서 터키 축구 팬들도 당신을 ‘리용’이라고 부르며 좋아하잖아요.
문득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나네요. 1994년이었죠. 그때 당신은 강릉상고를 졸업하고 울산대에 진학했지만 유니폼만 받고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가세가 기운 탓이었죠. 그후 당신은 부산의 신발공장 등을 전전하며 축구와 인연을 끊었어요. 다행히 정치수 감독님 덕분에 당신은 실업팀 한국철도에서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었죠. 당신이 1999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당신은 강한 남자에요. 밑바닥에서 시작해 두 번이나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으니까요. 독일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 거두고 돌아오세요. 그럼 꼭 안아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