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열여덟 살의 너희들은 왜 술을 마시니?

sbcsbc 작성일 06.06.30 00: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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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다음 only에 블로거 기사로 뜬 걸 퍼왔습니다
긴 글이지만(스크롤 압박;;) 끝까지 읽어보시면 마음이 따뜻해질거에요-_-b
정말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군요 세상에 이런 선생님만 계시다면-_ㅠ
정말 강추~ 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_- 스크롤 초초초 압박입니당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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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3박 4일 현장학습을 가게 되는구나. 현장학습을 간다고 하면 왜 이렇게 설레는 건지. 3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선생님은 현장학습에 모두 참여를 해야 한다고 참으로 강조(?)를 했었지. 선생님이 수학여행을 못 갔었던 이야기까지 하면서 말이야. 지금도 선생님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구나. 여행이라고는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이 고작이던 70년대의 중학교 2학년 봄,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아이 몇 명이서 교실에 남아 자습을 하고 있었어. 그 때 맡았던 라일락 향기가, 그 보랏빛 꽃이 너무 눈물겨워서 선생님은 지금도 라일락을 보면 눈이 눈물이 고여 오곤 해.

선생님이 그랬었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지를. 선생님에게는 영원히 중학교 수학여행의 추억은 없어. 그래서인지 너희들이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 선생님이 더 설레곤 한단다.



여행 계획서는 모두 잘 썼는지 궁금하구나. 아마 입이 이렇게 나와 있는 공주들도 많을 거야. 3박 4일 현장학습 가는데 무슨 여행 계획서야, 하며 투덜거리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걸? 하하하. 그래도 무서운 담임의 과제이니 울며겨자먹기로 하긴 했을거라 생각해. 준비물도 꼼꼼히 적었겠지? 혹시 그 준비물에 소주, 맥주는 몇 병이나 적혀 있을까? 매년 현장학습을 가면서 선생님들은 ‘술과의 전쟁’이라는 말을 하곤 해. 물론 모든 아이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야.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는 거 알아.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이쁜 공주들 중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기서 그만 읽어도 괜찮아. 그렇지만 술을 준비물에 넣었거나(선생님에게 내는 계획서에는 적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람 포함해서), 여행가서 술 한 잔 정도는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주기 바래.



술과의 전쟁..... 고2, 열여덟 아이들의 여행에 왜 술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여학생 남학생을 이야기 하지는 말자. 술이 남학생에게는 괜찮고 여학생에게는 안 되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거야. 숙소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아이들의 가방 검사란다. 검사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으로 많은 술들이 가방에서 나오는 걸 보면서 매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곤 해. 물론 그렇게 빼앗기고도 너희들은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호텔 부근 편의점 등등에서 이리저리 술을 사서 밤새 마시곤 하지. 심지어는 콘택트렌즈 세척액 병에 소주를 가득 담아 오는 아이도 있더구나.(앗,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는 셈이 되나? 그 정도는 다 알고 있는 거라고? 하긴 늘 너희들은 선생님들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 넘는 우수(?)한 실력들을 발휘하곤 하니까.)



며칠 전부터 선생님은 과학 수업시간에 공부는 가르치지 않고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마침 산의 성질에 관한 단원을 배우고 있고 산의 종류 중 염산이 있고 염산이 우리의 위장에서도 분비가 되고 뭐 어쩌고저쩌고 그런 내용이 있어. 그 수업을 할 때면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하거든.

‘배고프면 왜 속이 쓰려요?’

그 질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 왜냐고? 현장 학습을 앞두고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수업 시간에 갑자기 교과서를 덮고 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이상하잖니?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다보면 자연히 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배가 고프면 속이 쓰린 이유는......그런데 술을 마시고 나도 속이 쓰리죠? 그건 왜 그럴까요?”라고 자연스럽게 이어 갈 수 있거든.

선생님이 왜 그렇게 까지 해서 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걸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3박 4일의 현장학습이 술로 인해 엉망(?)이 된 선배들이 많았단다. 엉망이란 말은 솔직히 선생님의 일방적인 관점에서야. 밤새 친구들과 술을 마신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도 몰라. 친구들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너무 좋았던 시간이 일수도 있으니까. 여행이 꼭 관광을 많이 해야 좋은 건 아니라고, 이렇게 친구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밤 새 술을 마신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많이 힘들어하고 버스 안에서는 잠을 자느라 창 밖 풍경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지. 아무리 좋은 곳에 데려가도 술로 괴로운 나머지 버스에서 내리려고 조차 않을 때가 많아. 겨우 달래서 버스에서 내리게 하면 이러지.

“뭐 봐야 하는데요? 여기 왜 왔어요?”

“기껏 이거 보라고 내리라고 한 거예요? 정말 짱나게.... ”

“저게 뭔데요? 에게게.... 겨우 요거 보러 여기까지 왔어요.”

“더워 죽겠는데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데요? 보기 싫다는데 왜 자꾸 보라는 거예요.”

“그런 거 관심 없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좋고 보고 싶으면 선생님 혼자 실컷 보고 오세요. 그리고 자세히 얘기 해주시면 되겠네요.”

그런 아이들에게 씨익, 웃음 밖에 보일 수 없을 때 참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린단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할까 싶어 인터넷으로, 책으로 이것저것 우리가 가게 될 곳에 관한 정보들을 모아서 가서는 버스 안의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해보지만 사실 귀를 기우리는 아이들도 별로 없더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조금의 희망을 걸어보지만 잠이 든 아이들에게 그게 들리겠니?



이렇게 쓰고 나니 너희들에게 ‘여행을 왜 가니?’라고 묻는 편지를 쓰는 것 같아져버렸네. 사실 그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주제는 술인데 말이야. 아이들과 여행을 하는 동안 밤마다 술을 마시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왜 술을 마실까, 참 많은 생각을 하곤 해. 솔직히 그 생각은 여행 동안만 하는 것은 아니야. 평소에도 자주 그 생각을 하게 된단다. 아이들이, 이제 겨우(이것도 선생님의 시각이겠지?) 열여덟의 아이들이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걸까? 가끔 너희들의 싸이 홈피에 가보면 방명록에서 심심찮게 보는 말

[야, 언제 한 잔 하자.]

[너 어제 정말 많이 마시던데? 술이 쑤욱쑤욱 느는 것이 눈에 보여.]

[100빵 기념 파티 어때? 이번에는 소주 5병은 마시기다.]

[한 사발 막창 집 새로 발견. 수요일 소주는 공짜. 우리를 위한 집이지.]

심지어는 친구들과 마신 소주병으로 하트를 만들고 그 안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더구나.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들어갈 만큼의 하트를 만들 수 있는 소주병이라.....

여기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희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을 절대 아니란다. 하지만 술 마시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졸업 한 제자들도 가끔 전화가 와서는

“선생님 술 한 잔 사 주세요.”라는 말을 ‘밥 한 끼 사 주세요’ 라는 말보다 더 많이 하고. 꼭 찝어 술이라고 하지 않고 [맛있는 거 사 주세요]하거나 월급 탔으니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해서 만나면 데리고 가는 곳이 거의 술집이야. 마주 앉아 보면 어찌나 다들 그렇게 술을 잘 하는 지. 선생님 제자들이 유독 술꾼들이 많은 걸까? 선생님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 다들 이렇게 말하지.

“에이~~~ 선생님 나이가 몇이신데 술을 못해요.” 아니면

“학교 다닐 때 술 입에도 안 대던 저도 직장 생활 몇 개월 만에 술꾼이 다 됐는데 무슨 말씀을? 그렇게 오래 사회생활하고 술을 못 마신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회식 자리도 있잖아요? 그 때도 설마 콜라 사이다 마시는 건 아니시죠?”

선생님은 [못] 마시는 게 아니고 [안]마신다고. 못 마시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안 마시는 것은 내가 선택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난 나의 선택에 의해 술은 안 마신다고 하면 어깨를 으쓱하며 ‘뭔 말씀인지....’하지. 술을 안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아이는 이러지.

"아참, 술 안 하시죠? 그래도 못 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안하는 거니 제가 사는 술은 한 잔 하세요.“



너희들에게 정말 묻고 싶다. 열여덟 살의 너희들은 왜 술을 마시니?

아이들은 대답하더구나.

“그냥....”

“힘드니까요.”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요.”

“다들 하잖아요.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잊어버릴 수 있잖아요. 다 잊고 술에 취해서.... 다 잊어버리고 싶은 거죠.”



며칠 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물었었다.

“부모님들 중 한 분이라도 술을 마시는 분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봐요.”하고.

그랬더니 모두들 손을 들더구나. 그러면서 한 아이는 이렇게 덧붙였지.

“어른 중에 안 마시는 사람도 있나요? 술을?”

그래서 다시 물었다.

“부모님의 술에 취한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이던 사람? 그래서 나도 나중에 자식에게 저렇게 술 취한 모습을 보여 줘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나요?”

아이들은 괜시리 옆에 앉은 짝꿍의 얼굴을 힐끔힐끔 보며 어색해 하더구나.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부모님들의 술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들이 참 많단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대부분이 술을 마신다는, 참으로 모순적인 것을 발견할 때마다.....

선생님은 술을 마시는 너희들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어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란다.



좀 극단적인 예인 듯 하지만 몇 해 전 중학교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하나 할게.

중학교 1학년 담임을 했을 때였어. 우리 반에 유난히 친구들을 괴롭히고 수업 시간에도 수업을 방해하는 일로 거의 매 시간 선생님들로부터 꾸중을 듣는 아이가 있었단다. 심지어는 내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지.

“자꾸 잔소리 하고 그러면 집에 가다 달려오는 차에 뛰어 들어 죽어 버릴 거예요. 연습장에다 담임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 죽고 싶다, 뭐 이런 거 몇 장만 적어 놓고 죽으면....아마 선생님 인생은 끝일 걸요. 저 별로 살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언제라도 그럴 수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온 이 엄청난 말은 아직도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단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고 아픈 시간들을 살아 왔을까, 하는 생각과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있은 방법을 과연 선생님이 찾을 수 있을까 많이 겁이 나기도 했었단다. 결국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이를 설득해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 보기로 했는데 결과는 생각했던 것 보다 심각했어.

그 아이의 엄마는 열아홉 살에 그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구나. 두 살 많은 남편이라고 해봤자 스물한 살. 그 둘 앞에 놓인 현실은 참으로 막막했겠지.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도 없었을 테고. 당장 분유 한 통 살 돈이 없는 현실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사랑이 아니라 구박과 학대 밖에 없었다고. 소식이 끊겨 버린 남편, 아이와 둘이 남은 엄마는 염색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우유병과 아이만 방안에 둔 채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가야했다더구나. 그렇게 아이는 엄마가 없는 그 많은 시간을 방안에 갇힌 채 자랐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 후로는 어린이 집에 맡겨졌지만 아이가 철이 들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은 술을 마시는 엄마였다는구나. 생활에 지친 엄마는 힘겨울 때마다 눈물과 함께 술을 마시곤 했는데...... 아이가 제일 싫은 것이 술에 취한 엄마였단다. 방문을 열면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엄마. 그런 날에는 방으로 들어서기가 죽기보다 싫어 방문을 닫고는 돌아서 나올 수밖에 없었대. 그런데 그런 날 그 아이는 무엇을 하며 밖에서 시간을 보냈을까? 술을 마시면서 보냈다는구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부터 아이는 그런 엄마를 보는 날이면 동네 놀이터 구석진 곳에서 술을 마시면서 보냈다는구나. 돈이 있는 날은 돈을 주고 사지만 주머니가 비어 있는 날은 지나가는 아이들 돈을 빼앗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은 날에는 훔치기도 했다고. 술 마시는 엄마의 모습이 싫어 술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는 아이. 자신의 현실이 너무 싫어, 그걸 잠시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 방법은 술을 마시는 일 밖에 없었다고. 그 아이는 엄마에게서 슬픔을 잊는 방법, 참혹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는 방법으로 술 마시는 것을 배운 거지.



선생님이 왜 이 이야기를 하는 지 이해하겠니?

너희들이 술을 마시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야.

‘힘들어서 한잔 했다.’

‘오늘 기분 좋을 일이 있어 한 잔 했다.’

‘그 놈의 회사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래서 잠시 잊을라고 한잔 했다.’

어른들의 이런 말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따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괴로울 때는 술을 마시는 거야,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술 한 잔 하면서 잊어버리는 거야, 하면서.

술에 관해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제는 일부러 드라마를 한 편 보았다. [불꽃놀이]라는 드라마로 젊은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같은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50분 동안 술 마시는 장면이 8번이나 나오더구나.




남자가 카페에서 혼자 술 마시는 장면

포장마차에서 남녀가 만나 술 마시는 장면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

여자가 일하는 사무실로 남자가 맥주를 사와서 마시는 장면

다시 포장마차에서 남녀가 만나는 장면

남자가 간 뒤 포장마차에 남은 여자 혼자 술을 마시는 장면

여자에게 달려갔던 남자가 여자의 헤어지자는 말에 병째로 술을 마시는 장면

그 남자가 오기를 기다리며 여자 혼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




이렇게 드라마에서는 너무 많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어. 괴롭고 힘들 때마다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앞에서 너희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힘들고 괴로울 때 술을 마시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을 보여주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그 방송 원고를 쓴 작가들도 그것 밖에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집단 최면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술을 마셔야 한다는. 술은 당연히 마셔야 한다는. 친구와 우정을 쌓기 위해서도 술 한 잔은 해야 하고, 축하 할 일이 생겨도 술 한 잔 하면서 축하해야 더 근사해 보이고, 대학생이 되면 생맥주를 마시고 클럽에 가서 춤을 춰야 젊음을 누리는 것이라 믿는, 직장 상사에게 잔소릴 들은 날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술 한 잔 정도는 해야 분위기 맞출 줄 아는, 사회성 있는 직장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의식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의식이라는 말이 있어. 이렇게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알지 못하는 사이 술을 권하는, 그래서 모두들 술을 마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집단 최면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광고도 한몫을 한다는 생각이야. 맥주 광고에서는 마치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젊음을 모르는 것처럼, 인생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 맥주 광고 속의 젊은이들의 그 행복해 보이는 얼굴들. 도대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들의, 정말 온몸으로 행복해하고 있는 광고를 보고 있으면 나도 저 맥주를 마시면 저들처럼 행복해질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니까. 동네 슈퍼마켓 유리창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지에는 이보영, 한가인 등등 예쁘고 청순하다는 여자 배우들이 소주 잔, 청하잔 등등 각양각색의 술잔을 들고는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잖니? 이 소주 너도 꼭 마셔야 해, 하는 표정으로. 누가 그러더구나.

‘저렇게 이쁜 얼굴로 술 한 잔 하자는데 안 마시면 되겠어? 아침까지 책임져준다는데, 아~~암 마셔야지. 마셔야 해.’

이렇게 너희들이 매일 보는 텔레비전과 곳곳에서 만나는 광고지는 너희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지.



선생님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술 마시는 사람들의 기분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맞아, 선생님은 술을 마시지 않아.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선생님이 술을 처음 마셔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 정말 힘든 시절이었으니까. 그래서 집이고 학교에서 참 여러 가지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던 시절이었고. 이제까지 배운 선생님들 중에 가장 많이 죄송한 분도 고1때 담임이었던 분이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해. 그 때의 나 같은 아이가 우리 반에 온다면 나는 그 아이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어.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은 복이 많아서인지 아직 나같이 애 먹이는 애를 만난 적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 지 몰라. 그걸 늘 감사하게 생각할 정도이니 대충 감이 잡히지? 그 때는 너무 힘들어서 힘든 것을 알리기 위해 사고도 많이 쳤었어. 모의고사 올 백지 사건도 그 중 하나였지. 모든 답안지를 이름만 쓰고 냈었거든. 집 학교 발칵 뒤집어 졌었고....

그 때, 열일곱 살의 선생님도 술의 힘을 빌려보려 했었어. 힘드니까 잠시라도 현실을 잊어버리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세 번으로 그만 두었어. 이유는 3가지.

술로 잠시 잊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거

술로 인해 빼앗기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거.

술로 인해 가난한 아이의 주머니가 더 가난해진다는 거.



그래서 그 후로 지금까지 술을 마시지 않지. 물론 가끔 특별한 경우에는 마시기도 해. 일년에 한두 번.

난 술 안 마셔도 친구들과도 우정도 쌓고 잘 지내고, 가슴 속 이야기도 터 놓을 수 있던데?

난 술 안 마셔도 노래방 가서도 밤새 놀 수 있고, 술 안 마셔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슬픔을 견뎌 낼 수 있었어. 예슬이와 정빈이 사이에 두 아이를 잃고도, 할머니의 죽음에도, 정빈이의 몇 번의 생사를 넘나드는 큰 수술에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회복하지 못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우리 탁이의 죽음 앞에서도..... 술이 아니어도..... 술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술 한 잔 하고 잊어버리라고. 그럼 술이 깨면 달라지나? 그래도 술이 취해 있을 때는 잊을 수 있지 않느냐고? 그 몇 시간을 위해서?



그런 선생님이 올 해 들어 술을 정말 많이 마신 적이 있어. 우연히 상담일 때문에 알게 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선생님이 너무 귀찮다는 거야.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해서 혼자 살고 있는 아이인데 자기는 자기대로 알아서 살 테니 그냥 가만히 두라더군. 술을 아주 많이 마시다 보니 늘 집에 가면 술병이 뒹굴고 있곤 했어. 그러더니 어느 날 불쑥 그러는 거야. 술을 마셔서 자기가 선생님을 이기면 자기를 그만 만나러 오라고. 영원히 내버려 두라고. 그래서 선생님이 그랬지. 만약에 선생님이 이기면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고. 아주 코웃음을 치더군. 자신만만해하면서. 그동안 만나면서 술 한 잔 입에 대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아마 그 아이는 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술을 선택했던 모양이야. 술을 잘 마시는 것이 무슨 큰 능력인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였거든.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선생님의 승리였어. 그 아이는 자신의 주량을 넘어 나를 이겨보겠다는 욕심을 부린 탓에 결국 병원 응급실까지 실려 가야 했었거든.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 길로 술을 끊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지. 검정고시 합격증 들고 집으로 들어가기로 약속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이야. 그 아이가 선생님과의 약속을 꼭 지키리라 믿어. 석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언제가보아도 그 아이의 방에는 더 이상 술병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거든. 합격하면 축하주 한 잔 사줄까, 해도 목소리 낮춰 이러지.

“됐거든요. 저 이제 술 안 마시거든요. 그리고 축하를 꼭 술 마시며 해야 하나요? 축하주 말하는 분, 선생님 맞아요?”



무조건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니야. 술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힘든 것을 잊기 위해서라는 등의 어른 흉내를 내면서가 아닌 너희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선생님은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야. 늘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그리고 살면서 내게 손해되는 일은 선택을 안 하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야. 그래서 선생님은 술을 안 마시는 것을 선택했어. 술은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 그래서 지금도 그 어느 자리에서도 이렇게 말 하지.

“저는 술을 안 한답니다. 그러니 권하지 마세요.”



어른들 중에 술을 마시니 너무 좋으니 자식인 너도 꼭 마시거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시회 생활하는데 술이 필요하니 어른들 앞에서 잘 배워야 한다, 하며 가르치는 분들도 적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 분들도 이미 술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깔고 하는 것이니.....

술은 무조건 나쁘니 절대로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현장 학습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진지하고 솔직하게 한 번 물어 봐줘.

나는 왜 술을 마시지?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해보길 바래.



※ 인문계, 실업계, 중학교로 6번을 근무지를 옮겨 다니면서 참 많은 아이들을 만나왔습니다. 솔직히 현장 학습을 앞두고 매년 이 편지를 쓰고 싶었으나 참으로 망설이던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제가 담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고 이 편지는 집의 아이 예슬이와 학교 아이 모두에게 쓰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 : http://blog.daum.net/rhea84/7475894

이영미 | 모성애결핍증환자의 아이 키우기
http://blog.daum.net/rhe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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