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명연설]마틴 루터 킹 "I have a dream" 해석전문

단군의장손 작성일 06.07.26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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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28일 워싱턴 D.C에서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열린 평화 행진에 참가한 마틴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유시위로 기록될 오늘 이 시간, 여러분과 함께 있으니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100년 전, 지금 우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저 동상의 주인공 에이브러헴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서에 서명했습니다. 노예해방선언은 사그라지는 불의의 불꽃 속에서 고통 받아온 수백만 흑인노예들에겐 희망의 봉홧불 이었으며, 기나긴 속박의 밤을 걷어내는 찬란한 기쁨의 새벽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흑인들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흑인들은 차별의 족쇄를 찬 채 절름거리고 있습니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 흑인들은 물질적 풍요의 바다에서 가난의 섬 안에 고립되어 살고 있습니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흑인들은 미국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고통당하며 망명객처럼 부자유스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치욕스런 상황을 극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이곳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명목뿐인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 수도 워싱턴에 모였습니다. 미국의 건국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명한 헌법과 독립선언서의 화려한 문구들은 약속어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흑인,백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양도할 수 없는 ‘생명권,자유권,행복추구권’이 있다는 내용의 약속어음에 서명을 했습니다.

미국은 흑인시민에 대해서 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흑인들에게 이 신성한 약속어음에 명시된 현금을 지급하지 않고 ‘예금잔고 부족’이라는 표시가 찍힌 부도수표를 되돌려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라는 이름의 은행은 결코 파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기회라는 이름의 거대한 금고 속에 충분한 잔고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어음이 명시하는 자유와 정의를 되돌려 받기 위해서 이곳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미국에게 현재 사태가 긴급함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이 신성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지금은 호사스럽게 냉각기간을 가지거나 점진주의의 진통제를 먹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흑백차별의 어둡고 황폐한 계곡에서 벗어나서 인종적 정의의 양지 바른 길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미국을 위태로운 인종차별의 모래밭에서 건져내서 동포애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주님의 어린양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미국이 현재 사태의 긴급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주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자유와 정의의 상쾌한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흑인들의 정당한 불만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여름은 결코 물러가지 앟을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미국이 사태의 긴급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상시처럼 행동한다면, 흑인들이 분노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사람들은 대단히 불쾌할 것입니다.

흑인들의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 미국은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정의의 새벽이 밝아오는 그날까지 폭동의 소용돌이가 계속되어 미국의 토대를 뒤흔들 것입니다. 정의의 궁전에 이르는 문턱에 서 있는 여러분께 이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당한 자리를 되찾으려는 우리의 행동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명심하도록 하십시요.자유에 대한 갈증을 증오와 원한으로 채우려고 하지 맙시다. 위엄 있고 규율 잡힌 태도로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는 창조적인 항의운동을 물리적 폭력으로 타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거듭해서 당부하지만, 우리는 물리적 힘에 대하여 영혼의 힘으로 대처하는 당당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흑인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투쟁성에 이끌려 백인들을 불신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가한 많은 백인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백인형제들 중에는 백인과 흑인이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백인들은 자신들의 자유는 우리들의 자유와 단단히 얽혀 있음을 인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제나 앞장서서 행진해야 합니다. 결코 뒷걸음질 쳐서는 안 됩니다.

헌신적인 시민권 활동가들에게 “당신들은 도대체 언제 만족할 거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흑인에 대한 경찰들의 야만적인 폭력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행으로 지친 우리의 몸을 여러 도시의 호텔과모텔에 누일 수 없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들이 작은 빈민가에서 큰 빈민가로 이주할 자유밖에 누릴 수 없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백인전용’이라는 표지판 앞에서 우리 아이들의 자존심과 인간적 존엄성이 짓뭉개지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큰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좁디좁은 감방에서 방금 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자유를 달라고 외치면 갖은 박해를 당하고 경찰의 가혹한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지역에서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받는 고통은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속 활동합시다.

미시시피로 돌아갈 때, 알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루이지애나로 돌아갈 때, 그리고 북부 여러 도시의 빈민가로 돌아갈 때, 언젠가는 이런 상황은 변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갑시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친애하는 여러분께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역경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어린이들이 백인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남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 내어 희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나라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내 꿈이 실현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나의 조국은 아름다운 자유의 땅, 나는 조국을 노래 부르네. 나의 선조들이 묻힌 땅,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선조들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는 땅, 모든 산허리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하라!” 주님의 모든 자녀들이 이 구절을 새로운 의미로 암송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우리의 꿈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뉴햄프셔의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펜실베니아의 웅장한 앨러게이니 산맥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록키산맥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구불구불한 산비탈에서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조지아의 스톤 산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수많은 언덕들과 둔덕들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전국의 모든 산허리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이렇게 된다면, 모든 주, 모든 시, 모든 마을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린다면, 흑인과 백인, 유태교도와 기독교도, 신교도와 구교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주님의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오래 된 흑인영가를 함께 부르게 될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전능하신 주님의 은혜로,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얻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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