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대펌] 설겆이

슈렉언니 작성일 06.11.22 02: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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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프다는 아내의 투정에, 오늘은 내가 설거지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갔습니다.


별로 많지도 않은데, 오늘만큼은 내게 설거지를 지키려고 작정을 한듯,

아내는 등에 파스를 붙이면서도 TV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내가 귀여워서, 혼자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고무장갑을 집으려는데,




문득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울퉁불퉁, 까칠까칠하다못해 지문마저 다 닳아버린 어머니의 손이 생각나,

넋을 잃고 빨간 고무장갑 한켤레를 응시하며, 나는 옛 추억에 잠겼습니다.




고무장갑이란게 흔하지 않고, 농촌 사람들은 아예 몰랐던 어려운 그 시절,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차가운 물로 빨래는 물론이고 설거지를 매일 매일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늘 손이 시려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장사하느라 바쁘셨던 아버지와

골방에 틀어박혀 수험공부에 정신이 없던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서울에 자주 가던 바깥양반덕에, 늘 새 물건을 자랑하시던 이웃집 순철이 어머니께서

새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마을 빨래터에 나타나셨습니다.

한창 늘어놓았을 그 자랑에, 어머니는 부럽기도 하셨고, 한편으론 속이 상하셨을겁니다.


모두 잠이 들 준비를 하던 그 날 밤, 넌시지

"아효...나도 고무 자갑 한켤레 있으면 얼마나 좋아?"

들릴듯 말듯...혼잣말인냥 웅얼웅얼 하시던 어머니를 보시며,

아버지께서 지으셨던 따듯하고도 측은했던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집어들려던 고무장갑을 내려놓고, 찬물을 틀고 맨손으로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시리고 아린 손...세제가 묻자 금방 빨개지고 꺼칠해진 나의 손...



그깟 설거지 하는데 뭐가 그리 오래걸리나, 하고 궁금히 여긴 아내가 내 곁으로 오더니,

"어머! 당신 왜 고무장갑 안껴요? 손 미끄러져서 그릇 깨면 어떡하려고 그래?"

하더니 , 빨개진 내 두 손을 보고 할말을 잃습니다.

난 그저 넌지시 웃을 뿐이었고요.


저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려 얼른 헛기침을 하고

손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설에는 어머니께

고무장갑 한켤레와 손에 바를 영양크림을 사드리라 마음먹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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