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그녀는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올해로 서른이란 나이에 사뿐히 올라섰는데,
지금껏 해본 연애라곤 스무 살 때의 첫사랑이 다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조카도 그보다는 많이 해봤을 것이다.
친구들의 반은 벌써 결혼을 했고,
나머지 반도 애인이 있는데, 10년 가까이 싱글로 지내온
그녀는 이제 독신주의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니었다구!! "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고전적인 코스에 따라 염라대왕과 대면한 그녀는
살아 있을 때 아무에게도 따지지 못했던 것을
그에게 따지기로 했다.
"내가 왜 처녀귀신이 돼야 하는데요? 이 정도 인물에,
공부도 할 만큼 했고, 돈도 벌 만큼 벌었단 말이에요.
왜 나는 남자와 인연이 없었던 거예요? "
그녀의 푸념을 듣고 있던 염라대왕은 귀찬은 듯
장부를 펼쳐보더니 이렇게 대꾸해 주었다.
" 인연이 없긴 뭐가 없어? 결혼까지 할 수 있는 인연을
스물여섯 번이나 보내줬는데, 자기가 다~ 놓쳤구만. "
그럴 리가 없다고 그녀가 바득바득 우기자,
그는 큰소리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 어디보자.... 정축년에, 매일 삐삐 치던 남자가 하나 있었고,
무인년에 집에 초대한 남자가 한명 있었는데.... 쯧.., 안 갔구먼.
기묘년에 두명, 경진년에 세 명.. 그리고 갑신년!!!
요땐 아주 기막힌 인연을 매일 아침 커피자판기 앞에서 만나게 해줬구먼! 뭐.
다 끝난 마당에 하는 얘기지만,
이 남자 놓친 건 정말 실수한 거야. "
자판기 남자라면, 그녀도 기억이 났다.
서른 살 때, 영어회화학원 새벽반에서 만난
연하의 대학원생이 틀림없었다.
그 사람이 내 신랑이 될 수도 있었다고?
염라대왕의 장부를 빼앗아 확인해보려고
두 팔을 휘두르는 순간, 그녀는 잠에서 깼다.
그녀는 아직 서른 살이었고, 학원 시간에 늦어 있었다.
물론 그녀의 경험은 매우 희귀한 경우에 속한다.
우리는 '인연' 이라는 말을 어렴풋이 믿고는 있지만,
그 인연이란 것이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 놓치면 후회하십니다!! " 라고 외쳐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 주위의 인연들을 좀더 조심스럽게,
좀더 소중하게 다루는 일일 것이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서
먼 훗날 장부 속의 이름들을 본다면,
가슴 뻐근한 후회를 어떻게 견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