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건물 아주머니...

Jackka 작성일 07.01.05 02: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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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막 만 24세가 된 청년입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지금은 미군에 입대해서 원주근처의 미군부대에서 복무하게됬는데(욕하지는 말아주세요, 한국군대도 갔다왔으니ㅡ.ㅡ;; 오뚜기부대의 악몽ㅠ.ㅠ), 부대내의 사병숙소에서 살고있습니다. 4층짜리 건물인데 각 층마다 세탁기,건조기가 2대씩 있습니다. 어제는 밀리다 밀리다 빨래자루가 빵빵해져서 빨래를 했더랩니다 ㅡ.ㅡ;; 근데, 이 건물이 보통 기숙사같은건물보다 좀 길게 쭉 늘어져 있어서 각 층마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세탁기 2대로 빨래할려니 날마다 세탁기 비어있을 날이 없고, 지키고 서있지 않는한 기계끝나자마자 쓸려는 다음사람이 막 아무데나 꺼내서 던져놓기 일수... 어떤때는 다 마르지도 않은걸 그냥 꺼내서 먼지투성이 구석에 쌓아놓고 지거 돌리는 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얍삽한 저는 저희층 세탁기를 안쓰고, 사람들은 안 살고 행정업무보는 사무실만 많은 일층으로 내려가서 거기 있는 세탁기를 씁니다ㅡ.ㅡ; 거기는 조그만 방안에 세탁기건조기2대씩하고 다림판, 청소도구 등등 이 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각 숙소 건물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 아저씨께서 한분씩 계신가봅니다. 각 건물 일층의 그 방은 그분들 전용작업실이고... 저희건물은 어떤 나이든 한국아주머니가 청소하시는거 같은데 전 몇번 지나가면서 인사만 하고 별 관심도 없어서 잘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좀 편하게 빨래할려고 염치불문하고 무단으로 세탁기를 쓴 저입니다;;

빨래하고 건조기에 넣어서 돌리기까지 했는데 밤늦은 시간에 세탁물 가지러가기가 귀찮아서 게으른 저는 그냥 생까고 자버립니다. ㅡ.ㅡ; 낼 아침에 가져올 생각으로...; 그랬는데.. 담날이되서는 새까맣게 까먹었다가 저녁즈음되서 생각이 나는겁니다; 그래서 황급히 가봤더니 문열고 들어가는데 건조기위에 제 빨래가 있는겁니다. 그래서 전 '아, 아줌마가 건조기 쓸라고 꺼냈나보다. 그래도 버리진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져갈라고 가까이 가는 순간 존내 어이가 없었습니다.

가까이가서 보니까 빨래를 하나하나 다 개어서 차곡차곡 쌓아놓은게 아니겠습니까;; 빨래자루를 반으로 접어서 빨래를 그 위에 개어 놓고 남은 자루로 덮어서 완전히 패키지를 만들어 놓으신겁니다; 무슨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듯... 생각해보니 맨날 빨래를 하시는것도 아닐테고 그옆에 건조기가 한대 더 있는데 건조기를 쓸려고 그러신게 아니라 일하러 나오셨다가 왠 가져가지도 않은 빨래가 들어있는걸 보시고는 그냥 개어주신 모양입니다 ㅠ.ㅠ 그래서 그걸 들고 방으로 올라오는데 왠지 모를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 막 났습니다.;; 나이 50은 족히 되어보이시는 주름살진 아주머니께서 자기 세탁기를 맘대로 갖다 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빨래를 보고 도리어 다 개어놓으시다니....

순간 교회에서 은촛대를 훔쳣다가 걸려서 끌려같더니 신부가 선물로 준거라면서 은식기까지 꺼내주었다는 장발장의 일화가 생각나면서 제가 무슨 장발장같은 죄인이 된느낌이었습니다ㅡ.ㅡ;

세상엔 이런 아줌마같은 분도 있는데 전 이 나이를 쳐먹도록 모르는 사람한테 인정을 베풀기는 커녕 조금이라도 제 이익 챙겨먹을라고, 조금이라도 손해 안볼라고 주위사람들을 다 경계하듯 살아온게 새삼 전나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엇습니다 ㅡ.ㅡ;; 아줌마께서는 스스로 따듯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저는 스스로 이 세상을 각박하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비록 제가 새파란 젊은이이고 그분은 늙어가시는 아줌마이지만, 왠지 제 생각에 그분의 삶에는 저한텐 없는 여유와 행복, 그리고 따듯함이 있을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나를 헐뜯고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내가 베풀 수 있다면 이 세상이 그렇게 나쁜곳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 쓰고 보니 별일도 아닌걸 혼자 감동해서 주절주절 한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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