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가 어느 날 숲 속을 다녀온 친구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 친구는 별반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헬렌 켈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눈 뜨고도 두 귀 열고도 별로 특별히 본 것도 들은 것도 없고, 할 말조차 없다니…. 그래서 비록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였지만 그녀는 스스로 만약 자신이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낄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제목으로 '애틀랜틱 먼스리' 1933년 1월 호에 발표했다.
헬렌 켈러의 글은 당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을 잔잔히 위로했다. 우리가 무심코 마주하는 이 세계가 날마다 기적 같은 것임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글을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았다. 한때 우리 영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있게 해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 만져서만 알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다. 그러곤 밖으로 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나서,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하루 종일 인간이 진화해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겠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 가 공연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이 사흘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 켈러가 그토록 보고자 소망했던 일들을 우리는 날마다 일상 속에서 마주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는 모른다. 아니 잊고 산다. 그래서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고! 내일이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되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인지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날마다 기적이었다.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살아온 기억밖에 없는데 무슨 기적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왔으면서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 아닌가. "힘들어 죽겠어"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아직까지 죽지 않은 것도 기적이다. 큰 기업, 작은 기업 할 것 없이 숱한 파산과 부도의 위기에서 그래도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다. 그 와중에 3000억 달러의 수출 금자탑을 쌓은 것도 기적이다. 더구나 북핵 위기와 전시작전통제권 파동 속에서 참으로 특별한 대통령을 모시고도 이 나라가 아직도 건재한 것 역시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까 싶다.
기적 같았던 2006년도 하루가 남았다. 그 남은 하루도 기적의 날로 만들자. 그리고 2007년 새해는 또 다른 기적의 한 해가 되게 하자.
“27년만에 본 세상… 아름답고도 이상해”
수술로 시력찾은 41세 농부 눈에 비친 ‘2006년’ 가족들과 자연을 보니 너무 예뻐서 눈물이… 노숙자 왜이리 많고 땅투기는 또 뭔지…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지 27년 만이었다. 전남 담양군에서 농사를 짓는 김인찬(金仁讚·41)씨는 작년 7월 각막 이식 수술을 받고 오른쪽 눈 시력을 되찾았다. 일생 동안 갈망했던 한 줄기 빛이 오른쪽 눈으로 새어든 순간 처음 본 것은 아내와 세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예쁠 줄 몰랐는데, 아내와 아이들 피부가 너무 뽀얗고 고와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눈을 뜨니 마음이 열렸다. “오늘 아침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해가 구름에 가려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어요. 얼마나 예쁜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도, 날아가는 새도,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도, 밤 하늘에 반짝이는 달과 별도 그는 마냥 아름답고 신기하고 보기 좋다고 했다. “꼭 철 안든 어린애 같죠? 세상엔 볼 게 많네요.”
어둠, 짙고 길었다. 7살 때 작은형과 놀다 왼쪽 눈을 다친 뒤 오른쪽 눈에도 하얗게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14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중학교를 그만뒀다. 찾아가는 병원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길이 없었다. 김씨는 “꼬박 10년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먹고 자고 놀기만 했는데, 처음 3년 동안은 매일 꿈에 학교가 보였다”고 했다. 시각적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져 갔다. 어느 새 꿈도 꾸지 않게 됐다.
25살 때 아버지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줬다. 뿔에 받히고 뒷발에 차여가며 더듬더듬 송아지를 돌봤더니 이 놈이 자라서 새끼를 쳤다. 두 가지 소망이 싹텄다. 결혼을 하고, 눈을 뜨는 것.
37살에 첫 번째 소망을 이뤘다. 다니던 교회 지인이 중국 자매 교회를 통해 중매를 섰다. 중국 교포 장귀화(28)씨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에게 시집왔다. 장씨는 “이름이 착해 보였고, 사람이 착해서…”라고 했다. 아이도 셋이나 생겼다.
그리고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은 그의 눈, 서울 강남성모병원이 기적적으로 살려놓았다. “다들 안 된다고 했던 소망 두 가지가 다 이뤄졌으니, 내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세상을 알아갈수록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늘어간다. “그 왜, 노숙자들 있잖아요. 얼마 전에 새벽 열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내렸는데, 깜짝 놀랐어요. 누워 있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싸우는 사람…. 아, 무섭더라고요. 세상이 뭐가 잘못된 건지.”
그가 사는 조용한 시골 마을까지 휩쓸고 지나간 투기 광풍도 낯설었다. 근방에 혁신도시가 들어선다는 루머가 돌면서 5만원 하던 땅 한 평 가격이 두세 배로 뛰었다. 순식간에 이 마을 땅 절반이 바깥사람들에게 팔렸다. “농사 지어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땅 사고 팔아서 먹고 사는 시대가 됐어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뉴스를 보면 끔찍한 살인사건은 왜 그렇게 많은지.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많이 하는지. 나라의 어른이면 말을 좀 아끼면서 백성들의 귀감이 돼야 할 텐데….” “근데, 나 같은 사람이 뭘 알겠나요…”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27년 만에 눈을 뜬 농부 앞에 펼쳐진 2006년 대한민국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저는 희망을 알아요. 제가 두 가지 소망을 얘기했을 때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둘 다 거짓말처럼 이뤄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믿어요.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걸.”
김씨가 잠든 세 아이를 바라봤다.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어둑해진 바깥에는 찬바람이 휘몰아쳤지만 방 안에는 온기가 감돌았고, 아랫목에서는 청국장 익는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