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짱공유의 유저분들은 꿈이 있는지요.
저는 꿈이 없습니다.
.... 저와 저의 꿈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이야기 하도록 하죠.
앞으로 종종 [꿈은 이루어 진다]는 타이틀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 글들이 뭔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 되길 희망합니다.
첫번째로 윌마 루돌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윌마 루돌프(Wilma Rudolf,1940-1994)
1940년 6월 23 일,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서 윌마 루돌프라는 흑인 여자아이가 태어 났습니다. 체중이 겨우 1.3kg의 미숙아로 태어난 그녀는 22명의 자녀중 20번째 아이였습니다. 4살때 그녀는 성홍열과 소아마비, 폐렴을 앓았습니다. 아이가 20명이 넘는 집안에서 그녀가 변변한 치료를 받기란 힘든 일이었습니다. 운좋게도 죽을 고비는 넘겼지만 후유증으로 6살에 왼쪽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그녀에게 평생 걸을 수 없을거란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같이 그녀가 다시 걸을 수 있도록 훈련시켰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까운 공원에 데리고 나가 걷는 연습을 시켰고 그 어머니의 정성스러움이 그녀를 귀찮게 여기던 가족들의 마음까지 움직여 가족들도 윌마의 다리를 매일 맛사지 해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윌마의 건강 회복을 위해 부모와 형제들은 2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의 다리를 마사지 했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윌마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이웃 농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80Km나 떨어진 병원을 찾아가 윌마가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버스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데, 사람이 많아서 꼬박 서서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드디어 8살때 윌마는 금속보조대와 목발에 의지하여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뒷굽이 높은 구두를 특별히 맞춰 신고 목발을 짚으며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다른 아이들 처럼 뛰어 놀 수 없던 윌마는 바구니에 농구공을 던져 넣는 놀이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스스로 걷기위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9살이 됐을 때 그녀는 다리에 차고 있던 금속 보조 대를 스스로 떼어 내고 목발도 없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1살때 정도 부터는 춤추는 듯한 이상한 걸음걸이긴 하지만 목발 없이 혼자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해 그녀는 학교의 농구부에 입단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육상도 병행했습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든 그녀에게 농구와 육상이란 말도 안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육상을 시작하고 경주에 참가한 그녀는 언제나 꼴찌로 들어왔습니다. 뒤뚱거리며 뛰는 그녀가 온전한 두 다리로 질주하는 상대들을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렇지만 윌마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고자하는 그녀의 열정에 불가능이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일반인의 배이상의 훈련으로 그녀는 조금씩 빨라졌고, 마침내 1년정도 지난 어느 대회에서 그녀는 1등으로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습니다.
그녀는 버트고교에 입학한 뒤 농구팀에서 주득점원으로 활약했으며 워낙 빨라 '모기'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윌마의 특출한 운동 소질을 인정한 학교에서는 그녀를 위해 육상부를 창단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개최된 각종 아마 육상 경기 대회에서 그녀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런 그녀를 유심히 지켜본 사람은 테네시 주립대 육상코치 에드 템플이었습니다. 템플은 개인지도를 자청하며 윌마를 성심성의껏 보살폈고 그녀를 자신의 대학으로 데려와 함께 연습했습니다. 그는 윌마의 재능과 열정을 알아보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의 훈련은 혹독했습니다. 윌마는 하루 6시간 이상의 연습을 매일 매일 소화해야했습니다. 하루는 피곤에 절은 윌마가 연습시간에 30분 지각하자 템플은 400m트랙을 30바퀴나 돌렸습니다. 그러자 윌마는 다음날 30분 일찍 나오며 달리기에 대한 집념과 독기를 보여주었습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윌마는 미국대표선수로 출전하여 16세의 나이로 4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올림픽에서 돌아 온 그녀는 특기생으로 테네시 주립 대학에 입학, 집안 최초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다리를 쓸 수 없다고 판정받은지 10여년이 지난 후, 윌마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가 되기 위해서 훈련하는 육상선수가 되것입니다. 그녀는 이제 '돌사슴', '날으는 과녁'등의 별명으로 불리웠습니다. 윌마는 언제나 처럼 꾸준히 달리기에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4년 후 1960년 9월 17회 로마 올림픽대회 때 에도 미국 여자 달리기 선수로 출전했습니다.
여자 100m 에서 그녀는 독일의 세계적인 여자 육상선수 주타 하이네를 이겨야만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고 윌마는 종전 기록보다 0.3초나 빠른 1l 초, 세계 신기록으로 주타 하이네를 제치고 우승을 했습니다. 전세계인이 놀라고 감동한 윌마의 꿈이 이루어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람 탓에 공인 받지 못했으나 그것은 매우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그녀는 200m에서도 24 초로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면서 또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200m에서 22.9초로 세계 기록을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거침없는 질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400m계주 마지막 주자로 뛴 윌마는 세 번째 선수가 배턴을 잘못 건네주는 바람에 출발이 늦었습니다. 덕분에 2m 정도 뒤지던 독일 팀이 앞서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윌마는 나는 듯이 달려가 독일 선수보다 3m나 앞서 결승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로마 올림픽 대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여자 단거리 선수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 2개와 올림픽 기록 1개를 세우며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여자 육상 3관왕이 되었습니다. 경기 후 윌마는 로마 올림픽촌에서 친선의 사절로 활약했습니다. 로마에서 3관왕이 된 후 유럽 각 지역을 순방하고 귀국하는 날 윌마의 고향 클라크스빌 시내는 완전 철시했습니다. 학교도 쉬고 상점도 모든 문을 닫았습니다. '윌마 환영의 날'이 선포되어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해 그녀는 AP통신에서 선정한 그해의 최우수 여자 선수로 뽑혔습니다. 1961년에는 스포츠의 최고상인 셜리번 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윌마는 1960년대 일어난 인권운동에 참여하려고 3년 뒤 은퇴했습니다. 백인과 흑인을 차별하는 법에 대항하는 투쟁에 발벗고 나서 그녀는 수많은 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인간승리의 표본이 된 그는 1973년에는 '흑인 운동선수 명예의 전당'에, 이듬해는 '전미육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NBC 방송사에서는 그녀의 기적같은 금메달을 조명하는 '윌마'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미국 정부는 2004년 윌마 루돌프 기념우표를 발행, 그녀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1994년 내시빌에서 뇌암(brain cancer)으로 65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녀가 남긴 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윌마가 말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주 일찍부터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수 있다고. 그 첫번째는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는 신념을 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꿈이 이루어 질 것에 의심하지 마십시오.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생각만 하세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생각은 꿈을 실현시키는 시작이자 기본입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은 금물 입니다.
사실 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 마저도 정말로 현실로 이루어 버리지 않습니까.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은 당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루어 진다고 생각하면 이루어 지듯이 말입니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 윌마 루돌프에 관한 자료는 인터넷의 각종 매체와 게시판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대체로 신뢰할만하나 로마 올림픽의 기록부분은 자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글을 퍼가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www.cyworld.com/sky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