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군인의 글...

juju21 작성일 07.11.07 03: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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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실려가는 군대 트럭에 앉아 지나쳐 가는 길을 쳐다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 까요?
웬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제발 이것이 꿈이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이내 청춘을 트럭에 실어 저 멀리 사라져가는 길만 하염없이 쳐다 봅니다.

행복 끝 불행시작.
머리하나로 지구를 떠받치는 이 순간.
군대란게 왜 있어야 하고, 왜 나는 남자로 태어났을까 하는…
부질없는 한숨 속에
그저 몸 건강히 제대하라던 어머님 얼굴만 계속 떠오릅니다.

하루종일 고참들의 장난감이 되어 이리 저리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정말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일찍 입대할걸 그랬습니다.
이 자식들, 제대하고 어디 사회에서 만나기만 해봐라.
소리없이 이를 갈며, 오늘도 나는 장난감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인간 리모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tv는 볼 수 없고 병장이 지시하는데로 번개같이 채널만 바꿔야 했던 인간 리모콘.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는데 왜 이리도 시간은 더디기만 한 것 일까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습니다.

야간초소근무.
적군보다 더 무서운 건 뒤에서 나를 감시하는 고참입니다.
피곤하고 졸려서 쓰러질 것만 같고,
총을 든 팔이 시리고 저려서 미쳐 버릴 것만 같지만
적군이 아니라 고참이 무서워서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자대배치 받고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습니다.
정말 시간이 흐르고 있기는 한건가요
고향에 두고 온 친구들이 내 생각은 하고 있을까요?
외로움을 느낄 시간조차 허락되지않는 졸병이라
시간이 아예 멈춰버린 느낌입니다.
아아~!
드디어 누군가 저에게 면회를 왔습니다.
그녀일까요? 아니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일까요?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오는 날 먹구름 뒤에서 빛나고 있는 태양처럼…
항상 우리를 비추고 있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잠시 잊어버리고 있을 뿐 이었습니다.
면회실로 달려가는 지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행복인가 봅니다.
사회에선 양말 한 번 빨아본 적이 없었는데…
고참들 빨래까지도 모두 빨아야 했던…
진흙물로 얼룩진 전투복에 비누칠을 하다가,
문득 어머니 생각이 떠올라 핑 도는 눈물을 참아야 했었던 그때 그 시절이…

사회에선 음식투정만 할 줄 알았었는데…
추운 겨울, 꽁꽁 언 손을 비벼가며 설거지를 했었던…
세정제 하나 없이 오직 수세미 하나로 식기를 깨끗이 닦아야만 했었던 그때 그 시절이…
누가 거들떠*도 않을 것 같은 거지같은 옷들이 다 마를 때 까지 지키고 있어야 했던…
뜨거운 태양 볕에 땀을 쏟아내며, 빨래보다 내 몸이 먼저 타버릴 것만 같았던 그때 그 시절이

 

해가 지던 연병장에 앉아 구두약을 찍어 전투화가 유리가 되도록 번쩍번쩍
광을 내야 했었던…
힘겹게 힙겹게 닦아 놓으면, 고참이 와서 발로 짖이겨 버렸었던…
손톱 밑에 낀 시커먼 때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때 그 시절이…


새벽녘에 눈을 좀 붙여보려고 모포속에 기어들어가 벌벌 떨다가 겨우 겨우
잠이 들면
어김없이 야속한 기상나팔이 흘러나오며 또다시 지옥 같은 하루가 시작되던…
정말 죽고만 싶은 생각에 이불 속에서 울먹이던 그때 그 시절이…

그렇게 군대라는 삶에 힘겨워 하다
어머니께서 보내신 편지 한 통에 그만 감정이 복받쳐 올라
이를 악물고 참았던 눈물을 종내엔 바보같이 흘리고야 말았던 그때 그 시절을…
혹시 아주 영영 잊지는 않으셨나요?
지금도 눈만 감으면 아련하게 펼쳐지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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