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별 성격분석의 유래
다윈과 골턴, 멜더스 이후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우생학이
유행하고 있었다.
주로 백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입증하려 한 것들이었다.
1901년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발견된 ABO식 혈액형 지식이
도입되면서, 1910년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의 에밀 폰 둥게른
(Emile von Dungern) 박사는 ‘혈액형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에서
혈액형에 따른 인종 우열 이론을 폈다.
더러워지지 않은 순수 유럽민족, 즉 게르만민족의 피가 A형이고
그 대척점에 있는 B형은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아시아 인종에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은 뒤에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연구를 통해 A형이 우수하고 B형은 뒤떨어지며, 따라서 B형이
비교적 많은 아시아인들은 원래 뒤떨어진 인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둥게른의 주장을 히틀러가 이용하지는 않았다.)
1916년 독일로 유학을 갔다 온 일본인 의사 키마타 하라는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시키려는 조사 논문을 발표한다.
1925년경, 일본의 육군과 해군은 병사들의 혈액형을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그 정보가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조사를 통하여 혈액형과 성격간의 어떤 결정적 연관관계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 영향을 받아 철학을 공부하고 동경여자사범학교의 강사로
있던 후루카와가 1927년 8월 자기 친척, 동료, 학생 등 319명을
조사해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을 일본심리학회지에
발표하였는데, 일본은 황인종의 나라이니만큼 차마 인종간의
우열기준으로 사용하진 못했고 그 대신 성격을 나누는 기준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라 1930년대 처음으로 이력서에 혈액형 칸이 생겼다.
고용될 사람이 어느 정도 회사에 적응할 것인지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1937년 외무성 관련 업무를 하던 한 의사는 O형인 사람이 더
훌륭한 외교관이 될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 설은 그다지 지지를 얻진 못하고 일단 사라졌으나 전후
이 설의 영향을 받은 작가 노오미(能見)의 책(1971년)이 인기를
얻으면서 <혈액형 인간학>이 유행을 일으켰다.
노오미는 작가생활을 하면서 만나본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에
따라 ABO식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에 대해 저술했다.
이후 이 이론은 여성지 등을 중심으로 궁합문제, 직업문제,
대인관계, 학습법 등으로 응용되고 온갖 파생 상품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학자들의 비판으로 그 붐이 가라앉긴
했지만, 현재도 많은 관련 잡지와 책 등이 출판되고 있으며
점술업 등에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 일본의 혈액형관련 서적들이 번역, 인용되면서
대중들 사이에 이 이론이 널리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아직도 서점에 있는 <혈액형>과 관련된 책 중에 노오미
이름의 책들이 많다.
서양인은 대부분 A형과 O형이고, B형과 AB형은 10% 정도 밖에
없어 혈액형으로 사람을 나누는 유행 자체가 없으며, 나치스의
만행을 경험한 유럽인들은 혈액형으로 따지는 인간학을 우생학의
망령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혈액형이 네 가지로 골고루 나눠진 편이라
아직 이런 구분법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일본대학 명예교수이며 심리학자인 오오무라 교수는
"일본인이 원래 조그만 집단에라도 속하면 안심하는 민족성이라
그런 걸 믿는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