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에 엄마가 된 나, 용서해 주렴

땡글이76 작성일 09.12.15 11: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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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에 엄마가 된 나, 용서해 주렴

 

 



1977년 열 다섯.
딸이 귀하던 우리 집안의 막내였던 난
공주님처럼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었다.

그러던 중, 교육자이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생 오빠에게 과외를 받았다.

따뜻한 눈빛을 가진 그에게 나는 반해 버렸고
그 역시 나를 친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
그렇게 서로 가까워졌고 나는 그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때 쯤, 그에게 영장이 나왔고
그가 입대한 후, 나는 배부른 모습으로
그의 집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진 것 없이 임신을 하고,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날
시댁에선 좋게 받아줄 리가 없었다.
만삭이 되고 나서도 가족들의 빨래며 청소,
집안일을 해야 했고,
시할머니의 중풍병 수발도 감당해 내야했다.

어느 날, 낚시터에 계신 시아버지의
새참을 가지고 나가던 중 진통이 왔고,
나는 쓸쓸히 그와 나의 사랑의 결정체인
혁이를 맞이하였다.

시간이 흘러 그가 제대를 했지만
그는 멀리서 공부를 했고,
나는 시할머니의 병 수발로
혼자 남아 시집살이를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환갑잔치 때문에
부산에 가게 됐고, 그의 자취방에도 들렀다.
그런데, 그가 자취하던 곳엔
말끔하게 정리된 여자의 소품들이 가지런히 있었다.
놀란 가슴을 끌어안고
학교로 가서 그를 정신없이 찾아다녔다.

멀리서 그를 보게 되었고
그의 옆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짓을 했고,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그와 그 여자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한참 후 그는 "나의 첫 사랑이야
유학생활하면서 힘들어 할 때,
옆에서 보살펴 준 고마운 여자야.
하지만 난 이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나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이였다.
너무 큰 충격에..너무 뻔뻔한 그의 표정에서
나는 목이 메여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고.
명치만 무겁게 눌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를 사랑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니까.

나와 우리의 아이를 포기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사랑이라는 거짓의 탈을 쓴 그의 곁을 떠날 때
이미 둘째를 임신한 몸이었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운이를 눈물로 맞이했다.

나는 다시 가족을 찾았다.
큰 오빠는 혁이와, 운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나에게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내 능력이 없었기에
자식을 조카로 만나야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의 큰아들 혁이가 오늘 결혼을 한다.

그리고 오늘 혁이가..메세지를 남겼다.
"고모..! 내일 결혼식장에 예쁘게 해서 오세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지금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저 기억하고 있어요.
사랑해요. 엄마. 이젠 좋은 사람 만나세요.
아빠 아닌 그분 같은 사람 만나지 말구요.
엄마를 아끼는 사람 만나서 행복하세요..제발.."

뜨거운 눈물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 내렸고
그에게서 버림받던 그날처럼
명치가 무겁게 짓눌리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죄악으로 내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 채 빼앗아 가버린 그 사람.
20여 년간 내 인생을 눈물로 채우게 했던
원망과 증오의 가슴으로 살게 했던 그가.
오늘처럼 그리운 날은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자신의 핏줄이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오늘
불과 다섯 살 때 마지막으로 본 그를
아빠로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실을..,

모습조차 보지 못한 또 하나의 핏줄이
보름만 지나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하는 이 사실을.

지혁아, 제발, 한 여자만을 평생 사랑하길....
지운아..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길....

- 최순자*옮김 -



20년의 가슴앓이.
홀로 감당하기 너무도 벅찬 시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들이 이제 당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겁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희망은 언제나 당신 편입니다.

-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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