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인순이의 뉴욕 사부곡'思父曲'

의곡리울맹자 작성일 10.02.16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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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순이의 뉴욕 '思父曲' ☆

가수 인순이는 16년 전 아기를 가졌을 때


"혹시 아이가 나를 많이 닮으면 어쩌나,


수도 없이 되뇌었다"고 했다.


혼혈인으로 자라며 받은 상처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대중의 사랑 속에 무대를 휘젓는 그이지만


"학교 다닐 땐 남들 앞에 서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했다.


고민 끝에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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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외국인학교에 보내 덜 상처받게 하고 싶었다.


인순이는 돌아오자마자 이런 사연을 방송에서


숨김없이 알렸다.마음껏 욕해 달라"고 했다.


그의 원정출산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3년 전 연예인 학력위조 파문 때는 중졸 학력을


고졸로 속여왔다는 게 드러났다.


그는 "가난해서 고등학교에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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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팬들에게 정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때도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난 몇십년 우리 사회가 혼혈인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다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인순이는 1957년 포천에서 태어났다.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뱃속에


있을 때 떠나 다시 오지 않았다.


열네살 때까지 가끔 편지를 주고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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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끊겼다.그런 그에게 작년에


'아버지'라는 노래가 들어왔다.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던/내 마음을 알아 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라왔는지/눈물이 말해준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단 한 번 본 적도 없으면서


아버지 심정을 노래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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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다 울컥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인순이는 1999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앞두고 잔뜩 흥분해 신경성 장염과


위염으로 한 달을 고생했다.


아버지의 나라에 가서


그가 어머니 힘만으로 얼마나 잘 자랐는지

 


보여줄 기회라고 별렀다.지난주 다시 가진


카네기홀 공연에서 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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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용사 100명을 모셔 놓고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라고 인사했다.


그는 작년에 '군인의 딸' 자격으로 공군대학에


특강을 나가 마지막 한마디로 강의실을 뒤집어놓았다.


"외국에 파병 나가도 책임지지 못할


씨는 뿌리고 오지 마세요."


인순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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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아버지'도 용기를 내 취입했다.


카네기홀 공연에서 "전쟁통에


나 같은 자식을 두고 떠난 뒤 평생


마음의 짐으로 안고 사는 참전용사들이


이제 짐을 내려놓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를 극복하고 용서와 화해를


건네는 그녀가 당당하고 아름답다.



- 좋은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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