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남자 ---
방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자동응답기에 빨간불이 반짝거립니다.
휴대폰이 생기고 나서는 무용지물이 다 된 물건이었는데 말이죠
반가운 마음으로 재생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음만 들릴 뿐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기계에 녹음하는게 서툰 아버지나 어머니가
실수를 하신것 같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전화기를 막 내려 놓으려는 순간
그때서야 음악소리가 들린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귀에 익은 멜로디
그건 영화 러브어페어에 흐르던 음악이었습니다.
그녀와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바로 그 음악이었습니다
녹음이 끝날때까지 그녀의 목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녀였습니다
응답기에 귀를 붙히고 몇번을 되풀이해 듣는동안
음악소리와 길거리 소음은 점점 작아지고
그녀의 숨소리만 내 귀에 들려왔으니까요.
난 아직 그녀의 숨소리를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 그여자 ---
아무렇지도 않은 저녁이었습니다.
이틀째 내리던 비가 그쳤고 바람이 조금 불었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발끝을 내려다 보고 있을때
환청처럼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언제부터 틀어 놓았던건지 레코드가게에서 흘러 나오는 그 멜로디
'러브어페어'
스피커 옆으로 걸어가 한참동안 음악을 듣다가 전화기를 꺼내 들었어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다가 그사람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기억하니? 이 멜로디... 우리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 영화
이 음악이 흘던 장면도 난 다 기억해
하지만 대답이 없는 자동응답기처럼
나도 입밖으론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어요
그냥 울음소리가 새어나지 않도록 입술을 깨물며
한참동안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 이소라의 FM음악도시 '그남자 그여자' 中
연인이라 불리는 또는 연인이라 불리웠던 두 사람
같은 시간, 같은 상황 밑에서 그남자와 그여자는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녀의 심리에 관한 짧은 이야기.. [그남자... 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