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딸

온리원럽 작성일 13.03.04 21: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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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 이름이 뭐지?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이잖아.”

타지에서 일하는 나는 주말이면 아빠에게 달려가 항상 같은 질문을 한다.
내 이름 석 자를 최대한 빨리 아빠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려고 말이다.
이번에도 아빠는 잘 기억나지 않는지 골똘히 생각하다 무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복실이! 복실이!”

“도대체 복실이는 누구야?”

아빠는 늘 내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한 글자라도 가르쳐 줘야 제대로 이름을 말했다.
그러고는

“알아! 알고 있었어!”

라고 했다.

딸 이름도 기억 못하는 게 서운하지만, 아빠와 대화할 수 있는 것만도 기적에 가깝다.
2009년 11월 온 세상이 단풍으로 물들 무렵, 오십대 후반이던 아빠는 예고도 없이 쓰러졌다.
병명은 뇌출혈.
여덟 시간 넘는 대수술 끝에 5~6개월을 식물인간처럼 눈만 감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의식을 찾아가던 아빠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재활 치료하는 2년 동안 우리 가족은 죽을 만큼 힘들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누구에게라도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잔인했던 불행이 고맙기도 하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지 알지 못했을 테니까.

“아빠!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 내가 머리도 감겨 주고 발도 씻겨 줄게.”

거동이 불편한 아빠를 위해 조심스럽게 머리를 감기고 미지근한 물로 발도 깨끗하게 씻기는데, 아빠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아이고 좋다. 시원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을 했을 뿐인데 좋아하는 아빠를 보니, 괜스레 미안해져 노래를 덤으로 불러 주니 따라서 부른다.
아빠가 기분 좋은 틈을 타서 나지막이 물어본다.

“아빠, 내 이름이 뭐지? 아빠가 지어 준 내 이름!”

“니 이름이… 우리 딸!”

“그렇지? 나는 아빠 딸이지?”

아빠가 내 이름을 기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
내가 아빠 딸이라는 사실만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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