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무

온리원럽 작성일 14.10.31 14:19:10
댓글 0조회 1,472추천 1
  • 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 나는 교실에서 벌어진 일로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반 친구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급우를 혼내 준 게 화근이었다. 
    급기야는 법정 다툼으로 번져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까지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나는 한 해 동안 학업을 중단한 채 동분서주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농사일을 도맡았다. 
    죄책감 때문에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몫을 해내는 억척스러운 꼬마 농군이었다. 
    소달구지 끄는 일과 지게를 지고 나무하는 일은 마을의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능숙해 칭찬을 받기도 했다.
    하루는 하도 나무할 곳이 마뜩찮아 산속을 헤매다 어렵사리 땔감의 보고(寶庫)를 발견하고 쾌재를 외쳤다. 
    이것은 분명히 어린 나를 위한 선물이라 여기고 누가 볼세라 조심조심 노거수에 올라가 마른 가지들을 톱으로 잘랐다. 
    그나마도 죽은 나무 단속은 꽤 느슨해 안심했으며, 수백 년은 됨 직한 소나무의 마른 가지는 매끈하고 불에 타기 좋아 땔감으로 제격이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할까 봐 살며시 그곳을 빠져나와 집에 도착한 뒤 아버지의 칭찬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날 해 온 나무는 보통 다음 날 아버지가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쪼개 장작더미에 보태지곤 했는데 그 나무만은 유독 뒷담 위에 걸쳐진 채 청솔가지로 덮였다.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뒷집의 또래 머슴이 내게 건넨 말은 실로 큰 충격이었다.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담 위의 땔감은 하늘처럼 떠받드는 당산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매년 정월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지내면서 마을의 길흉화복을 비는 신령스러운 나무를 베었으니 당연히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고 숨죽이며 지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 없는 듯 무사했고 이듬해에 다른 학교로 전학한 뒤에도 당산 목은 그 자리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만약 아버지가 내 잘못을 질책했더라면 열성적으로 하던 일에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르며, 두고두고 아픈 기억으로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꾸중과 채찍보다 무언의 교훈으로 성장의 자양분을 부어 준 아버지 마음이 잊히지 않는다.

온리원럽의 최근 게시물

좋은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