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에서 담소를 나누는데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 딸이 말했다.
“우리 할머니는 선녀처럼 예뻐.”
내 딸이 말했다.
“우리 할머니는 진짜 선녀야.”
피식 웃고 말았지만 딸아이가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그렇다.
친정어머니 이름은 ‘선녀(仙女)’다.
언젠가 딸아이가 [선녀와 나무꾼]을 읽어 달라고 했을 때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외할머니가 선녀야.”
그러자 딸아이는
“외할머니도 선녀 옷이 있어요? 외할아버지는 나무꾼이에요? 나무꾼이 왜 농사를 지어요?”
하고 물었다.
외할머니가 동화책 속에 등장한 선녀라고 믿어 버린 모양이다.
내 어머니, 선녀 님.
예전에는 나무꾼이었을지도 모를 아버지와 산 지 오십 년이 넘었다.
동화대로라면 아이 둘만 낳고 하늘로 올라갔을 테지만, 오 남매를 낳는 바람에 곱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깊은 주름과 거친 손을 가진 칠순의 할머니로 지상에 계신다.
칠십 평생을 돌아보면 일과 고생이 친구처럼 어머니 곁을 지켰다.
자식 키우느라 하루도 손에서 흙을 털지 못한 어머니는 늘
“난 땅 파는 두더지.”
라고 하셨다.
자식들 때문에 외할머니의 마지막 순간도 곁에서 지키지 못한 어머니는 죄책감과 서러움에 넋을 놓고 우셨다.
그해 어느 새벽 어머니는 어린 내 손을 꼭 잡은 채 말씀하셨다.
“너는 꼭 데리러 오마.”
그러고는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선 어머니.
하지만 어린 자식들 걱정에 수십 번 뒤돌아보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막내인 나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 흘리셨다.
아마 가정에 무심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으셨으리라.
오 남매의 끝없는 뒷바라지를 떨치고 싶으셨으리라.
그러나 선녀님은 나무꾼과 오남매를 다시 끌어안으셨다.
어머니가 환갑이 되던 해였다.
퇴근하고 오니 어머니가 누런 옷감을 펼쳐 놓고 조심스레 매만지고 계셨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아무렇지 않게 당신이 입을 수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영정 사진도 찍었으니 걱정할 거 없단다.
무엇을 걱정하지 말란 말인가?
야속해서 어머니 가슴을 사정없이 할퀴고 말았다.
“내가 엄마한테 무슨 잘못을 그리 했다고 그걸 펼쳐 놓고 내 속을 뒤집어? 도대체 왜?”
어머니는 당신을 위해서 사신 세월이 과연 있었을까?
오 남매가 기댄 세월만큼 어머니는 몸도 마음도 지치셨던 게다.
그날 밤 어머니는 불 꺼진 내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오셨다.
“막내야. 울지 마라. 막내 우는 소리는 저승길에서도 들린단다. 엄마가 너 우는 소리 들으면 저승길도 못 가니…….”
이불을 뒤집어쓴 내 등을 하염없이 쓸어내리시던 어머니.
죄스런 마음에 차마 어머니 얼굴을 볼 수 없던 나는 어두운 방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 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내 기척을 느끼면 급히 수의를 치우셨다.
십 년이 흘렀다.
이제 어머니는 내 눈치 보지 않고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수의를 어루만지신다.
너도 자식을 낳았으니 어미 가는 길을 더 이상 속상해하지 말라는 뜻일까.
여전히 수의를 만지며 귀천의 꿈을 꾸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가슴 아프다.
아마 오늘 밤도 선녀 님은 기억에서 멀어진 날개 옷 대신 장롱 안의 수의를 꺼내 보며 하늘의 부름을 기다리실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심한 이 밤, 부디 옥황상제가 선녀 님을 지상에 오래 남게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