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숲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서너 달 움막에서 지내며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새의 번식 과정을 세세히 기록할 때는
무척 지칩니다.
그럼에도 어미가 어린 새들을 잘 키워 둥지를 떠나보낼 때까지의 긴 일정을 그럭저럭 견뎌 낼 수 있는 것은 재롱둥이
다람쥐가 더러 동무로 다가와 주기 때문입니다.
어느 결에 다람쥐 하나가 지난해 땅에 묻어 둔 알밤을 잘도 찾아내 움막 앞 바위로 툭
튀어나오더니 껍질만 벗겨 볼이 터져라 뚝딱 먹어 치우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습니다.
다람쥐는 이른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세수입니다.
돌 위나 한적한 나뭇가지를 세수 터로
정합니다.
먼저 앞발을 양손 삼아 얼굴을 위아래로 쓸어내린 다음 목과 귀 주변을 훔쳐 냅니다.
그러고는 붉은 혀를 날름날름 내밀어
얼굴에 골고루 침을 바릅니다.
깔끔한 세수에 이어 등과 발, 꼬리털까지 가지런히 쓸어내리며 단장합니다.
앞발이나 뒷발이 닿지 않는
곳의 털을 고를 때는 고난도 요가 자세를 취합니다.
몸단장을 마친 뒤 빠짐없이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뒷발을 고정한 채 허리를 쭉 펴고 앞발을 들어 올리는
스트레칭입니다.
그렇게 몸을 푼 뒤 당차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봄철은 다람쥐의 번식기입니다.
다람쥐는 땅속에 굴을 파고 새끼를 낳아 키웁니다.
그런데 천적이 나타나면
여러 차례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마땅한 터가 없으면 새끼를 입에 물고 나무에 뚫린 수동(樹洞) 또는 빈 딱따구리 둥지에 보금자리를
틉니다.
그러고 보면 새끼를 끔찍이 아끼는 마음은 사람이나 다람쥐나 다를 게 없나 봅니다.
숲에 깃들어 사는 동물에게 결실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늦은 봄에서 여름에 이르는 시간입니다.
동물들이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 내는 모습을 지켜보면 삶이 바뀝니다.
동물들은 허투루 소비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조차 주저 없이 던집니다.
4월 초순, 딱따구리가 머물다 떠난 빈 둥지에 다람쥐 하나가 뽀송뽀송 마른 낙엽을 물어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새끼를 낳아 키울 폭신한 바닥 재료로 삼을 모양입니다.
나는 다람쥐의 보금자리를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하고도 열흘 남짓 흐른 6월이었습니다.
‘이제는 때가 찼는데.’ 생각하며 기다리니 드디어 어린 다람쥐 하나가 보금자리 밖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습니다.
약 75일 만에 어떻게 저런 온전한 생명이 완성되는지 놀라웠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새끼를 보듬었을 어미의 간절함이
헤아려졌습니다.
첫째가 난생처음 씩씩하게 보금자리를 나섰습니다.
그러자 둘째, 셋째, 넷째도 뒤따랐습니다.
세상을 향한
첫 나들이가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숲의 작은 새들도 그렇고 다람쥐와 하늘다람쥐 역시 첫째가 보금자리를 나서면 동생들은 꼬리를 잇듯
뒤따릅니다.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 세상으로 나갈 때를 가만히 기다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미 다람쥐가 먼발치에 서서 아기 다람쥐들이 보금자리를 나서는 모습을 까치발 하고 바라보았습니다.
토실토실한
아기 다람쥐와 달리 어미는 많이 야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