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김치

온리원럽 작성일 13.06.13 22: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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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요리, 아니 요리라 하면 거창하게 들릴 테니 그냥 김치, 고추장 등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당신이 만든 음식을 자식들이 게걸스레 먹는 광경이 어떤 풍경보다 절경이었던 모양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자식들 밥그릇이 훤히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좀처럼 수저를 들지 않으셨으니까요.

어떤 자식이 어머니의 음식을 맛없다 하겠습니까만, 우리 어머니는 특히 부추김치를 잘 담그셨습니다.
학창 시절, 별것 들어가지도 않은 어머니의 꼬불꼬불한 김치는 친구들에게도 인기였습니다.
도시락 반찬의 최고봉으로 꼽히던 소시지, 계란말이와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까요.

어머니는 당신의 김치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습니다.
며느리 교육도 김치 담그기부터 시작했습니다.
담그시는 속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게 눈 감추듯 찬그릇을 비워 버리는 십 남매의 바쁜 젓가락질도 한몫했겠지만, 그보단 재바르고도 정확히 간을 보던 당신의 혀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십 년 됐습니다.
기력이 쇠하신 어머니가 오랜만에 부엌으로 나오셨습니다.
부추김치가 먹고 싶다는, 건성으로 흘린 아들의 혼잣말을 가는귀로 들으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은, 매운맛과 짠맛을 구분 못하는 당신의 혀만큼이나 변해 있었습니다.
전날 해거름부터 장만하더니, 다음 날 오후에야 완성하셨으니까요.

마침내 어머니의 김치가 식탁에 놓였습니다.
실핏줄이 가뭄날 시내처럼 끊긴, 반쯤 열린 관 뚜껑 같은 눈두덩을 껌벅이던 어머니는, 부추 몇 가락을 내 입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 순간 내 눈과 코는 둥근 입술을 일자로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왜냐고요?
빵가루 범벅이었으니까요.
나는 빌었습니다.
당신의 음식을 아들이 제일 좋아한다고 믿으시던 어머니를 위해….

'혀야, 고춧가루란다, 빵가루가 아니란다.'

하지만 빵가루인지 내 혀인지 둘 중 하나는 잔인하도록 정직했습니다.
평소 거짓말을 잘하던 내 입 역시 새삼 솔직했으며, 순간 일그러진 내 초상은 설탕도 맵다고 하시던 당신의 갈라진 입술을 풍(風)이 찾아온 양, 파르르 떨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김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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