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란 무엇인가

그년들 작성일 14.07.31 10: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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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섹.스에 대해 논의하는 것조차 꺼려한다. 왜 그럴까?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면 더 성에 매달리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아무 근거도 없다.

섹.스에 대해 건전한 담론이 오가야만 비로소 섹.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섹.스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먼저 섹.스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섹.스를 아무 거리낌 없이 친숙하게 대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섹.스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섹.스가 갖는 의미와 그 구조를 낱낱이 이해한 다음에야 섹.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눈을 감아 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눈을 감고서 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막에 사는 타조가 이처럼 행동한다.

타조는 모래에 머리를 박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면 적이 사라졌다고 안도한다.

타조가 그러는 것이야 용납이 되지만 인간이 그런 바보짓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성 문제에 관한 한 인간은 타조보다 나을 게 없다.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는 섹.스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외면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의 삶은 아주 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을 감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가?

눈을 감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그것을 정복할 수 없기 때문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눈을 감아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약하다는 증거이다.

섹.스에 관해서는 온 인류가 눈을 감아버렸다.

비단 눈을 감고 외면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섹.스를 물리치기 위해 온갖 싸움을 일으켰다.

이 섹.스와의 전쟁이 얼마나 황폐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남자들이 앓는 정신병 중에 98퍼센트는 섹.스를 억압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여자들의 히스테리와 관련된 질병 중에 99퍼센트는 성적인 억압에서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처럼 인간이 불안하고 불행과 고통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 강력한 에너지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무작정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우리의 문학작품과 미술품들을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우리의 작품들은 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외계인들은 왜 지구인들이 쓴 시와 소설들은 이렇게 성에 탐닉하는 것일까?

왜 잡지마다 벌거벗은 여자들이 등장하고,

왜 영화마다 알몸을 내보이는 것이지?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들은 이 지구인들은 자나 깨나 섹.스만 밝히는 종족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당혹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구인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그들은 더 놀랄 것이다.

지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온통 섹.스로 가득한데,

막상 지구인들을 만나 보면 신과 영혼, 천국, 구원 등에 이야기할 뿐

섹.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해 광적으로 매달리면서

그것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다니,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종교라는 미명 하에 인류는 변태적인 상태로 내몰렸다.

우리는 종교적 독신주의에 대해 말하지만

이에 앞서 인간의 성 에너지를 이해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 에너지를 변형시키려는 어떠한 실험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기본적인 에너지를 무작정 누르고 통제하는 것이 능사인 것처럼 배워왔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은 인간을 미치광이 상태로 몰아갈 뿐이다.

인간이 지금처럼 병들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진 적은 없었다.

인간은 너무나 불행하고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누구도 이런 상황에 주목하지 않는다.

인간은 심하게 오염되었다.

그 1차적인 원인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있다.

우리는 이 본성을 억누르고 통제하려고만 했다.

이 인간적인 에너지를 정련하고 승화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

우리는 이 에너지를 무작정 틀어막으려고만 했다. 이것은 화산을 깔고 앉아있는 것과 같다.

언제 용암이 터져 나올지 모른다. 기회만 있으면 언제라도 그대를 쓰러뜨리고 솟구쳐 오를 것이다.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를 가정해보자. 그대가 추락현장으로 달려간다.

파편 속에서 희생자들의 사체를 보았을 때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무엇일까?

이 사람은 기독교도인가, 불교도인가?라는 생각이 떠오를까?

아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인도인인가, 중국인인가?라는 생각이 떠오를까?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대는 이 사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살필 것이다.

왜 이렇게 성별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이것은 성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만났던 사람을 떠올릴 때 그대는 그 사람의 이름이 가물가물할지도 모른다.

그의 얼굴과 국적, 나이, 계급 등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의 성별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잊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

왜 그럴까?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면서 왜 성별은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일까?

이것은 성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대의 사고 작용 속에서 성은 항상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이 강하게 살아있는 한 이 세상은 건강해지기 힘들다.

이 불타는 성적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 한 평화는 요원하다.

우리는 날마다 이 욕구를 누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섹.스의 불길이 우리를 태워버리고, 우리의 삶을 재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지경인데도 우리는 이 불길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불길은 적이 아니라 친구이다. 잘 관찰하면 이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해하기만 하면 이 불길은 그대를 태우지 않을 것이다.

불이 집을 따뜻하게 데우고 요리를 하는데 사용되듯이

이 불길은 그대의 삶에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 <섹.스란 무엇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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