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관한 시 모음> 오정방의 ´무더위도 감사해´ 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무더위
등에 불이 붙는가 하면
머리 위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
아스팔트는 펄펄 끓는가 했더니
어느새 엿가락 늘어지듯 허물거린다
이에 뒤질세라
오징어 굽는 고소함이
콧속의 열판을 진동시키고
달걀이 후라이가 될 것 같은 고통이
호흡을 감당 못하게 가로막는다.
(전병철·시인, 1958-)
+ 복더위
어지간하다
한 점 바람도 없는
이 적막 속을
코 하나 달랑 밀어내 놓고
복날을 넘기는데
매미 울음이 하늘 끝을 돌아나가면서
더위를 감아올렸다가
풀어놓았다가 하긴 하는데
복더위는 복더위다.
(박주일·시인, 경북 경주 출생)
+ 초복
실하다는 토종 닭 한 마리
특별 주문해서
저녁상에 올리려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삼계탕 먹었다는 아들과
탕 한 그릇 비웠다는
남편의 복달임에
냉장고 신세를 지게 된
가부좌 튼 벌거숭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낸다
해거름,
무더위에 지쳐
삼키는 울음소리
여기저기서 꼬끼오 꼬꼬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멍멍멍
(김경숙·시인)
+ 중복
한낮
들녘 파아란 하늘
미루나무 이파리
환상의 구름장을 몰아다
등줄기에 쏟는
소나기
쏴아하아,
매미 소리여.
(홍해리·시인, 1942-)
+ 말복 오후
멍멍이 제일 많이 희생되는 날
약병아리 찹쌀 배 터지게 먹는 날
여름과 가을이 배 맞대고
마지막 한판 뒤집기 위해
깊은 숨 몰아쉬며
씩씩대는 날
(손석철·시인, 1953-)
+ 더위
더위 먹은 트럭 한 대
고속도로에 길게 누웠다.
따라 오던 택시도 덩달아
발랑 눕는다.
트럭과 택시가 눈 맞아
세상을 내동댕이쳤다.
잔뜩 실은 짐
길바닥에 부려 놓고
트럭과 택시는 사랑놀이에 빠졌다.
구경꾼의 시선도 뜨거워진다.
구급차 지나간 자리에는
트럭도 택시도 주인을 잃고
검은 땀 길바닥에 쏟아 놓는다.
소리 없이 번지는 더위를 따라
(김정현·시인)
+ 더위
사방 돌아다니며 쪽문까지 열어 젖혀도
해갈되지 않는 찜통 더위라
땡볕에 주춤거리기만 해도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 구슬땀.
아무리 서늘한 바람 그리워
길 떠나도
인파에 떠밀리면
더위만큼이나 솟아나는 짜증.
복중에 옷을 낱낱이 벗어도
속 시원하지 않는 것은
인간 스스로 저질러 놓은 자연파괴와
물질 문명의 발달이 원인 제공한
오염 공해가 복합되어
이상난동 현상을 가져온 세상 탓이리.
찬물에 발 담그고
얼음수박 한 입 가득 깨무는 것이
유명 해수욕장을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좋은
차라리 속 편한
나만의 유일한 피서법이리.
(심종은·시인, 1948-)
+ 무더위
완벽하게
세상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두 다리에
잔뜩 힘주고
버텨주던 빌딩들도
한번 건들면
폭발할 것 같던
충혈된 시선들도
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좋다는
가진 자들의 호들갑도
이젠
아무런 저항 없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사람들의
멍한 무기력
그 사람들 앞에
살아보려는
의지를 불사르는
걸인의 구걸
버스터미널 한쪽 구석
낡은 선풍기
탈탈탈
의미 없이 돌아가고
지쳐 널브러진
사람들의 의식에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나기에 대한 꿈은
정녕
없는 것이냐
(공석진·시인)
+ 무더위
당신의 뜨거운 포옹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팔은 힘이 쭉 빠지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멈출 것만 같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대 사랑의 에너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번져나간다.
잔디밭이라도
어느 그늘진 곳이라도
아무 말 없이 드러누울 테니
그대 맘대로 하시라.
(박인걸·목사 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