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형태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조등을 보면
숨겨둔 마음을 들킨 것 같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엔 조등이 없어
거울에 비친 그 모습으로 문상을 간다
검은 구두, 검은 넥타이, 일렬로 선 조문객이
빈 두레박 같은 말을 내보인다
천신, 지신, 조상께 고하는 향이
늦반디처럼 몸을 사르다 바닥에 뼈를 묻는다
숨겨둔 물은 달이 될 때가 있다
캄캄한 내면에 그림자를 보여주다가
그림자를 밖으로 끄집어내기도 하고
정한수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있는
그냥 달이 되기도 한다
가끔 바람이 찾아와
젖은 달을 가져가기도 한다
전자서명을 하는 녹명부錄名簿에
사설조의 곡소리 대신 침묵이 선명하다
봉투에 오돌도돌 인쇄된 부의賻儀 글자처럼
뼈가 드러난 말이
뒤엉킨 구두소리에 순간 어수선해지고
한 무리의 조문객이 왁자지껄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