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로움이 좋았다. 외로움은 내 집이었고 옷이었고 밥이었다.
어떤 종류의 영혼은 외로움이 완성시켜준 것이어서, 그것이 빠져나가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만다.
나는 몇 명의 남자와 연애를 해보려 한 적이 있지만, 내가 허물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그때마다 뒤로 물러서곤 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다만 외로웠던 것뿐이었다. 그러니 새삼 그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느니 마느니 하는 자책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나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그것을 아는 바에야,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나는 징그럽게 차가운 인간 이었다.
-한강 ‘검은 사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