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나 인생살이 걱정, 고민 글이 보여서 읽다보니 생각이 나서 써봅니다.
일단 편하게 쓰려니 말을 좀 놓겠습니다.
내 나이는 현재 한국 나이로 44, 30살에 약 2년 결혼생활 하다가 32에 이혼하고 무자녀 상태. 벌써 10년이 넘었다.
내 형제는 유일하게 9살 많은 누나 51.
나는 이혼하고 혼자 살고 누나는 독신이라 부모님과 함께 살고… 모두 서울에 살고 있지.
늦둥인지라 부모님 나이대가 친구들 부모님보다 약 10살이 많으셔서 지금은 70대 후반이시지.
아무튼.
약 4년 전인가 만나는 사람도 없던 시기였지.
나이 차이도 있고 집안 일에 경조사 같은 이벤트가 없는 한 평소 거의 대화, 전화도 없이 그럭저럭 지내는 남매 사이다.
어느 날인가 회사에서 일하던 중에 전화가 오더라.
산부인과 검진왔는데 혹이 발견되서 수술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우리 형제는 우리 각각의 상황에 대해서는 서로 둘만 알려주고 처리하는 편이야.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충격받으실까봐
서로 암묵적으로 어느 순간 그렇게 행동했지.
며칠 후 부모님한테는 누나가 해외 여행간다고 하고 오후 수술이라 오후 반차를 내서 산부인과병원에 갔지.
강남의 유명한 대형 여성 전문 산부인과였는데 오후 2시 시작인걸로 알았는데 2시 못되어 도착했는데 이미 수술 중이더군.
수술실은 커서 분만실하고 같이 있나보더라공.
앞에서 앉아 대기하고 있는데 옆쪽에 인큐베이터큰 창으로 태어난 아기 보러 온 가족들이 간혹 보이더라.
한 2시간 기다렸나… 지루하기 시작하고..
누나보다 나중에 들어간 환자들 이름 뜨고 수술 끝나고 나오는데 누나는… 왜 안나오냐…
1명 2명 3, 4, 5명 넘게 나오는데 누나는 안 나오더라…
그렇게 3시간이 훌쩍 넘었나… 갑자기 수술실에서 담당의사가 나오시더니 보호자를 찾아서 손을 번쩍 들었지.
수술복 입고 들어오라고 하네. “J됐다…”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되더라.
수술 중 누나가 숨이 멎었나? 부모님한테는 뭐라 설명해야지?
누나 폰 등록된 사람들에게 부의 문자 보내면 되나? 누나 폰 비번이 뭐지???
초록색 수술복을 걸치고 수술실 정문을 들어가니 수술실1, 2, 3,…8.. 여러개 보이네.. 그 중 하나로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호흡기하고 눈감고 있는 누나가 개복이 되어 하얀 천을 세워 가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순간 눈 앞이 아찔 하더라.
의사 왈… '원래는 혹을 떼어내는 간단한 수술이었고 금방 끝나는데 막상 열어보니 자궁 밑에 크게 박혀있다.
이 혹을 떼어내려면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 환자 본인은 지금 이런 상태니 보호자가 결정을 해줘야 한다.'
“……”
한 5초간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 눈감고 있는 누나 얼굴만 보는데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더군.
냉정하게 생각하자. 냉정해지자. 내가 누나라면??? 그 고민하는데 채 1분도 안 걸린 것 같다.
‘아무리 누나가 독신이라도 자궁은 여자의 자존심 아닌가. 다시 수술하더라도 누나가 결정하도록 두자.’
정말 무덤덤 하게 “닫아주세요.” 라고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원래 앉았던 대기석에 와서 앉았다. 그 자리 위치가 인큐베이터 아기 보여주는 큰 유리창 바로 옆이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고 수술하고 며칠은 입원해야 될텐데.. 다시 수술하면 길어질테고.. 부모님한테 말해야 하나…
누나가 죽으면 혼자 연로하신 부모님 어떻게 모셔야 하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누나 걱정도 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이 되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한 10명 정도 양가 부모 형제들 다 모였나 보다. 갓 태어난 아기 얼굴 보려고 우르르 몰려와서 내 옆에
와글와글 서면서 아기가 큰 유리창 앞으로 보이자 다같이 환호성을 치고 축하 말도 하고 축제와 같았다.
바로 옆에.. 그 바로 옆에 나는 상반되는 상황이었다.
부모님 늙고 연로 하신데… 남매 둘 다 독신, 이혼에… 손주도 없고… 누나는 저 지경이고…
그 당시 만나는 사람도 없어서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던 것은 그 축제와 같은 분위기 옆에서도 나는 정말 무덤덤했다.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하면서도 대조되는 상황인데도 그냥 무덤덤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 삶의 큰 사건들이 닥치는 와중에도 나는 냉정해지고 오히려 무덤덤했다.
그 전에 아버지가 일하시다가 오른쪽 얼굴이 날카로운 것에 반 넘게 베여서 응급실에 가셨을 때도
가서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아버지의 붉게 다 젖은 상의와 얼굴을 보면서도 그냥 무덤덤했다.
어찌보면 무덤덤하게 냉정했기에 상황에 대처도 잘했던 것 같다. 무덤덤하지만 가족애는 크다는 것은 분명했다.
다시 누나가 수술이 끝나서 나오고 입원실로 가서 몇 시간 후 깨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잘했다고 했다.
자궁을 떼더라도 내가 뗀다고 잘 결정했다고.
그리고 나중에 수술하기로 하고 며칠 후 퇴원했고.. 그 뒤 약 한 달이 지났던 것 같다.
또 갑자기 누나가 전화를 했다.
정말 큰일이 발생했다고. 뭐냐고 했더니,
회사에서 소변 보러 화장실에 가서 힘을 주는데… 뭔가 큰 덩어리가 빠져나오더라고.
피가 흥건하게 나오면서. 그래서 급히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그 제거 못했던 혹이 없어졌다고.
그 큰 덩어리가 혹이라고. 자기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전생에 나라를 구하신 것 같다며 놀라시더라고.
와… 대박이구나. 이런 게 전화 위복이구나!! 싶었다. 그 사실조차도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기쁘기보다 무덤덤했다.
아무튼 수술을 다시 안해도 되서 정말 다행이었고 누나도 건강해질 거라 확신했다.
그리곤 몇 달 뒤 누나는 정기검진에서 자궁암 1기가 확인되었다.
일명 ‘투명세포암’ 종. 정기 검진에서 발견되었고 1기라서 다행이라고 했다.
암수술까지는 못 막겠더라. 항암치료도 받아야하고 머리도 빠지고 긴 시간이 필요하니까.
부모님께는 수술이 끝나고 나서 말씀드렸다.
최대한 놀라지 마시라고 이미 큰 일은 끝냈고 회복만 하면되는 거라고 연신 설명하고 누나의 암소식을 전했다.
다행히 두 노인분들은 크게 걱정을 안하셨다.
항암치료 때문에 약 8~9개월 누나는 가발을 쓰고 다녔다. 머리는 뒷통수가 절벽이라 완전 볼품없었고
눈썹도 없었다.
나는 암수술 이후로 평소처럼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댁 가는 것으로 지냈고…
지금은 어느 덧 수술 후 3년이 지났다. 나는 기억 못하는데 누나가 지난 어버이날 다같이 저녁 먹는데 이야기 하더라고.
보통 5년은 지나야 완치라고 하니까.. 지금도 누나는 술도 안마시고 거의 매일 2~3시간 산책하고 온다고 들었다.
기대하지는 않는다. 설사 2년 사이에 다시 발생한다고 해도 그게 누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께 그 동안 생각날 때마다 말씀드린다. 누나 인생이라고.
나는 내 인생이고. 어머님 어머니, 아버지는 아버지 인생이라고.
누나가 다시 암 걸려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울지도 마시라고.
24시간 며칠 우시고 걱정해서 누나가 낫는다면 그게 맞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혹시나 누나나 내가 잘못되더라도 그렇게 하지 마시고
앞으로도 부모님 삶을 사시라고. 지금처럼 수영장도 다니시고 백화점도 가시고…
각자 다들 삶이 있고 나 역시 나름 평이하지 않은 여러 풍파를 많이 겪으면서 이렇게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결국은 정말 다들 그들만의 인생이다. 내 애인이라고 아내라고 아버지라고 누나라고 책임져 줄 수는 없다.
걱정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냥 끄적여 봤습니다. 걱정할 일이나 울 일이 발생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다만 너무 치우치지 마세요. 죽는 것도 삶의 일부라고 한다고 하지요.
저처럼 무덤덤한 게 결코 멋지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고 한 편으로는 적당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해결할지를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