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리, 이제는 <지리 전쟁>의 시대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해 왔다.
한니발도, 손자도,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인정했던
<지리의 법칙>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리 밀착형의 시대, 이제 모든 것은 지리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 책은 지리의 힘이 급변하는 21세기 현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친다. 중국은 왜 그렇게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바다에 집착하는지, 러시아는 왜 크림 반도에 목매는지, 미국은 어째서 초강대국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유럽은 정말 20세기 초 분열의 시대로 회귀할 것인지, 한국에는 왜 사드가 배치되는지, 파키스탄보다 인도가 더 빨리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중동과 아프리카에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 놓았길래 지금도 피의 전쟁이 계속되는지, IS는 왜 영토에 집착하는지, 왜 세계는 남극이 아닌 북극으로 향하는지 등에 대한 답은 바로 <지리>에 있다.
러시아, 가장 넓은 나라지만 지리에게 복수의 일격을 당하다.
러시아는 넓다. 가장 넓다. 아니 넓다 못해 광활하다. 면적 7백9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며, 표준시간대(time zone) 또한 무려 11개나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나라다. 이 나라의 숲과 호수, 얼어붙은 툰드라, 스텝, 타이가, 산맥 또한 마찬가지로 넓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는 오래도록 우리의 집단의식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도 러시아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러시안 베어(Russian Bear)가 산다.
그러고 보면 이 광활한 나라의 상징이 곰이라는 것은 순전한 우연이 아니다. 이 땅에 웅크리고 앉은 곰은 겨울잠을 자기도 하고, 때로는 위엄 있게 그러나 험악하게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곰이라는 러시아 단어가 있지만 정작 러시아 사람들은 이 짐승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꺼린다. 그 이름에 내포된 어두운 부분을 두려워해서다. 그래서 러시아사람들은 곰을 가리켜〈꿀을 좋아하는 자)라는 뜻의 메드베디(medved)라 부른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이 나라에는 적어도 12만 마리의 메드베디가 서식하고 있다. 우랄 산맥의 서쪽은 유러피언 러시아(European Russia) 이며, 동쪽 땅은 시베리아로 베링 해와 태평양까지 뻗어 있다. 21세기인 지금도 기차로 이 나라를 횡단하려면 족히 엿새는 잡아야 한다. 러시아의 지도자들이라면 이 넓디넓은 거리와 그에 따른 차이를 살피고 그에 맞는 정책을 입안할 수 있어야 한다. 수세기 동안 그들은 모든 방향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현재는 주로 서쪽에 치중하고 있다.
이 곰의 속내를 알아내고픈 작가들이 흔히 인용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1939년에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러시아를 관찰하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 “러시아라는 <수수께끼>는〈미스터리〉라는 포장지로 여러겹 싸매져서〈불가사의〉안에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몇 마디 더 덧붙여져야 한다. “하지만 열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의 국익이다.” 이 말을 한 지 7년 뒤에 처칠은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본인의 답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확신하건대, 강인함만큼 러시아인들이 경외하는 것은 없으며 나약함보다 경시하는 것은 없다. 특히 군사력에서 말이다."
처칠의 말은 겉으로는 민주주의라는 망토를 두르고 있으면서 안으로는 국익 추구라는 권위주의 잔재가 남아 있는 현 러시아 정권에도 여전히 해당된다.
러시아를 지켜주는 건 지리였건만
블라디미르 푸틴은 신과 산악지대를 생각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생각할까? 바로 피자다. 요컨대 피자 한 조각, 즉 V자 모양으로 된 지역을 생각한다.
이 지역의 맨 끝에 폴란드가 있다. 이곳, 즉 북유럽평원은 프랑스에서부터 우랄 산맥까지 남북으로 장장 1천6백 킬로미터나 뻗어 있어 자연스럽게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경계가 되고 있지만 그 폭은 482.8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북쪽의 발트 해부터 남쪽의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내달리고 있는 이 북유럽평원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의 북서 지역을 아우르는 한편 폴란드 국토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이는 <양날의 칼>이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군대를 이동시켜야 할 때는 상대적으로 좁은 통로지만, 반대로 적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시킨다. 그런데 V자가 넓어지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러시아 국경까지 거리는 장장 3천2백 킬로미터가 넘는다. 게다가 모스크바와 그 너머는 평지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대군이라해도 전선 전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어찌 보면 이 전략적 깊이 덕분에 이 방향으로부터 정복당해본 적이 없다. 만에 하나 모스크바로 접근해 온다 해도 적군은 이미 길어질 대로 길어진 보급로를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1812년에 나폴레옹이 그랬고 1941년에는 히틀러가 이 실수를 되풀이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극동 지역에서도 러시아를 지켜주는 건 지리다. 일단 아시아에서 아시안 러시아(Asian Russia) 내로 군대를 이동시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끝도 없는 눈벌판 말고는 달리 공격할 대상도 없으니 적은 저 멀리 우랄 산맥까지도 갈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거대한 땅덩어리를 손에 넣을 수는 있다. 단, 지나치게 길어진 보급로와 러시아군의 반격 가능성이라는 악조건을 견딜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감히 러시아를 침공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5백 년간 러시아는 서쪽으로부터 몇 차례 침략을 받았다. 1605년에 폴란드가 북유럽평원을 건너 들어왔고 1708년에는 카를 12세 치하의 스웨덴이 침공해 왔다. 또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1812년에, 그리고 독일도 1914년과 1941년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를 침공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부터 시작해 1853년부터 1856년 사이의 크림 전쟁과 1945년까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한 시기에 러시아인들은 평균 33년에 한 번꼴로 북유럽평원 내부 또는 그 주변에서 전투를 치러야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즈음 러시아는 중동부 유럽을 독일로부터 빼앗아 점령하고 훗날 이 지역을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에 포함시켰다. 이를 기점으로 러시아는 과거 러시아 제국에 버금가는 영토를 확장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1949년, 소련의 침공 위협에 맞서 유럽과 북미 국가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를 출범시켰다. 그러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55년,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던 유럽의 대다수 공산국가들이 군사적 방어와 상호 호혜를 내세우는 바르샤바조약기구를 결성했다. 그러나 쇠처럼 단단하다고 여겨졌던 이 조약도 뒤늦은 깨달음이 작용했는지 1980년대 초반부터 조금씩 녹이 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아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푸틴 대통령은 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썩 좋게 보지 않는다. 그는 고르바초프 때문에 러시아의 안보가 취약해졌다고 원망한다. 푸틴은 1990년대의 소비에트 연방 붕괴를 두고 금세기의 주요한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말한다.
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기로 약속한 나라들과 협력을 다지는 한편으로 나토의 접근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1999년의 체코공화국에 이어 헝가리와 폴란드, 2004년에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가, 그리고 2009년에는 알바니아까지 나토에 가입한다. 이에 대해 나토는 나토대로 나토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는 약속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여느 강대국들처럼 러시아도 향후 100년 안에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1세기 전만 해도 미국의 군대가 모스크바에서 겨우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폴란드와 발트 해 국가들에 버젓이 주둔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한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가 있은 지 고작 15년이 지난 2004년 무렵에 러시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이 나토나 유럽연합에 가입하리라고 그 누가 생각했겠는가?
이런 현실로 인해, 또 러시아가 밟아온 역사에 의해 모스크바 정부의 입장은 더욱 굳건해졌다.
서방에도 추파를 던지고, 모스크바의 당근도 받으려는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부가 수도 키예프를 계속 지배하는 한 러시아는 자국의 완충지대가 손상되거나 북유럽평원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이나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며 부동항인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창의 임대차 계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 신중한 중립국의 행보만 보인다면 우크라이나를 용인할 수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중립적 행보의 폭을 점차 넓혀가는 우크라이나가 괘씸하더라도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고 나토와 유럽연합이라는 서방의 양대 기구에 가입하려는 야심을 품고 러시아 선박의 흑해 항구 입항에 반대한다면? 한 술 더 떠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군함을 받아들이는 날이 온다면? 물론 이는 현재로서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양측을 오가는 게임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서방에 추파를 던지면서도 모스크바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푸틴이 그를 용인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의 대규모 무역 협정에 서명을 앞두고 조만간 유럽연합 회원 가입으로 이어질지 모를 상황이 되자 푸틴은 나사를 조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외교 정책 엘리트가 보기에 유럽연합 가입은 나토 가입의 위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일종의 레드 라인(red line, 불화나 협상 시 한쪽 당사자가 양보하지 않으려는 쟁점이나 요구)을 넘는 행위로 본다. 푸틴은 야누코비치를 압박하는 한편으로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운 당근을 제시했다. 그러자 야누코비치는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깨고 모스크바 쪽과 협정을 맺으려 했다. 결국 이 행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사임으로까지 몰고 갔다.
독일과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했다. 특히 독일쪽에서는 전前 세계 복싱 챔피언이었다가 정치가로 변신한 비탈리 클리츠코를 내세웠다. 서방 측은 서부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민주 세력을 육성하고 자금을 대면서 지식인 사회와 경제계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수도 키예프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번져갔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동부에서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정부 성향의 주민들이 몰려나왔다. 지난날 옛 폴란드 영토였던 서부 리비프 같은 도시에서는 친러시아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2014년 2월 중순에 이르자 리비프를 비롯한 여타의 도회 지역들에 더 이상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결국 키예프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들이 발생하자 2월 22일, 신변의 위협을 느낀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급히 피신했다. 이어 친서방파와 파시스트파가 주축을 이루는 반러시아 파벌들이 우크라이나 정권을 장악했다.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일단 러시아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크림 반도를 합병하는 수밖에 없었다. 2014년 4월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 반도는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 투표에서 90퍼센트 이상이 찬성을 함에 따라 러시아에의 합병을 결정했다. 또한 러시아에게는 무엇보다 크림 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항을 손에 넣는 것이 절실했다.
군사 협력까지 가능한 러시아와 중국의 밀월 관계
러시아는 자국의 심장부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처럼 미국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남아메리카 국가라면 어느 나라와도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또 이런 흐름을 중동에서도 읽고 있는 러시아는 적어도 참견할 권리 정도는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와 더불어 북극에 주둔하는 군대에도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 특히 향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그린란드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은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로 이전보다는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긴 했어도 할 수 있는 한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거대 공룡들은 경쟁 관계이긴 하나 다양한 차원에서 협력도 이어가고 있다. 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벗어나려는 유럽 국가들의 야심을 모를 바 없는 모스크바는 그 대안으로 중국을 기대하고 있다. 일단 구매자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중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두 나라의 소통은 대체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2018년부터 러시아는 한 해에 380억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가스를 향후 30년간 4천억 달러에 공급하는 계약을 중국과 체결했다.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었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1945년에 러시아 군대가 만주를 점령한 것 같은 상황은 오늘날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물론 카자흐스탄에서 차후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쥘지 두 나라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공산주의 이념의 리더십을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군사적 차원의 협력까지 가능했다. 이 흔치 않은 사례가 바로 2015년 5월에 두 나라가지중해에서 실시한 합동 군사 훈련이었다. 거의 1만 4천5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해역까지 진출한 베이징의 이 같은 결정은 자국의 해군력을 전 세계로 확대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반면 지중해에서 발견된 가스전에 은근히 눈독을 들이는 모스크바는 그리스에게 구애의 손길을 내밀면서 동시에 시리아 쪽 연안의 소규모 해군 기지를 수호하길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나폴리에 주둔하는 미국의 제6함대를 포함해서 이 지역에서 나토의 영향력을 제거하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러시아는 자국 내에서도 많은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는데 특히 심각한 것이 인구 문제다. 가파른 인구 감소는 어느 정도 잡은 것 같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은 65세 이하로 193개 유엔 회원국들 가운데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크림 반도를 제외한 러시아 인구는 현재 1억 4천4백만 명 정도다.
모스크바 대공국을 시작으로 표트르 1세, 스탈린, 푸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지도자들은 한결같은 문제들에 직면했다. 통치 이념이 전제주의든, 공산주의든, 정실 자본주의든 간에, 항구들은 반드시 얼어붙었고 북유럽평원은 여전히 평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민족 국가들의 국경선이 다 지워진 오늘날,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반 4세가 마주했던 것과 똑같은 지도를 보고 있다.
미국에 대적할 초강대국이면서 한쪽 발은 유럽에, 다른 한쪽 발은 아시아에 걸쳐있지만 부동항의 부재로 인한 지리적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지리를 무기로 도박을 걸고 나토와 대립하며 수시로 발트 해 국가를 노리지만 워싱턴은 멀리 있고, 가스와 석유를 이용한 지리 전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으로 다른 지정학 서적‘지리의 복수’라는 책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러시아 부분만 소개를 해드렸는대 미국과 중국에 관한 이야기는 김지윤 박사의 유튜브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