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와 악마연회
하나는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가 있다고 믿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또 하나는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로 16세기와 17세기에 이런 마녀사상이 그토록 널리 일반화된 까닭은 무엇인가?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유럽에서 50만명이 마녀 또는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화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죄목은 악마와 계약을 맺은 죄,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 죄, 불법적인 악마연회에 참석한 죄, 악마에게 예배한 죄, 악마의 꽁무니에 입 맞춘 죄, 얼음같이 차디찬 성기를 지닌 남성 악마인 인쿠비(Incubi)와 성교한 죄, 여성 악마인 수쿠비(Succubi)와 성교한 죄 등이다.
악마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공중을 날아다닌 죄, 단 하나만 으로 도 수많은 마녀가 화형 당했다.
마녀에 대한 ‘고백서’는 많지만 자신이 정말 마녀라고 자인한 사례는 실제 역사 속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고백서’와 관련한 불행한 사실은 그 고백서들이 대개는 마녀 피의자들을 고문해 받아썼다는 것이다. 마녀들이 악마와 계약을 맺고 하늘을 날아 악마연회에 참석했다고 고백하기까지 고문은 계속되었다. 또 악마연회에 참석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할 때까지 고문은 계속되었다. 처음 자백한 것을 번복하려 하면 그 자백을 재확인할 때까지 더욱 악랄한 고문이 가해졌다. 즉 고통을 덜 받고 화형주에서 조용히 죽어갈지 아니면 몇 번이고 고문을 당할지 선택해야 한다. 피의자 대부분은 화형주를 선택했다.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회개한 마녀들은 그 대가로 장작더미에 불이 붙기 전에 교살당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종교재판
사실 지구상의 어느 사회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마법 개념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럽에 있던 마녀광란처럼 그렇게 격렬하고 오랫동안 지속된 것은 없었다. 어느 사회의 마법처형에서도 유럽에서 만큼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내지 않았다. 원시사회에서는 누가 마귀에 씌었다고 의심받으면 고문이 죄의 유무를 밝히는 수단의 하나로 사용되기는 했어도, 내가 알기로는 고문으로 조작된 마녀의 입에서 다른 마녀의 이름을 끌어내는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유럽에서도 다른 사람의 이름을 고백하게 하는 데 고문이 이용된 것은 1180년 이후부터였다. 11세기 이전에는 악마와 함께 있었다는 누명을 쓴 사람이 처형되는 경우가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마법사니 마녀니 또는 마법을 사용하는 초자연적 능력이 있느니 하며 비난했다. 사실 초기에는 가톨릭교회는 하늘을 나는 마녀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기원후 1000년에는 그렇게 날아다니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 1480년 이부터는 날아다니는 존재가 없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 기원후 1000년경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라는 말은 악마가 조작해낸 환영에 불과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500년 후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는 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악마와 손잡은 사람들이라고 공식 표명했다.
13세기에 마녀사냥제도는 성숙되었고 완성단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만 해도 마녀사냥제도는 마녀와 투쟁하는 단계는 아니었다. 교회는 초기에는 마녀의 고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고문은 유럽 전역에서 새로 일어나는 로마의 십일조와 성례독점권을 위협하기 시작한 불법적인 교회조직 구성원들에 대해서만 허용되었다.
교회는 이런 체제 전복적인 움직임을 제거하기 위해 종교재판소를 설치했다. 이 종교재판소는 이교도를 근절하는 단 한 가지 기능을 하는 준군사적인 특수기관이었다. 이교도들이 비밀단체로 변하자 수사가 여의치 않음을 깨달은 교황의 수사관들은 이교도들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연루자들의 이름을 말하도록 고문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 13세기 중엽 교황 알렉산더 4세는 고문권을 인정했다.
악마연회는 이교종파들의 비밀집회와 아주 흡사했다. 다른 이교들에게 한 것처럼 마녀들을 고문하면 그들의 자백으로 광범위하게 비밀 음모집단을 색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로마교황은 굴복했다. 교황 이노센트4세는 1484년 교서를 내려 독일 전역의 마녀들을 근절하기 위해 완전한 종교재판권을 사용하라고 허락했다.
인스티토르와 스프렌거는 그들의 저서 [마녀들의 망치]를 통해 교황을 납득시켰다. 이 책은 그 후 오랫동안 마녀사냥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들은 상상만으로 악마연회에 참석하는 마녀들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마녀가 물리적으로 참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마녀들의 위해한 일들을 입증해 분명히 감지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마녀들의 모든 마법과 위해한 행동을 환상이라고 주장하고 마녀들을 두둔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사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불운, 가축과 곡식의 손해, 아이들의 죽음, 질병, 아픔과 고통, 무신앙, 불임, 정신병 등은 마법 때문에 생긴 것이 되었다. [마녀들의 망치]는 마녀 색출방법, 소추방법, 재판방법,고문방법, 유죄판정방법, 선고방법 등을 소상히 설명하며 끝맺고 있다. 이제 마녀사냥제도는 이후 200년 동안 전 유럽을 휩쓸 수 있는 완벽한 제도가 되었다. 카톨릭 마녀사냥꾼 들이나 프로테스탄트 마녀사냥꾼들 모두 사냥제도에 따라 무자비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해마다 투옥되어 화형당한 마녀들의 자리를 충원할 새로운 마녀들을 끊임없이 공급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녀광란
교회가 15세기 전투적 메시아니즘 전통의 대변란들을 진압하기 위해 자원이 밑바닥이 났을 때에 마녀 진압 같은 일에 노력한 까닭은 무엇인가?
체제유지와 이단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항거하는 격렬한 메시아니즘적 저항과 더불어 마법신앙이 점점 널리 퍼져나갔던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 교황은 마녀들에 대한 고문을 허용했고 이 마녀광란은 통일된 기독교가 종지부를 찍고 전쟁과 혁명이 계속되는 16세기와 17세기에 절정에 달했다.
유럽 대중은 봉건주의가 붕괴하고 강력한 민족국가들이 출현함으로써 가장 억압받는 시기를 맞게 되었다. 무역과 시장경제, 금융제도의 발달로 토지 소유자와 자본가들은 최대 이윤을 얻기 위해 기업을 키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봉건제 장원의 사유지와 성곽도시의 특징이었던 소규모 부권주의적 관계가 붕괴해야만 성취될 수 있었다. 토지 소유권은 분할 되고 농노와 가신 대신에 지주와 소작인이 생겼다. 영주 대신 상품 작물을 경작하는 기업농이 생겼다. 농민들은 거주지와 주택을 잃었고 수많은 무산농민은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임금노동자로 전락해 일거리를 찾았다. 11세기부터 인간의 생활은 경쟁적이고 비인격적으로 변하면서 상업화되었다. 즉 전통보다는 이윤에 지배되었다.
빈곤과 소외가 늘어나자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은 교회의 죄와 사치, 부의 집중, 굶주림와 질병, 이슬람제국의 확장, 귀족 간의 끊임없는 전쟁등 으로 이 세계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결국 마녀광의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에게 전가 시켰다는 데 있다. 이 괴물의 환상적인 행위 때문에 고통 받고 소외되고 영세화된 대중은 부패한 성직자들이나 탐욕스러운 귀족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교회나 국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대중과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성직자와 귀족들은 도처에 흩어져 있지만 간파해내기 힘든 적들에게 인류를 보호해주는 위대한 보호자로 등장했다. 결국 이 때문에 십일조를 바치고 세리들에게 군소리를 말아야할 이유가 생겼다. 소란과 분노, 화염과 연기 속에서 내세보다 현세의 삶을 보존해주기 위한 것들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마녀광란은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잠재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들의 저항운동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이웃끼리 서로 싸우게 하며 모든 사람을 소외 시키고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 시켰고 무기력하게 했다. 그 결과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했으며 단순한 지역적인 문제에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부의 재분배와 사회계급 타파를 요구할 수 있는 능력과 교회 및 사회제도에 대결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더 박탈했다. 마녀광란은 과격한 전투적 메시아니즘을 거꾸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마녀광란은 사회특권층의 마법적 총탄이었다. 바로 이것이 마녀광란에 감춰진 비밀이었다.
마녀의 복귀
반문화는 원시인들의 삶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을 예찬한다. 반문화인들은 염주를 목에 걸고 머리띠를 두르고 문신하고 울긋불긋한 옷을 입는다.
오래전부터 서구 과학기술의 발달과 모순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태도와 어른들이 예기치도 않게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은 ‘반문화’라는 생활양식의 전개와 관련이 있다. 반문화라는 생활양식에서는 감정, 자발성, 상상력 등이 선한 것이고 과학, 논리, 객관성 등이 악한 것이다. 반문화라는 생활양식을 주장하는 자들은 ‘객관성’에서의 도피를 역병이 창궐하는 지역에서 빠져나오기나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여긴다.
반문화의 주된 모습은 의식이 역사를 지배한다는 신앙의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이란 자신의 마음속 생각대로 행동하는 존재다. 인간을 더 선하게 만들려면 그의 의식 속에서 더 선한 이념을 불어 넣어주면 된다. 객관적 상황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전 세계는 ‘의식의 혁명’ 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범죄를 증식 시키고 빈곤을 타파하고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누리고 인간과 자연을 조화 시키며 살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단 한가지는 제3의 의식에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이다.“의식은 구조에 우선한다...... 전 국가연합체는 오직 의식에 의존하고 있다.”
반문화운동의 목표는 의식을 표현하고 과시하고 바꾸고 끌어 올리고 확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식을 객관화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즉 이성이란 쓸모없는 ‘쇠부스러기’처럼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3의 의식에 도달한 사람들은‘사실’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사실을 알 필요가 없다. 사실을 알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판된 시기가 1975년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감안 하셔야 합니다. 히피 문화가 퍼지고 반문화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시대도 무시 할수는 없을듯 합니다. 책은 [문화의 수수계끼],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총 3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슬람, 유대교 에서는 돼지를, 흰두는 소를, 기독교는 말을 먹지 못하는 이유, 전쟁이 일어나면 인구수가 감소해야 되지만 줄지 않고 폭증하는 이유, 식인 문화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등 다양한 인류학적 궁금증을 유물론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