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에 출간된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적절한 개입 범위를 논한다는 점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쌍벽을 이루는 저작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1세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인 그의 오랜 친구이자 끝내는 아내가 된 해리엇 테일러와 함께 책을 집필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여성의 참정권과 노동자의 권리 등도 주장하고 있어 '민주주의 입문서' 로도 꼽힌다(테일러의 영향은 밀의 유명한 에세이《여성의 종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권력에도 강하게 반대했다.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개인의 삶이 꽃 피울 뿐더러 다양한 의견이 활발하게 오감으로써 사회의 발전이 한층 용이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자유가 확대되면 개인의 삶과 사회 전체 영역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밀은 개인의 행복과 전체의 이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법과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밀의 자유론은 벤담으로부터 계승한 '공리주의'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이러한 자유는 개인들이 교양 있고 도덕적으로 성숙할 때 의미 있고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각자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더 큰 혼란을 부를 뿐이다. 밀은 이를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물질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을 쫓을 것을 주문한다.
정리하자면 밀의 자유란 ‘개별성의 확대’지 끝없는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밀은 국가의 권력이 확대될수록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통제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이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자유론》은 바로 그러한 고민의 과정이자 답변이다. 이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에 사는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과연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으며, 정부의 개입은 어디까지 이뤄져야 할까? 묘하게도 밀은 《자유론》을 출간한 시점에 이미 이를 '미래의 문제' 라고 표현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밀은 당대에 상당수의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국민과는 동떨어진 하나의 계층을 형성하면서 민주주의 국가가 국민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국민이 선출한 통치자 역시 여전히 사회 내 소수 집단을 탄압하고 있었다. 이른바 '다수의 횡포' 였다. 밀은 이것이 통상적인 정치적 억압보다 더욱 안 좋은 지배 방식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통치는 이른바 '올바른' 행위 방식을 모두에게 강요하는 사회적 압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밀은 이러한 체제에서 새로운 사회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여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를 완벽하게 예견했다. 그런 정권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노예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적인 질문은 사회 통제의 요구와 개인이 원하는 대로 믿고 생각할 자유를 어느 선에서 조화 시키느냐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은 어떤 종류의 보편적 도덕도 정립하지 못하고, 단지 우세한 집단의 호불호를 나타낼 뿐이다. 밀은 자신들이 결코 지배 집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많은 소수 집단들이 종교적 자유를 법제화 하기 위해 싸운 후에야 종교적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편협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다양한 입장들이 경쟁하며 서로가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는 것을 경계할 때에만 비로소 관용적인 정책이나 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생각을 종합하여 밀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그 유명한 '위해 원칙'을 만들었다.
문명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의사에 반해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정당하게 인정되는 유일한 목적은 그들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못하게 막으려는 경우뿐이다. 그 사람 본인을 위해서라는 것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정당화의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 좋다든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를 더 유익하게 할 것이라든가, 그렇게 하는 것이 남들 보기에 현명하거나 심지어 옳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하도록, 또는 그렇게 하지 말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정부나 사회의 지배 세력도 단지 '국민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란 이유만으로 국민에게 법을 시행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유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시민의 행위가명백하게 타인에게 해를 미치지 않는 한, 시민은 그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밀은 이렇게 말한다. "오로지 자신만 관련된 경우 그의 인격의 독립은 당연한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다. 자신에 대해, 즉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 각자는 주권자다."
개인의 자유 영역
밀은 또한 타인에게 해를 미치지 않는 한 기본적 자유로 간주되어야 할 개인의 자유 영역을 제시한다.
• 양심의 자유
•'과학 같은 경험적 문제 또는 도덕과 종교 같은 선험적 문제에 관한 의견및 감각’을 비롯한 사상과 감정의 자유
• 위와 같은 의견을 표현할 자유
• 취향과 탐구의 자유, 즉 다른 사람들에게 ‘어리석고 편협하며 그릇된’ 행동으로 여겨질지라도 ‘우리의 생활을 우리 자신의 성격에 맞도록 계획할 자유'
• 우리가 원하는 사람들과 단결하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규합할 자유
밀은 1850 년대 영국에서도 사람들이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잡혀가고, 심지어 그들에게는 자신의 혐의를 해명할 권리도 없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용인 되는 것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은 법 테두리 밖에 있었던 것이다.
밀에 따르면 사상과 신념을 규제하는 일의 어리석음은 오늘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추앙 받는 소크라테스와 예수가 생전에는 박해 당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매 시대 당대에는 ‘나쁘게’ 여겨졌어도 오늘날에는 ‘좋게’ 평가 받는 인물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의견도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밀이 보기에 역사적으로 어떤 원칙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거나 중대 사안의 논의를 금지 시켰던 사회나 국가에서는 "역사상 한 시대를 주목할 만하게 만드는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정신 활동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힘들다." 국가는 권력을 행사하고 질서를 부여함으로써가 아니라 열린 토론의 가치를 깨닫고 국민을 자유롭게 놓아줌으로써 위대해진다. 이것은 사실 최고의 지성들에게 가장 위대한 진보를 일구어낼 자유를 부여하는 셈이다.
개성, 좋은 사회를 이루는 기초
밀은 개인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이교도의 자아 긍정'이 '기독교도의 자아 부정'만큼이나 가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신의 개성을 꽃피우는 수준에 비례해서 사회에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모든 현명하고도 고상한 일은 개인에 의해 창시되고 있으며또한 창시되어야 한다."
밀은 한나라 사람들의 별난 정도가 그 사회의 천재성, 정신적활력, 도덕적 용기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공고한 가치 체계로 유명해졌지만, 별난 괴짜들의 땅이기도 했다. 밀은 사람들이 식물과 마찬가지로 저마다 성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크게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을 획일화 하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유럽은 개성을 인정하고 장려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밀이 《자유론》을 쓰던 당시에는 모르몬교가 (마치 오늘날의 사이언톨로지처럼) 신흥 종교였는데, 사람들은 어느 작가가 '문명의 퇴보'라고 말한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는 이유로 이 종교를 금지하길 요구했다. 이에 밀은 본인도 모르몬교를 싫어하지만 "어떤사회라도 다른 사회에 문명화를 강요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취했다. 나머지 사회가 모르몬교 때문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는 한, 그 종파를 법으로 금지시킬근거는 없는 것이다. 밀은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한다.
누구도 술에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군인이나 경찰이 근무 중 술에 취했다면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 요컨대 어떤 행동이 개인이나 공중에게 명백히 손해를 끼치거나 뚜렷이 그럴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즉각 자유의 영역을 벗어나 도덕이나 법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단 그 위험은 명시적이고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방해 받지 않고 자신의 신념, 인생 계획, 대의, 관심사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원칙의 적용
《자유론》에서 밀은 자신의 원칙에서 비롯되는 정부 정책의 문제를 한 장에 걸쳐 길게 다룬다. 예를 들어 밀의 원칙에 따르면,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사실상 매춘이나 도박을 금지하자고 주장할 수 없고 각자의 양심이 허락하는 한에서 간통이나 도박을 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 매춘 알선업자나 도박장 운영자가 되는 것이 자유롭게 허용되어도 좋은 걸까?
밀은 이 문제에 명확한 답은 제시하지 않지만 정부의 역할은'국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를 막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만약 사람들이 온갖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거나 도박하길 원한다면 그것은그들의 선택이다. 다만 정부는 과세와 면허제를 통해 해악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밀도 국민의 음주량을 줄이기 위한 알코올 과세에는 찬성한다). 그는 또 국가에서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장래 아이를 키울 만한 경제력을 입증하도록 의무화하여 새로 태어날 아기가 가난 때문에 비참한 처지에 놓일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성과를 얻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캐스선스타인과 리처드 탈러는《넛지》(2008)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아무런 행동을 강요하지 않고도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인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al paternalism'를 소개한다. 예를 들면, 장기 기증 서류 양식을 만들 때 운전면허 소지자일 경우 별도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사망시 무조건 장기를 기부하는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도 그 나라에서 확보되는 장기 수가 극적으로 늘어나 1년에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할수 있다. 그럼에도 이 과정은 규제가 전혀 없고, 그저 저자들의 표현대로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ure'만 바뀔 뿐이다.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역할
밀은 (통치자 이든 동료 시민이든 간에)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관철 시키려는 것이 인간의 타고난 성향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정부 권력은 점차 확대되고 개인의 자유는 갈수록 침해 당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확대되는 추세를 경고한다고 해서 오늘날의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자들처럼 정부에 조금의 정당성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버드 출신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명저인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1974)에서 정부의 주요 역할을 생명과 재산의 보호 그리고계약 시행으로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의 사상적 계승자가 오늘날의 자유지상주의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밀은 결코 극단주의자가 아니었고 애덤 스미스의 상식적 유형에 훨씬 더 가까웠다. 둘 다 정부가 사회와 경제의 전분야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현상을 경고했지만,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밀을 바라보는 정확한 관점은 그를 진보 정치의 위대한 인도자로 보는것이다. 그에 따르면 진보의 원칙은 “자유를 사랑하는 형태이든발전을 사랑하는 형태이든 관습의 지배에는 반대하고, 적어도관습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진보와 관습 간의 투쟁이 인류 역사의 주된 관심사를 이룬다."
좌파와 우파 모두 자신들이 밀을 계승한다고 주장해왔지만, 밀이 제시하는 자유의 의미는 다양한 진영 정치를 뛰어넘는다.《자유론》은 열린 사회를 위한 선언문으로 보는 편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