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단편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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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이 태어난 날, 유아원이 끝나고 집에 갔을 때 거실에 매달려 있는 아버지를 내가 처음 목격했다. 얼굴은 빨갛게 부풀어 있고, 지린내가 거실에 진동했다. 그날 내 동생은 태어났고, 아버진 죽었다. 가족의 수는 변하지 않았으나 생활은 그 전보다 몇 배는 힘들어졌고, 어머니의 얼굴을 보기도 쉽지 않았다. 다들 생활에 쪼들려 살아야 했고, 눈가에서 여유란 찾아보기 힘들었다. 둘째 누나가 자살한 이유는 명확치 않다. 남자친구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으며, 집안의 불행에 비관해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수긍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유를 찾아 나설 여력도 없었다. 죽음은 그 자체로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법칙인지는 몰라도 죽음은 연쇄성을 띠고 있어서 어머니까지 그 연장선에 서 있었고, 둘째 누나와 아버지가 목을 매달았던 그 자리에서 흉측한 얼굴로 매달려 있어야 했다. 그것이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음은 보이지 않지만,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 칙칙한 냄새가 집 곳곳에 퍼져 있고, 냄새에 힘에 억눌려 집안은 늘 어두웠다. 하지만 우리는 이사를 가지 않았다. 죽는 방법이 목매다는 것밖에 없다고 믿듯이 우리가 사는 곳도 이 집 밖에 없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둘째누나가 죽은 거실에서 나머지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텔레비전을 봤으며, 형이 결혼하여 분가하자 큰누나와 나, 그리고 동생, 이렇게 셋이서 거실을 차지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거실에 매달려 있던 가족들을 떠올리는 것은 괴롭지만, 사실 그 광경은 머리 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것이고, 떠났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머리 속 깊은 곳에서 튀어 나왔다. 스크린에서 웃긴 장면이 나와도 크게 웃진 못했는데, 흔들거리는 둘째 누나의 다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둘째 누나는 죽으면서도 텔레비전을 보고 싶었는지, 아니면 조용한 가운데 죽기는 두려웠는지,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로 목을 매달았다.
“나는 연예인들이 좋아.”
둘째 누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내게 말했었다. 나에게 말하는 것인지 스크린에 대고 말하는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교복도 벗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동공에 힘이 풀린다. 어쩌면 스크린 뒤의 무언가를 보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면 누나는 늘 그곳에 앉았고, 그것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텔레비전은 우리 집에서 가장 시끄러운 기계니까 어두운 분위기를 반전시킬 가장 큰 힘을 가진 것 같다. 누나도 그것을 느끼고 자꾸 그 앞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쪼그려 앉아 교복치마 아래로 드러난 하얀 양말을 붙잡고 앞뒤로 살짝 흔들어가며 텔레비전을 봤는데, 저녁밥을 먹게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누나는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누나의 말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들로 누나의 머리 속이 꽉 차 있는 것이다.
저녁밥을 먹을 때도 누나의 눈은 거실에서 움직이는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누나는 연예인 중에 누가 제일 좋아?”
내 질문은 궁금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누나의 정신세계를 엿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다 좋아.”
텔레비전이 많은 연예인들을 필요로 하듯이 누나의 머릿속은 그 많은 연예인들이 다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일수록 누나는 수동적이 되어가고, 나중에는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둘째 누나는 이미 텔레비전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부정적으로 생각된 것은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집안의 운명을 잊거나 벗어날 수 있다면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만한 일인 것이다. 목을 매고 죽는 것 보다는 텔레비전의 노예가 훨씬 낫다. 그래서 둘째 누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가 자살한 상태였지만, 가족 중 누군가 더 죽는다고 해도 둘째 누나는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학교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봐야 했던 것은 내게 간식을 차려주는 누나가 아니라, 교복을 입은 채로 거실에 매달려 있는 누나였다. 나는 다른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 거실 의자에 앉아 누나가 켜놓은 텔레비전 프로를 봤다. 연예인들이 꽤 많이 나오는 오락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형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소식을 알려준 동생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형이 목을 매다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생이 전화한 것으로 보아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가족들이 목을 매단 그 자리에서 형도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죽는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소속감을 잃지 않게 해줘서 죽음을 쉽게 실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죽은 이유는 중요치 않다. 부부싸움을 했거나 아니면 그 다른 이유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죽은 사실 자체일 뿐이다. 형은 살아 있을 때 자신은 자살하지 않을 것이라고 늘 말했다. 어쩌면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불안감이 표출된 것일 지도 모른다. 말을 꺼낼수록 불안감은 쌓여 갔고, 나중에는 인간의 의지로는 버틸 수 없는 그런 상태를 만들어 버린다. 거기에 더해 죽음의 냄새를 너무 오래 맡다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법이다.
“형은 끌어 내렸니?”
동생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직 내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동생은 매달려 있는 형을 뒤에 두고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동생한테 공포감을 실어주었을 지는 모르지만 동생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죽음의 냄새가 동생의 감각을 마비시켜 버린 것일 지도 모른다. 동생은 가족 중 목소리의 톤이 가장 일정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평상시와 같은 속도와 높이로 말을 했기 때문에 애교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동생에게 별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나름대로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비밀의 상자를 가지고 있고,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간혹 자신조차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고 그것에 의해 조종당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거실 천장에 드러난 버팀목에 밧줄이 슬키는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린다.
“오빤 언제와?”
짧은 침묵이 흐른다.
이번 여행은 먼 곳에 사는 친구 집으로 향했다. 친구 집에 가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집의 어두운 공기에 몸도 마음도 억눌릴 만큼 눌려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직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친구가 놀러오라는 말에 그 마음은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튀어나왔고,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동안 준비를 끝마치고 버스를 탔다. 도시를 빠져나와 나무들이 많이 나타나고 길이 험해질수록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잠시 집을 떠나 있는 중에도 죽음의 냄새는 내게 묻어 왔다. 그 냄새가 다시 나를 죽음의 공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항할 힘이 내겐 남아 있지 않다. 사실 그런 힘 따윈 존재하지도 않았다.
“밤까진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핸드폰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온다. 동생이 텔레비전을 켠 모양이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형도 만약 눈이 감기지 않았다면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나는 왔니?”
큰 누나는 늘 신경질적이다. 형은 큰누나가 둘째 누나가 죽은 뒤부터 그렇게 변했다고 그랬다. 누나는 인상 쓰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눈 사이에 주름이 지어져 있다. 언제나 짙은 화장으로 그 주름을 가리고 다녔다.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고, 조금 검은 머리가 삐져나오려 하면 미용실로 달려 들어갔다. 머리색으로 우리 가족의 운명과 경계를 지으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나의 행동은 운명의 울타리 안에서 몸부림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심하게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언젠가 누나가 나를 밖으로 불렀다. 누나는 비를 맞으며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었다. 누나는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비를 온몸으로 받아냈고, 화장이 흘러내려 옷을 물들였다. 나는 그네 옆에 서서 우산 속에서 비를 피했다. 누나의 눈가에 접힌 주름 아래로 미소가 흘러내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물어봐 주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네가 멈추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누나가 말을 꺼냈다.
“나 오늘 사람 죽였어.”
그 말을 토해놓고 누나의 미소는 더욱 립스틱을 타고 번졌다. 밤이 비를 뿌리고, 누나는 비를 맞는 것에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사람을 죽인 기쁨에 넘쳐 자신의 온몸이 창백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 했다.
나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다. 그 사실을 누나만의 비밀상자에 넣어두기를 바랬다. 하지만, 누나는 비밀을 나와 공유하고 싶어 했다. 그게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인간은 커다란 비밀은 혼자 갖고 있지 못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고, 누나도 그 커다란 비밀을 공유할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그게 가족이라면 비밀이 더 새어나갈 위험이 적어지게 된다.
“왜 죽였는데?”
누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옆에 바짝 붙어 비밀을 토해낸다.
“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그래. 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야. 난 죽기 싫어. 하지만, 내가 죽는 건 운명이 정해 놓은 일이란 말이야. 우리 가족은 모두 죽게 되어 있어. 네가 먼저 죽을지 내가 먼저 죽을 지도 모르는 것이지.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살인이야. 어차피 다른 사람이 대신 죽어주면 해결되는 거 아니겠어?"
밤의 기운이 감싸고 있는 누나의 목소리는 음산하다. 놀이터에 떨어지는 비는 소리 없이 모래 속으로 빠져든다. 빗소리는 누나의 목소리가 내 귀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오늘 술집에 갔다가 대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걔를 보는 순간 떠올랐어. 나대신 죽어 줄 사람이란 걸. 내가 갖고 다니던 칼 있지? 그 붕어모양으로 생긴 칼 말이야. 걔가 화장실 갈 때 따라가서 힘껏 찔러줬지. 그런데 내가 좀 소질이 있는 것 같아. 한 번 찔러서 쓰러지는 것 보니까 겁이 나는 게 아니라 더 신나더라고. 그래서 화장실 끝에 칸에 몰아넣고 마구 찔렀어. 그리고 옷 벗겨서, 주제에 좋은 옷을 입었더라고. 팬티 있는 부분부터 가슴 사이까지 쭉 잘라버렸어. 손으로 내장을 마구 꺼냈는데, 뱃속에 그런 게 들어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까 굉장하더라고. 너도 나중에 해봐.”
내장을 꺼내는 누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내 상상력은 빈약했다. 기껏해야 생선의 내장을 꺼내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누나의 말에 별 감흥이 없었다.
“어쨌든 내 대신 죽어준 거야. 난 이제 자살할 필요가 없어졌어.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고개를 끄덕였으나 누나가 그 모습을 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누나의 눈은 온통 검은 색이었다. 눈 화장이 흘러내려 눈을 염색시켜 버린 것 같다. 그러나 눈을 거의 깜빡거리지 않는다.
누나의 생각은 언제나 얌채공처럼 통통 튀어 어디로 갈지 몰랐다. 갑자기 여행을 간다고 사라지기도 하고, 집에 불을 지른다고 부엌의 바닥을 홀랑 태워먹은 적도 있다. 정신병의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는 당연한 듯이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였다. 우리를 찌르지 않기만 하면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누나의 삶은 누나의 머리 속에서 분열되고 재조합되어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떨 때는 두 가지 인격이 한번에 튀어나와 둘이 싸우기도 했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 변하고 그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도 빠르게 변했다. 누나의 눈으로 통해 보이는 세상은 이미 종교적 지옥의 이상을 달리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고 누나가 세상에 적응 못한 것은 아니다. 결혼은 안했지만, 직장도 있었고 애인도 있다. 누나는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한번은 악마가 자신을 쫓아온다고 소리치며 집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이불 속에 숨어 벌벌 떨었다. 보통 가정 같으면 한바탕 소란이 일겠지만, 우리 집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흘렀다. 가족들은 어두운 기운에 가려 누나가 보이지 않는 듯 행동했고, 우리는 그것이 당연한 듯이 여겼다. 누나가 이불 속에서 발작을 하는 동안에도 형은 책을 읽었고, 동생은 텔레비전을 봤다. 모두들 세상과 분리된 듯한 동작을 했으며 서로 연결된 것은 자살이라는 운명뿐인 것 같다.
“너도 나처럼 해. 사람 한명을 죽여.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거야.”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생각은 누나의 말에 수긍하지 않고 있다. 누나가 한 행동은 미친 짓일 뿐이다. 그런 행동으로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누나의 몸에서도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언젠가 누나도 자살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의 살인이 잠시 동안 정신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을 진 몰라도 그 감흥이 사라지고 나면 누나는 또다시 살인을 저질러라 할 것이다. 그리고 끝내 자신을 죽일 계획으로 삶을 마감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언니 조금 전에 왔어. 언니가 오빠 좋아하는 찌개 끓이고 있어.”
“무슨 찌개?”
물어보기는 했지만, 그것에 관심은 없다.
“참치 많이 넣은 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없다. 어릴 적부터 배가 고파도 음식이 통 맛이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늘 송장 같은 모습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내 얼굴에 낀 검은 빛은 밥을 잘 안 먹어서가 아니라 죽음의 기운 때문이라고 믿었다.
“내가 갈 때까지 형 안 끌어내릴 거니? 계속 매달아 놓기는 좀 그렇잖아. 누나랑 같이 하면 별로 안 힘들 텐데.”
동생한테 말하면서도 꼭 형을 끌어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냥 매달아 놓고 살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매달려 있지 않아도 거실엔 늘 그들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가끔씩 그들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착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밤에 물을 마시러 어두운 거실을 지나갈 때 뭔가 매달려 천천히 흔들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그럴 때면 나는 가만히 멈춰 그것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려고 한 것은 그곳에 무엇이 있냐가 아니라 가족 중 누가 매달려 있는 가였다. 어머니의 모습 같기도 하고 아버지의 모습 같기도 하고, 둘째 누나의 모습 같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환영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밤마다 그 환영에 시달렸고,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상에 잠은 늘 악몽으로 이어졌다.
언젠가 거실에 물을 먹으러 나갔을 때, 그것이 환영이 아니라 살아 있던 가족 중의 한명이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것을 생각할 때 커다란 두려움이나 공포는 없었지만,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런 상상에 억눌려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곤두선 신경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두통에 시달렸다. 두통은 늘 악몽과 함께 찾아 왔다.
꿈에서 아버지는 목이 매달린 채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내방 침대에 누워 있지만, 아버지의 행동을 다 보고 있다. 아버지는 천천히 자신의 목을 조이는 줄에서 빠져나온다. 얼굴이 불이 붙은 플라스틱처럼 녹아내리는 듯 하며 줄의 좁은 구멍을 통과한다. 그리고 거실을 마주보고 있는 내 방으로 들어온다. 움직임은 빨라 보이기도 하면서 느려서 그 시간의 거리감을 느낄 수가 없다. 아버지의 손에는 밧줄이 들려 있다. 나는 눈을 뜨고 있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소리를 지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며 전신의 힘을 뺀다. 그리고 내 목에 밧줄을 감는 아버지의 손에서 체온을 느낀다.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처음에 꿈이라고 생각했다가도 금방 현실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 거친 밧줄의 따가움, 아버지 손의 까칠한 굳은 살, 밧줄이 살을 긁으며 지나갈 때의 고통. 아버지의 손에 핏줄과 힘줄이 동시에 일어나고, 목을 감은 밧줄은 숨을 막는다. 머리로 몰린 피는 몸통으로 가지 못하고 뇌를 짓누른다. 그리고 두통이 시체를 뒤덮는 까마귀 때처럼 몰려든다.
두통은 잠에서 깬 후에도 한참동안 사라지지 않고, 머리 속의 기생충이 되어 뇌의 이곳저곳을 파고든다. 혈관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잠식되어 뇌까지 토해버릴 것 같은 메스꺼움을 느낀다. 하지만, 위에선 신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동생의 목소리가 핸드폰의 잡음과 함께 귓속을 울린다.
“나중에 오빠가 와서 세 명 다 끌어내려.”
“뭐라고?”
“오빠가 와서 세 명 다 끌어내리라고.”
나는 잠시 생각한다.
“세 명이라니?”
“나랑 언니랑 오늘 죽기로 했거든.”
흥분하고 화내야 하는 일이지만, 마음은 의외로 담담하다. 무섭고 두렵기보다는 언젠가 올 것이 온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연쇄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 고리를 끊기에 인간의 힘은 너무나 약하다. 누나가 살인을 저지른 것도 고리를 끊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역시 누나도 자살을 준비하고 있다.
“버팀목에 누나랑 너랑 줄 매달 자리는 있니?”
“어.”
내가 집에 들어가면 세 명의 시체가 거실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그 광경을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피로가 몰려든다.
“오빠 들어오면 우리들 끌어내리기 전에 찌개부터 먹어.”
“알았어.”
전화기 너머로 찌개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식욕이 돌았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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