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도와의 설전

폭풍전야 작성일 05.04.22 23: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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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207:+::+::+::+::+::+::+::+::+::+::+:기독교에선 윤회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도 윤회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서기 335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어머니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신약성경에 실려 있던 윤회에 대한 가르침을 삭제하였고, 서기 553년의 제2차 종교공의회에서 윤회의 이론을 이단으로 규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민중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인 음모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잡담>
A는 독실한 기독교(개신교) 신도다.
어느 날 A가 물었다.

“전생이 어디 있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는데...“
“성서가 전부는 아니외다.”
“성서가 전부가 아니라니요? 그런 불경(不敬)이 어디 있소?"
“전생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생이 어디 있어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단 한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주님을 믿고,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간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또 공평하신 분이라고
하였는데, 같은 처지에 처한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들의 논리에 의하면 하느님은 지독한 심술쟁이에다가
욕심쟁이요.“
“아니? 무슨 그런 불경스런 소리를 합니까?”
“세상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 없이 편하게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
장애자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세상에 버려져 모진 고통을 받다가 굶어 죽는 이들도 있소. “
“그래도 하느님의 똑같은 축복으로 태어났습니까? 당신들이 말하는 하느님의 축복이란 자신들만이 선택되었다는 이기심,
자만심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질병과 기아의 고통으로 죽어 가는 수많은
아이들을 본다면, 더구나 당신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하느님의 축복으로 태어났다는 말은 감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
“교회의 역사를 아십니까?”
“.................................”
“성서가 언제 씌어 졌는지 아십니까?”
“.................................”
“성서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씌어 졌는지도 모르면서 걸핏하면 성서를 들먹입니까, 당신네 목사에게 물어보면 믿음이 부족해서 엉뚱한 의문을 품는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니 내 말해주리다. 가장 중요한 예수의 행적이 사복음서에 나와 있는 것뿐이니 사복음서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사복음서는 누가 썼는지 아십니까?”
“마태오, 누가(루까), 마가(마르꼬), 요한이 아닙니까?"
"흔히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다르답니다.
예수께서 살았을 때에 숨죽여 지내던 사람들이 삼사십 년이나 지난 후부터 예수의 언행을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겼는데, 불행하게도 모두 작자미상 입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히브리어를 몰라서 헬라어(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는데, 헬라어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상류 계급이나 랍비등 지식인층이었습니다.
비슷한 연대 우리의 경우를 보면 이해하기 쉽겠지요.
우리는 한자를 사용하였고, 한자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지배계층이었습니다.
예수를 존경하던 그들이(성서 원작자) 예수 사후 삼사십 년이나 지난 후부터 글로 남긴 것은 그들이 늙어 죽을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썼거나,
그 얘기를(예수의 행적) 전해들은 후세들이 썼기 때문에 나중에 쓴 것은 거의 백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무엇이 겁이 났던지 그들 모두 자신의 이름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했던 것도 있고, 말씀만 기록했던 것도 있는데, 말씀만 기록했던 것을 어록(語錄)이라고 합니다.
당시까지 일정한 형식 없이 집회하던 교회는 문서로 된 책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입니다.
당시 초기교회의 지도자들이 전해져오는 여러 가지 문서들을 취합하고 교정하여 신약성서를 만들었는데,
마태복음, 요한복음, 하고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4세기경입니다.
예수가 죽은 후 거의 400 년이 흘렀을 때 교회의 지표인 성서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역사적(歷史的) 사실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내 말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면 양심 바른 목사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도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니 알고 있으니 부인(否認)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심을 품는 것은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얼버무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성서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구약성서는 읽어봐서 잘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 유대민족의 역사서라는 점입니다. 고대 히브리 문자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모르지만,
대부분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던 것을 후대에 문자로 기록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탄생이 약 2000년 전인데, 당시 우리는 삼국시대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갈 무렵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글이 없었습니다.
2000년 전, 지구상에서 어떤 민족이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을까요?
당시에도 한반도에 삼국은 존재하였지만, 당시에 씌어진 역사는 없습니다.
모두가 훨씬 뒤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탄생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구약성서는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언어는 히브리어를 사용했겠지요.
그러나 히브리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하는 주장에는 상당한 의심이 갑니다.
고대 히브리문자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형태가 상형문자 수준을 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 종이가 없었던 시절이라서 양피지에
기록되었다고들 하는데, 어떤 재료로 기록 할 수 있었을까요?
먹물도 잉크도 없었던 시절인데... 의문은 끝이 없습니다.
구약성서의 그 방대한 양을 보십시오. 그것을 미개한 문자로 양피지에 썼다면 그 양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마어마하게 많은 분량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 어디에도 그만한 원본 성서는 없습니다.
우리의 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우리 글로 번역해서 성경과 같이 깨알 같은 글씨로 책을 만든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그 책의 두께가 성경보다 두꺼울까요, 더 얇을 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재미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고대문자는 우리의 한글처럼 말을 문자로 똑같이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밀접하게 사용하는 영어를 예로 들어보십시오. 한 가지 문장을 여러 가지 다른 문장으로 번역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자, 한 획이라도 틀리면 큰 불경이나 저지르는 것처럼 올가미를 씌운 그 자체가 이미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글쎄요.”
“성서만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하다보면 심각한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초기 교회의 운영자들은 전례를 만들었습니다.
미사(MISA)가 그것이지요. 미사 중에 최후의 만찬 때 예수의 메시지를 재현하고, 신자들이 그 행위에 참가함으로써 좀더 깊이 예수에게 다다가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지요.
왜 예수의 메시지를 중요하게 여기느냐, 왜 최후의 만찬과정을 재현 하면서 까지 그분의 사상을 미사의 중심으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예수의 사상이 인간들이 가야 할 길을 올바르게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의 예배처럼 성서를 중심으로 집회를 하게 되면,
인간들의 욕심에 의해서 성서의 내용이 왜곡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형식이 없는 것은 내용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일정한 형식을 만들고, 그 형식에 계속 참여함으로써 참뜻을 전하는 것이 성서만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보다 오류에 빠질 확률은 낮은 것이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성서가 채택된 것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가톨릭 내부에서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논란(論難)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중세에 와서 논란 끝에 처음의 결정을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으로 지금에 이른 것 입니다. 지금 가톨릭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서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개신교)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데요?”
“이런, 당신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지극히 섬기는 성경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성서가 누구에 의해서 번역되었는지도 모르다니... 어찌되었든, 개신교의 성서는 특이하게도 교회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번역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882년 만주에서 전교 활동하던 존 로스(John Ross) 목사와 평신도인 이응찬, 백홍준에 의해서 이 번역되었고, 1887년에 가 발행되었으며,1883년 일본에서 개신교인이 된 이수정이 를 발행하였답니다.
1882년 한미조약에 의해서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왔는데,
그때 이미 국어로 번역된 마가복음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1887년에 조직된 성서번역위원회에서 1900년 신약성서를
발행하였고,1911년에 구약성서를 간행하였으며, 지금의 성경전서는 1956년에 개정하여 발행한 것이랍니다. 당시의 과정이 헬라어를 번역한 것인지 라틴어인지, 영어나 불어를 번역한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외국어를 한글로 번역을 하는데 있어서 완벽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예수를 호칭할 때 “주님!”으로 번역했는데. 영어는 MASTER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예수 생존시)의 상황으로 보아 영어로 번역한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으로 번역하지 말고 “주인님”으로 하는 것이 원문에 더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정서로 보아 주인님으로 번역한다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들것입니다. 기도할 때 “주인님”으로 호칭해 보십시오.
아마 그 때문에 “주님”으로 정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례만 보아도 성서의 한 구절이나 단어에 매달려 왈가왈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전하고자했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성경의 어느 한 구절에 매달리지 말아야하며 특히 구약성서와 연결은 위험한 일입니다.
구약성서는 그 옛날 무지몽매(無知蒙昧)하기 짝이 없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만들어 졌고, 수천 년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동안 조금씩 변형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 후 문자(文字)가 생겨나 기록된 것 역시 상형문자(象形文字)의 수준이라 예나 지금이나 정확한 해석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볼 때 어느 한 구절을 강조한다거나
신약성서와 연계시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비 교인들이 신, 구약을 이리저리 갖다 붙여 마음대로 해석하여 신자들을 현혹하고 우롱하고 있습니다.
내가보기엔 개신교, 특히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아주 문제가 많습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거의 다 조금씩은 성서를 잘못 해석하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밑천이 성서밖에 없으니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서 교회를 꾸려나가야 하는데, 올바른 해석으로 바른말을 하면, 운영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바른말을 하고, 정직하게 가르치자면 운영자들이 가난하게
살아야 가능한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자하니 천주교를 옹호하는 것 같은데 혹시 천주교인이 아닙니까?”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고, 철들면서 천주교인이 되었고, 무언가를 조금 알게 된 지금 진짜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천주교에도, 개신교에도 속하지 않는 예수쟁이지요.
천주교 내부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대개 그 구성원 중 일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구성이나 운영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습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가장 큰 다른 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목사는 결혼 할 수 있지만, 신부나 수녀는 그것이 허용(許容)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개인 재산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개신교만큼 부패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주교도 초기에는 신부들이 결혼을 했습니다. 교황도 결혼했고, 심지어는 4대를 연이어 교황 자리를 물려 준 적도 있었지요. 당연히 부패 할 수밖에 없었지요.
성직자의 결혼이 교회운영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결혼을 금지시켰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성직자 자신들이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채운 것이지요. 대단한 결단이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이라도 신부, 수녀들이 결혼한다면 천주교도 멀지 않은 장래에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개신교가 하나 되지 못하고 마치 장사꾼처럼 큰 점포도 있고,
작은 것이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재산이 많은 자와 가난한 자가 힘을 합쳐 공동의 재산으로
등록 할 수 있습니까? 중세 때 개신교의 파생도 이런 인간들의 이기심과 소유욕이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교 다닐 때 마르틴루터가 종교 개혁을 했고, 그 이유는
교회가 면죄부를 팔아서 돈을 끌어 모으는데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배웠는데요.”
“조금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저도 중학교 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그저 그런 정도로 배웠으니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원래 “면죄부”란 것은 없었습니다. “대사부”가 와전(訛傳) 된 것이지요.
그러면 대사부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겠지요?
다들 알고 있다시피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告解聖事)라는
어려운 관문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신부(神父)에게 고백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직접고백하지 왜 같은 인간인 신부에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느님에게 직통으로 죄를 뉘우치고 고백한답니다.”하면서 천주교의 방식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쳤겠지요.
나 역시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 무리는 아닙니다.
신부에게 고백성사의 들을 권리를 준 것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권위와 위엄으로 신자들 위에 군림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스템을 만든 것은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지요.
신부들은 타인의 고백을 들음으로써 인간들의 추악한 내면을 알게 됩니다.
자신도 그런 나약한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자신들도 그들처럼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여 만든 시스템이 고해성사인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신부들은 심신을 수양하게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타인의 죄를 수없이 들어야한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정말 지혜로운 신부들이 후대 신부들을 위해서 만든 치밀한 심신 수양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나약함을 인정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신부들도 고백성사의 의무가 있으니까요. 고백을 해보면 알겠지만 그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마음에 도달하지 않으면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께 직접 고백 한다구요? 어이없는 말씀입니다.
솔직하게 얘기해봅시다. 직접 만날 수도 없고, 대화가 불가능한 조물주에게 고백을 한다고요? 간사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인간이 그런 일을 과연 진심으로 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마음에 든다고 듬뿍 상을 내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을 내리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성사라는 제도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현명한 사람들이
간사한 인간들을 위해서 만든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죄와 벌을 구분해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의 물건을 훔쳤다면, 분명히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 후에 고백을 하고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하면
끝나는 일일까요? 훔친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사죄해야합니다.
그 주인이 용서해주면 죄는 사 해진 것이지요.
그러나 벌은 남아있습니다. 재판 받고 옥고를 치러야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벌(罰)은 죽은 다음에 연옥(煉獄)에서 그 대가를 치러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살아서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방법을 보속(補贖)이라고 합니다.
초기 교회에서 보속이 너무 힘들고 오랜 시일을 요하는 무거운 것이어서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위로 그 벌을 사(赦)해주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대사(大赦)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대사(大赦)는 교황이나 주교만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권한입니다.
죄를 고백하고도 그 벌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어리석은 신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이지요. 현실로 비교하자면 나 같은 사면제도가 아닐까 싶네요.
어쨌거나 대사도 남용하면 안 되는 것이기에 교회에서는 엄격히 제한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중세 문예부흥시대에 예술이 찬란하게 꽃필 무렵
교회를 크고 화려하게 짓는 풍토가 생깁니다.
많은 재정이 필요하게 되지요. 재정의 확보를 위해서 대사부를
신도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교회건립기금을 받았답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서 남발되면서 면죄부란 지탄을 받게 되었답니다. 요즈음 교회들이나 일부 신부들도 크고 화려한 교회를 짓는다고 신자들을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은 대사부나 면죄부를 팔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한 감언이설이나 협박성 설교로 신자들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전 건립기금”의 중압감 때문에 교회를 등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가 많이 반성해야할 일입니다.
현재도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많은 교회들이 난립하고 있고,
교회하나를 짓자면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났을까요? 성전 건립기금... 성전(聖殿)이랍니다.
왜 성전(聖殿)이냐고 물었더니 하느님을 모시는 곳이니 성전(聖殿)이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고 물었지요.
하느님은 이 세상 어디에도 계시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 대답하더군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하느님을 어째서 당신들은
그 좁은 당신네 교회에 가두려고 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아무 대답도 못하더군요. 하느님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였고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한다면 이 세상 어느 한 곳이라도 성스럽지 않은 곳이 없을 텐데, 왜 당신들의 교회만이 성스러운 장소라고 말하느냐고 물었더니 주여! 이 사악한자를 용서 하소서, 하고 사라지더군요. 내 얘기가 너무 길었지요?”
“그러면 개신교의 창시자인 마르틴 루터는 어떻게 된 겁니까?”
“마르틴 루터의 직업이 무엇인지 압니까?”
“모릅니다.”
“마르틴 루터는 신부(神父)였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전례에 관심이 많았고, 상당히 잘 나가는 신부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노동자 편에 서서 정부를 상대로 노동운동에
앞장을 섰고, 후에는 정부 쪽으로 돌아서서 노동자를 탄압하는 편에 서게 됩니다. 그 내용을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힘이 생겼을 때 교회와 마찰이 시작되었고, 교회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반대를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신부는 교회의 명령에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순명(順命)이라고 합니다. 루터는 순명을 거부했고, 교회는 파문(破門)이라는 처벌을 가합니다. 신부 직을 박탈당한 거지요.
내 생각이지만 루터가 지금시대에서 그런 행위를 했다면 징계나 경고 정도로 끝나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튼 신부 직을 박탈당한 루터는 26세 연하의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이유가 여자 때문이었는지,
신부 옷을 벗었으니까 마음대로 결혼했는지 그 관계는 나도 모릅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신부노릇 하는 것밖에 모르던 루터는
또 다른 하나의 교회를 만들어 나름대로 교회를 운영하게 됩니다.
가톨릭을 떠난 사람이 가톨릭의 전례대로 운영 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래서 성서만 가지고 교회를 엮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됩니다. 지금도 신부, 수녀에게는 사회적 대접이 괜찮습니다만
중세시대에는 교회의 힘이 국가를 좌우할 정도로 컸습니다.
신부들은 대단히 높은 지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신부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십 년 정도의 긴 기간동안 공부하고 기도하고 심신을 수양하고 여러 관문을 거쳐 공인을 받아야만 비로소 신부가 됩니다.
거기에 속하고 싶어도 자격이나 소양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교회를 만들고 싶지만
힘도 없고, 교회의 위세에 눌려 지내고 있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듣기 좋게 종교 개혁파라고 부릅니다.
마르틴 루터는 독일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때를 만난 듯이 유럽 여기저기서 교회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교회들은 루터파 교회라고 자칭했답니다.
내가 보기에 진정한 의미의 종교 개혁이란 없었습니다.
그저 시대의 흐름과 인간들의 이기심, 욕심이 만들어낸 하나의 사회 현상일 뿐입니다. 개혁이란 어떤 집단의 내부에서 잘못된 것을 대폭 수정하여
그 집단이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하는 것인데, 큰 집단에서 쫓겨나거나 그 집단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작은집을 여기 저기 만든 것과 같은 양상입니다. 내가 개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개신교를 폄하(貶下)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아는 것이 개인의 정신 발전에 이롭기 때문입니다.
오해와 편견은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타인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많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모상을 세워두고 절을 하는데 이것은 우상숭배행위가 아닙니까?”
“나도 성당에 다닐 때 성모상 앞에서 기도 한 적은 있습니다.
절은 해 보지 않았는데 교회에서도 절을 해라, 하지 마라,
지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길 떠난 자식이 무사하기를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빌고 또 빌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정성을 누가 감히 우상숭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천지신명(天地神明)께 비나이다...로 시작하는 기도, 기원.
그것은 인간사를 주관하는 미지의 어떤 신(神)을 통하여 자신의 정성을 보내는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내 경험으로 보면 강력한 염(念)은 이승과 저승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버릇과 전통이 성모상 앞에서도 가끔씩 이루어집니다.
할머니들이 잘 그래요. 좀 지나치다 싶으면 신부들이 자제하라고 부탁하는 정도입니다. 길을 가다가 웃어른을 만나면 머리 숙여 목례하는 것이 우리네 풍습입니다. 서양식 악수를 하면서도 머리를 숙이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뿐 입니다. 머리를 숙이는 것이 존경심의 표시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그저 오래된 버릇일 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불상(佛像) 앞에서 절하는 것을 보고 우상숭배라고 하는데,
그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불상(佛像)은 부처의 상징입니다.
돌 신(石神), 나무 신, 또는 해괴한 형상을 세워놓고 절대 신(神)으로 모신다면 우상숭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는 실존했던 인물이며 훌륭한 사상과 가르침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그런 분에게 존경심을 표현하고 그 가르침을 받겠다는 것이 우상숭배가 될 수 없지요. 제사, 차례 지내는 것도 우상숭배로 몰아가는 행위는 지탄받을 일입니다. 또, 요즈음에는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일부 목사와 추종자들이 있는데 그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구약성서가 수 천년동안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문자가 생겨나자 지금은 해석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형문자들로 기록되었고 구전(口傳) 된 것과 그 어려운 문서(文書)를 토대로 성경(聖經)이 만들어졌습니다.
단군(檀君)의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년 동안 구전되어 내려오던 것을 학자들이 기록으로 남겼으나 일본 사람들과 그들과 결탁한 사학자(史學者)들이 없애고, 왜곡하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 중에 단군 왕검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유대민족의 역사인 성서는 철저하게 믿고, 단군 왕검은 부정한다? 한단고기라는 것도 검증이 안 되었다. 고로, 단군의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허구다. 웃기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의 성씨(姓氏)가 뭔지는 몰라도 자신의 조상마저 없었다고 부정할 사람들이지요. 일부 일본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은 우리 국민을 얼마니 우습게 보겠습니까? 단군왕검을 부정하는 사람들일수록 성서에는 집착하니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듭니다. 단군상의 목을 잘라내고 그 행위가 정당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목사들과 그 추종자들은 매스컴의 인터뷰에도 당당하게 나섭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볼 때, 어떻게 생각할까요?
내가 들어본 결과로는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심한 욕을 합디다.
과격한 기독교인들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시오!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하고 외치며 다니니 누가 기독교에 입문하려고 하겠습니까?
청량리에서 부랑자에게 밥을 나누어주는 목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안타까운 일이지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스스로 점점 더 깊은 오해의 수렁으로 빠집니다. 우상숭배는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돈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우리아들 고시(考試)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비는 것,
우리 가족 편안하고 화목하게 오래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열심히 기도하면 재물이나 복을 주는
저급(低級) 신으로 전락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십일조를 더 많이 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칩니다. 심하게 말할까요? 가르치는 놈이나 그대로 따라하는 놈이나 도둑놈보다 더한 심보를 가진 자 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십일조를 더 많이 낼 수 있게 해 달라?
월수입이 백만 원이라면 십 만원을 십일조로 내야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십일조를 오십 만원 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자면 수입이 오백 만원이 되어야겠지요?
어떤 유명한 목사는 이런 날강도 같은 요구를 기도라고 가르칩니다.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에게 마치 바위나 나무에 대고 복을 비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공경한다면서 재물과 복(福)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합니다. 제사 거부하고, 성모상, 불상, 단군상을 우상이라고 단정하는 목사들, 십자가 앞에서 돈 달라고 기도하라는 목사들,
머잖아 죽을 텐데 그때는 어찌하려고 그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됩니까?”
“...................................”
“개신교 사람들을 너무 공박한다는 생각이 듭니까?
불교에도 그런 사람이 많고, 천주교에도 그런 신도가 많습니다.
단지, 개신교를 말하는 이유는 신도들의 지도자인 목사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고, 어리석게 그 말을 따르는 신도들이 가여워 하는 말입니다. 달리 오해는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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