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글 지대로 반박글 (펌질)

슈퍼고고고 작성일 05.11.07 08: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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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에른스트 폰 헤쎄-봐르테크의 라는 책 때문에 나온 말이다. 존 로스는 중국 선교사다. 문제는 저런 말은 그 책에 있지 않다는 것 뿐이다. 국내신문의 보도내용은 이렇다.
<뉴스메이커>[간도를 되찾자]동북공정에 반격 시작됐다<원문클릭>
저 글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중국 사신들이 봉황성문과 의주 사이를 왕래할 때는 조선측이 관할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런 말이 하북성이 근대 조선 것이라고 옮겨지는 것이다. 신촌에서는 기침한 사람이 동대문에서는 죽은 격이다.

2. 중국의 '중국고금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있다.

중국고금지명사전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금과옥조다. 저 사전은 중국지명에 대해 각종 사서의 기록을 모두 옮겨놓은 책인데, 시대를 따지지 않고 자기 주장에 유리하면 다 채용해서 견강부회하여 자기 주장에 이용해먹고 있다. 당연히 저런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글쓴이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겠다는 것, 이해한다. 역사공부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중국 측에는 실제 연구결과를 적용하고 우리나라 쪽은 최치원이 써놓은 기록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수법도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런 것을 이중잣대라고 부른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반도에서 그게 왜 불가능하겠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옛날에 내가 증명해 준 적이 있다.
홍수기록으로 본 삼국의 강역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저 주장은 처음에 정용석에 의해서 삼국이 한반도에 있지 않은 증거로 쓰였다. 그후에 고려, 조선에도 메뚜기 피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다 제 잘못인 것 같은 생각이...), 논리적인 귀결로 고려, 조선도 다 중국 땅에 옮겨놓게 된 것이다.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근거없는 이야기. 애신각라가 신라를 사랑하라는 말이라는 해석과 더불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뿐이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이런 시각이 이런 자들이 역사를 보는 자세다. 세월이 변해도 언어가 변하지 않고, 지명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눈물을 마시는 새>라도 읽어보기를 바란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압록강을 건넌 뒤 평양성에서 물러나다가 일격을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청천강 설은 그런 기반 하에 나온 것이다. 평소에는 김부식을 있는대로 깔아뭉개다가 이럴 때는 권위있는 척 이야기한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그래서? 남한에 아파트가 서 있으니 미국 땅이라고 주장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닮은 부분도 있고, 닮지 않은 부분도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고구려칸이라니? 이런 헛소리는 처음 본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치우를 중국에서 고리국 황제라고 이야기한다는 말은 처음 본다. 황제라는 개념 자체가 진시황때 만들어진 것인데 무슨 헛소리인가? 치우는 우리 민족과 아무 관련도 없다. 헛물 켜지 말기를.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중국에도 없다. 증거도 없는 이야기를 너무 좋아한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거짓말이다.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역시 거짓말이다. 품목도 대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심하지 않은가?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길 보라.
박창범-나대일의 삼국시대 일식 연구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참고로 이것도 같이 보면 좋겠다.
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위의 것과 동일하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의 각도별 인구를 합산한 뒤에 내놓은 결론이다. 그렇게 세면 조선 시대 인구가 형편없이 줄어든다.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평양성을 장안성이라고 불렀다는 데서 착안한 발칙한 아이디어다. 이런 결과 어떤 이는 중국의 장안은 페르시아에 있다는 등의 헛소리를 하게 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있어야한다.

저 인간들은 성이 중세 유럽에 나오는 거대한 규모인줄만 알아서 저런 소리를 한다. 경주 시내에만 성이 6개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18번에서 이미 다뤘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최치원이 한 말을 증거로 하는 이중 잣대까지 동원하고 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중국 대륙내의 요동이란 수나라때 설치된 요산현을 가리킨다. 지도에서 <요>자만 나오면 요동이라 우기고 있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어떤 지돈지 나도 보고 싶다. 지난번 유조변 지도같은 황당한 내용일 것이 분명하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고구려를 칠 때 군인들이 징병된 곳이 저곳들이다. 그곳에서 싸웠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왜곡을 하다니 한숨만 나온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우리 서울을 한자로 한성漢城이라 부른다. 서울이 중국 땅이었나 보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25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후손은 한국말 하던가? 고구려 역사가 중국 것이라는 증거로나 이용될 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증거나 제출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고려할 가치가 없는 말이다. 지명에 대한 부분은 이미 위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모두 설명이 된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위 항목과 마찬가지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위 항목과 마찬가지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환단고기와 규원사화는 양립이 되지 않는 사서다. 규원사화 진본을 믿고자 한다면 환단고기는 폐기해야 한다. 더불어 규원사화의 원본이라는 것은 그것이 숙종 때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무슨 고문헌일까? 저 주장은 반절로 한자를 읽는데 우리나라가 가장 정확하다는 주장이며, 그런 주장을 통해 한자를 우리가 만들었다고 우기기 위한 것이다. 중국인을 몽땅 우리민족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에 어떤 논리도 먹히지 않는다. 중국 땅에서 출토되는 갑골문자의 주인공도 우리 민족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 말의 어순대로 쓰인 자료가 없다는 말을 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토함산 뒤에 함월산이 있다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토함산이 화산이라는 것은 삼국사기에 토함산에 구덩이가 생기고 불이 3년간 탔다는 기록(삼국사기 태종무열왕 4년)에 의거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화구로 보기에는 너무나 작다는 것을 지적해도 못 알아듣는다. 아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토함산 화산론의 허구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 중국 기록이 대체 어디 있을까?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아래 37번에 나오듯이 애신각라는 여진어로 "금족金族"이라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청은 본래 나라이름을 후금後金이라고 했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그렇다. 그리고 청 태종이 인조에게 삼고구두배를 시킨 뒤에는 자신들이 부모의 나라라고 했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렇다. 왕의 출신에 따라 나라의 역사가 바뀐다는 한심한 생각에 기인한 이야기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 말이 있을 리가 없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39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39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그런 상식으로 생각해도 백제 북쪽은 대방에게 막혀 있어야 한다. 말갈 문제는 복잡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주장으로 백제가 중국 땅에 있었다고 한들 지리 공간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더불어 설명한 것도 본 적이 없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그렇다. 유주자사가 관직이었으니 태수들을 거느린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자들은 이런 것을 증거로 고구려가 유주를 다스렸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려면 자사라는 관직이 고구려의 관직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대개 이 대목은 요서백제설과 연관짓거나, 고구려의 오기라고 본다. 기록이 북쪽에 정통하지 못한 남중국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고려도경에는 이렇게 나온다. "옛날에는 그 영토가 동서로는 2천여리, 남북으로는 1,500여리였는데 현재는 신라와 백제를 병합하여 동쪽과 북쪽이 약간 넓어졌고 서북쪽은 거란과 접해 있다." 여기서 옛날이라 함은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누가 그런 말을 하는지 정말 알고 싶다. 이것은 칭기즈칸의 조상인 알랑-고아가 임신을 한 내용이 고주몽의 신화와 동일하다는 점, 그리고 그 부족 이름 중에 "코리"가 들어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오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칭기즈칸의 어머니와 아내로까지 이야기가 변한 모양이다. 역시 신촌에서 재채기한 사람이 동대문에서는 죽은 격이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서 꼬투리를 하나하나 잡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보면 한국전쟁도 한국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중국 지명도 상당수 한반도 안에서 찾을 수 있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세상에는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 여럿 있는 법이다. 본인이 한문 실력이 안 되는 것을 저렇게 변명하나?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어느 기록일까?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1번과 동일하다. 그리고 서쪽으로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하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그래서?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조선을 뺑돌았을 때의 거리라고 명기되어 있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 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어디에?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세스페데스는 임진왜란 때 종군 신부다. 무슨 책에 나오는 이야긴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대체 이자들은 조상이 남긴 기록은 하나도 믿지 않으면서 어디선가 줏어들었다는 이야기에는 목을 맨다. 저 타타르 이야기는 일본에서 여진족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루이스 프로이스도 임진왜란 때 종군한 신부다. 이 사람의 책에는 이렇게 조선이 나온다. <남북의 길이는 2,500리, 동서의 길이는 90리 또는 그 이상이다.> <몇몇 큰 강이 있고 그 중 하나는 하구의 넓이가 10리나 된다. 또한 중국과 인접해 있는 변경에는 통과하기 매우 어려운 넓은 사막이 있다고 한다.> 마술사의 마술처럼 그 본질을 알게 되면 저런 주장은 매우 초라해지는 것이다.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이것은 이미 결론이 난 이야기다. 일제는 20만권의 사서를 태웠나를 읽어보기 바란다.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조선사는 역사책이라고 보기보다는 사료집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대채 읽어봤으면 저런 무식한 주장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자들의 특징은 읽어보지 않고 비난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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