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몰지각한 기독교인들께 보여드리고 싶은 글입니다.

나는그저 작성일 06.02.22 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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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서 항상 눈팅만 하다 갔던 사람입니다.. 저는 기독교 반대자도 아니고 종교는 그저

믿기 나름이라고 믿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의 훌륭한 가르침은 뒷전으로 한채 일부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기독교인들의 행동에는 절로 눈쌀이 찌푸려지더군요..

다음은 소설가 이외수 님의 '벽오금학도'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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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책 읽는 일을 무서보다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한글로 씌어진 책이든 한문으로 씌어진 책이든 며칠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다읽고 나서야 책을 덮었다.
"농월당선생께서 이 미물한테 글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오늘 내가 어찌 이런 즐거움을 알았을고."
할머니는 책을 덮을 때마다 할아버지게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모양이었다. 언제나 깊은 감회에 젖은 얼굴로 몇 번이고 책표지를 쓰다듬으며 할아버지께 글을 배우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럴 때 할머니의 얼굴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할머니가 가장 오랜 시일에 걸쳐 완독한 책은 성경뎐서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책이었다. 부피가 무척 두터워 보였다. 목사님이 선물로 주고 간 책이었다.
마을에 예배당이 하나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독특한 모양을 가진 건물이었다. 초가집도 기와집도 판자집도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직선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건물이었다. 뾰족한 지붕에 기다란 세보꼴의 탑이 솟아 있었다. 탑 꼭대기에는 하얀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지어진 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은 건물이었다. 처음에는 신도들이 별로 없었다. 바깥으로 흘러 나오는 찬송가 소리도 희미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예배당에 다니는 아이들이 분유와 밀가루와 털옷 따위의
구호물자를 얻어 오기 시작하면서 신도들이 급작스럽게 늘어나가 시작했다. 바깥으로 흘러 나오는 찬송가 소리도 우렁차기 짝이 없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도다.

그러나 할머니는 예배당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견해를 물어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인간사도 제대로 모르는 판국에 신들에 대해서 어찌 아는 체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도 세 명을 데리고 목사님이 농월당으로 전도를 왔다. 온 마을 사람들이 존경의 대상으로 받들어 모시는 할머니가 예배당에만 나와 주신다면 하나님께서도 더없이 기뻐하시리하는 생각을 늘 해왔었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마흔이 조금 넘어 보이는 나이였다. 언제나 얼굴 가득 즐거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온화했다. 할머니는 손님들이 오셨으므로 고구마라도 삶아야겠노라고 말했으나 목사님과 신도들은 그렇다면 일어나겠노라고 펄쩍 뛰는 시늉을 해보였으므로 할머니는 그들에게 감잎차를 대접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목사님은 감잎차를 앞에 놓고 하나님께 기도 하기 시작했다. 기도는 굉장히 길었다. 기도의 길이와 하나님의 축복은 정비례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목사님은 온 나라가 전쟁으로 황폐해져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때임을 역설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임해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특히 농월당의 모든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행복한 모습으로 하나님전에 예배드릴 수 있는 축복을 내려 달라는 부분에서는 한층 목소리가 고조되어지고 반복법이 자주 사용되어졌다.
"주여!"
목사님의 기도 소리가 고조되어지는 중간중간에 동석한 신도들이 나지막하지만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탄성을 발했다.
아이와 할머니는 다소 쑥스러운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두눈을 말똥말똥 뜬 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감잎차는 모두 식어 버렸다.
"다 같이 찬송합시다."
아이와 할머니 곁에 앉아 있던 신도들이 찬송가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책을 보여 주면서 함께 부르자고 했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

그러나 아이와 할머니는 가사를 따라 읽을 수는 있었지만 곡조는 흉내조차 낼 수가 없었다.
목사님은 성경 말씀이라는 것을 한참 동안 들려 준 다음 신도들에게도 기도와 찬송가를 주관하도록 했다. 그들은 몹시 진지해 보였다. 이윽고 주기도문이라는 것이 외워졌다. 그것을 끝으로 그들의 예식도 모두 끝난 모양인지 비로소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할머니는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매우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성경은 누가 지었는가. 찬송가는 누가 지었는가.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천당과 극락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제일 먼저 우리나라에 예배당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 가지 질문들을 목사님에게 던졌다. 목사님은 할머니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신바람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서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그러나 목사님의 답변을 다 듣고 난 할머니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런 변고가 있나. 그렇다면 하늘님을 미국에서 모셔다가 믿고 있는 셈이 아닌가."
미국의 아펜셀러 목사 부부가 처음 우리나라에 선교 사업을 펼쳤다는 답변 끝에 할머니는 난색을 지어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님을 믿고 있었는데 무슨 연고로 그토록 먼 나라 사람들한테까지 신세를 졌느냐는 것이었다.
"그건 하늘님이지 하나님은 아닙니다."
목사님은 다시 하늘님과 하나님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유일신이신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반응은 목사님의 기대치를 빗나가고 있었다.
"소나무를 솔나무라고 발음하는 동네도 있습지요. 소나무를 솔나무로 발음한다고 소나무가 쑥나물이 되지는 않소."
목사님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내가 듣기로는 하늘님이 위 없는 으뜸자리에 계시고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만드시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데 티끌만치도 더하고 부족함이 없으며 밝으시고 밝으실 뿐만 아니라 신령하시고 신령하시어 인간의 지혜로는 감히 명량할 길이 없다고 하시었소. 여기에 목사님이 믿으시는 하나님과 행여 틀리는 데라도 있소?"
할머니가 물었다.
"없습니다."
목사님의 대답이었다.
"하늘에는 천궁이 있어 온갖 착함으로써 섬돌을 삼고, 온갖 덕으로써 문을 삼았느니라. 하늘님이 계신 데로서 뭇신령과 모든 밝은 이들이 모시고 있어, 지극히 복되고도 빛나는 곳이니, 오직 참된 본성을 트고, 모든 공적을 다 닦은 이라야, 천궁에 나아가 길이 쾌락 얻을 지니라. 여기에도 행여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천당과 틀리는 데가 있소?"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같은 신을 믿고 있는 것 같소."
목사님은 할머니의 달변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예전에 교회를 다니신 적이 있으셨던가요?"
"없지요."
"그렇다면 조금 전에 하신 말씀들은 누구에게서 들으셨습니까?"
"우리 바깥양반인 농월당선생에게서 들었소."
"그렇다면 그 어른께서도 교회는 다니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어른께서는 우주 전체가 하늘님의 성전이며 나 또한 하늘님의 작은 성전이라 하시었소."
"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알겠습니다."
목사님이 말했다. 겸손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성경뎐서를 내밀었다.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제 공부는 매우 부족합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바라겠습니다. 이건 제가 공부하던 책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들이 수록되어져 있습니다. 선물로 드리고 가겠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만면해졌다.
"이런 고마우실 데가 있나. 내 평생에 책을 선물로 다 받아 보다니, 이런 귀중한 것을 내가 받아도 될지 모르겠소. 다른 선물이라면 체면시레로 사양을 몇 번 해보겠지만 책이라면 절대로 사양을 하고 싶지 않소."
정말이었다. 할머니는 그만큼 책을 좋아했다. 서가에는 할아버지가 공부하시던 책이 수백 권이나 꽂혀 있었다. 할머니는 그 책들을 모두 한 번씩은 독파했다고 말했었다.
"되지 못한 모양새로 신앙심이 굳어진 사람들은 남이 믿는 종교는 무조건 미신이고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정교라고 주장하기 십상인데 저 목사님은 거기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공부가 이미 깊어져 있다는 증거이니라."
목사님이 일행들과 함께 돌아가고 난 뒤 할머니가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그날부터 할머니는 돋보기를 쓰고 성경뎐서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몹시 머리가 어지럽구나. 온통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얘기만 줄줄이 씌어져 있어. 이 책을 만든 나라에는 족보라는 게 아직 없는 모양이구나. 차리리 족보나 계보도를 만들어 붙이면 쉽게 알아볼 텐데."
그러나 할머니는 결코 싫증을 내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습관이었다. 무슨 책이든지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한 달 만에 성경책 한 권을 모두 독파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던 하늘님이 약간 커지셨다."
하지만 그땐 아이는 그 말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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