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크리스마스를 성탄절이라고 부르는 사실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경위로도 크리스마스는 성탄절로 번역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성탄절은 정말 말도 안되는 번역이고 써서도 안되는 말입니다.
왜냐... 그것은 두가지 글자가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중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글자는 바로 '절(節)'자 입니다.
우리나라 공휴일에 쓰이는 용어는 2가지입니다. 일(日)과 절(節)이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둘로 나뉘어 쓰이는 것은 두 용어에 격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절'의 사전적 의미는 24절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더불어 추석, 설날, 단오, 한식 등의 전통의 명절을 일컬어 절이라 부릅니다. 다만 추석이나 설 등은 흔히 단독으로 명칭되어 왔기 때문에 굳이 절을 붙여 부르지는 않습니다. '절'의 또다른 의미는 '국경일'입니다. 한마디로 국가적으로 경축할, 혹은 경건해야할 사건이 일어난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 등등, 이 가운데 하나라도 국가 혹은 민족적으로 중대한 날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개천절이 약간 의심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 충분히 중대한 날입니다.
이에 반해 '일' 혹은 '날'은 국가적인 경축일은 아닙니다. 그저 국가 혹은 단체가 특별한 행사를 목적으로, 혹은 '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요한 날로 여겨서 공휴일로 만든 날입니다. 식목일, 현충일, 석가탄신일, 한글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이 있지요.
그렇다면 성탄'절'은 어떻게 '절'로 불리울 수 있을까요. 기독교, 천주교의 숭배대상인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이 날은 전적으로 기독교 신자에게만 중요한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국교가 기독교 혹은 천주교이거나 아니면 기독교도 및 천주교도가 우리나라에서 80~90%에 달하는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다면 혹시 또 모를 일이지요.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예수님의 탄신일은 국가적으로 경축해야 할 날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서 '절(節)은 잘못된 글자입니다.
물론 기독교 및 천주교에는 성탄절 이외에도 많은 '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국가적으로 인정하는 경축일은 크리스마스 하나 뿐이지요.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다른 '절'은 논거의 대상이 아닙니다. '절'이라는 글자가 국가가 특허권을 낸 것은 아니니 기독교에서 내부적으로 경축하는 날에 '절'을 사용한다 한들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하지만 '성탄절'은 다릅니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경축일인 만큼 그 날의 취지와 의의를 따져서 적합한 품격의 용어를 부여해 주어야지요.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 아닌 성탄일이 되어야 합니다.
두번째 문제가 되는 글자는 바로 성(聖)입니다. 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저 개인적인 푸념에 불과할 지도 모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절'에 대한 문제에 대해 열성적이신 기독교도분들께서 반론을 제기하신다면 논쟁해드릴 용의 및 의무감은 있지만 '성'에 관한 부분은 전적으로 저의 개인적 견해이므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 주십시요.
聖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스러운? 신령스러운? 고결한? 등등 많은 이야기가 나오실 수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모든 의미는 절대적으로 기독교로부터 비롯된, 엄밀하게 말해 틀린 의미입니다. 물론 여러분께서 옥편을 뒤져 보신다면 아마도 위와 같은 의미가 적혀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의미인 것은 맞지만 그 의미가 여러분이 머리속에서 떠올리는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聖은 당연히 한자이니만큼 중국 및 한자 문화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자 문화권은 결코 유학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聖은 철저하게 유교적인 글자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聖人 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聖人을 여러분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聖의 원래 의미는 완성된 것, 즉 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成보다도 더욱 더 완벽한 모습 그것이 聖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모든 禮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며 만백성을 위하고 평화로운 일생을 보내는 사람, 그것이 바로 聖人입니다.
그러므로 聖의 의미는 결코 기독교와 눈꼽만큼의 연관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하다보니 기독교가 한자 문화권에 포교해 들어오면서 聖을 기독교에 적합한 단어로 생각하고 선점해버린 것입니다. 불교가 仙이나 敎를 점유했듯이 기독교도 聖을 기독교용 단어로 점유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성탄절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제 주위에서도 그런 말을 쓰면 난리납니다. 당연히 원어인 크리스마스로 써야 할 일이지요. 아니면 성탄일로. 그리고 저는 일부러 예수탄신일이라고 씁니다. 이것은 결코 기독교를 모독하려거나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천주교와 맞먹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불교에서도 그 숭배 대상인 석가모니의 탄신일을 석가탄신일이라 부릅니다. 석가는 샤카무니를 음차해서 한문으로 쓰는 것이지요. 붓다는 한사람이 아니기에 부처탄신일이라고 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현생에 태어나 중생을 계도한 유일의 붓다인 샤카무니의 탄신일을 기리는 것이지요.
크리스마스도 하등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탄신일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미 탄신이라는 말에 충분한 경의가 들어있는바 그냥 예수탄신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일부 극렬 혐신도분들은 야소탄신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명백하게 타 종교를 배척하는 행위지요. 이 말은 쓰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성탄절'은 쓰지 말자 입니다. 최소한 성탄일이라고 부르자! 그게 좀 불편하면 그냥 크리스마스라고 원어로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