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방영중인 애니메이션입니다 화려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작품인데요 바로 데온 드 보몽이란 기사를 모티브로 한 내용인데요 중요한것은 여장을 했다는 점입니다 실존인물이구요
한번 읽어보세요
Chevalier d' Eon de Beaumont (1728 ~ 1810)
외교관, 작가, 스파이, 프리메이슨 단원, 용기병 대장, 프랑스의 최고의 검사중 하나. 그의 진짜 성(性)은 18세기후에서야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데온은 여자로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리고 유년기에 남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그가 여장 남자였음이 밝혀졌다. 그는 transvestite(의상도착자)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본명은 "Charles-Geneviève-Louis-Auguste-André-Thimothée d'Eon de Beaumont" 이다(···). 데온은 토네르(Tonnere)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에 대해서는 그의 친구인 La Fortelle에 의해 쓰여진 자서전(La Vie Militaire, politique, et privée de Mademoiselle d'Eon (1779))에 의해서 조금 알려져 있지만, 그리 신용할 만한 것은 못된다.
데온은 아주 어릴때부터 독서를 시작했고, 학교에서는 언어능력과 암기력에 뛰어낸 재능일 보였다. 파리의 마자랭 대학(College Mazarin)을 졸업한 그는 1749년에 파리 회계 관리관 Monsieur de Sauvigny의 서기로 일했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 정부의 융자로 그의 첫번째 책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는 왕실 검열관으로서 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756년, 데온은 왕실기밀국(King's Secret, a network of spies - 루이 15세 직속 비밀기관)에 들어간다.
1755년, 루이 15세는 러시아와 프랑스 간의 교섭을 만들고자 데온을 러시아로 파견하여 엘리자베스 여제를 만나게 한다. 데온은 슈발리에 더글라스(Chevalier Douglas)의 비서로서 지원을 받아, 여장을 한 모습으로 엘리자베스 여제와 비밀리에 교섭을 시작했고, 마침내 1757년 프랑스와 러시아의 외계관계가 회복되기에 이른다. (이때 그가 사용한 이름은 Lia de Beaumont. 애니메이션에서 데온의 누나로 나오는 그 이름입니다.)
1761년, 프랑스로 돌아온 데온은 다음 해 용기병 대장직을 맡는다. 1756년에 시작한 7년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한 대규모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용기와 능력 만큼이나 그는 머리에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그의 희생과 프랑스-러시아 평화교섭에서의 공로로, 그는 35세 나이에 성 루이 십자 훈장을 수여받는다. 이 훈장의 수여로 그는 슈발리에 데온(Chevalier d'Eon)으로 불리게 되었다. (※ Chevalier: 프랑스어로 기사라는 뜻)
1763년, 데온은 런던에 전권 대사로 임명받는다. 동시에 그는 스파이로서도 활동한다. 이때가 데온 생애에 있어서 가장 절정에 오른 시기였으며, 반면 추락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사치스러웠다. 그는 많은 돈을 들여서 영국 귀족들과 연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전권대사의 직책에서 물러나라는 통보를 받았을때, 그는 그의 영향력있는 친구들에게 호소해 봤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1763년 10월. 그는 영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거부한다.
1764년, 그는 비밀 외교내용을 담은 책을 발행한다.
1766년, 루이 15세는 그에게 12 ,000 리브르의 연금을 수여한다.
데온은 스파이 활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취미는 책이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그는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데온의 망명생활은 14년간 지속됐다.
1774년 루이 15세의 사망 후. 루이 16세는 데온이 가지고 있는 비밀 문서들을 되돌려 받으려고 했다. 협상에서 데온의 요구 중 하나는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그를 여자로 인정하는 것이였다(·······). 루이 16세는 이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여자의 복장을 하고 살 것을 명령했다.
1777년, 데온은 프랑스로 돌아와서, 그해 9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를 만난다.
1785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4년전, 데온은 영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프랑스 혁명이후, 그에게 지급되던 연금은 중단되었고, 그는 부채를 갚기 위해서 그의 수많은 장서들을 팔아야했다. 또 그는 돈을 벌기위해 펜싱 토너먼트에도 참가했다.
1810년 5월 21일, 데온은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음은 백과사전에 나온 내용입니다.
에옹 드 보몽[Charles-Genevieve- Louis-Auguste-Andre-Timothee chevalier d' Eon de Beaumont]
1728. 10. 5 프랑스 토네르 ~ 1810. 5. 21 런던
프랑스의 밀정(密偵).
남자가 여장을 하거나 반대로 여자가 남장을 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에오니즘'이라는 용어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가 처음 수행한 임무는 1755년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여제에게 파견된 것이었는데, 당시 그는 여자로 위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용기병 대장직을 훌륭히 수행한 후 1762년 니베르네 공작(루이 쥘 망시니)과 함께 런던으로 건너갔다. 파리 조약의 비준(1763)과 함께 베르사유로 돌아와 생 루이 십자훈장을 받았다. 국왕 루이 15세로부터 밀정 활동을 위한 비밀지령을 받고 런던으로 파견된 후 런던 주재 프랑스 대사와 알력을 빚으면서도 프랑스로의 귀환을 거부했다. 후에 그가 주장한 바로는 루이 15세가 자신에게 여자로 위장해 런던 시내에 은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런던에서는 그의 성별에 관해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돈이 궁하게 된 그는 1775년 보마르셰에게 자신은 틀림없이 여자라고 꾸며댔다. 이 말을 곧이들은 보마르셰는 연금을 탈 수 있게 해주었으나 에옹은 여장을 한 채 프랑스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777년 그가 받은 명령은 "국왕의 명에 의해 샤를 준비에브 루이 오귀스트 앙드레 티모테 에옹 드 보몽은 입고 있는 용기병 제복을 벗고 성에 맞는 복장을 입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그는 늘 여자 복장을 하고 지냈다. 1785년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25년 후 그곳에서 숨졌다. 죽은 지 2일 후의 검시결과 남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에옹 드 보몽 (Éon de Beaumont 1728∼1810)
프랑스 외교관. 디종 근처의 옛 도시 토네르 출생.
프랑스 외교관. 디종 근처의 옛 도시 토네르 출생. 정식이름은 Charles Geneviève Louis Auguste André Timothée d'Éon de Beaumont이다. 보몽이라고도 하고, 데옹기사(騎士)라 통칭한다. 영세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글재주와 펜싱의 특기로 인해서 루이 15세 직속인 <왕실기밀국(王室機密局)>에 발탁되었으며, 1755년 러시아 여제(女帝)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의 황실에 여장(女裝)을 하고 잠입하여 7년전쟁에서의 러시아와 프랑스간의 조정역할을 하였다. 1762년 <여장의 기사>로 조지 3세하의 영국에 전권대사로서 부임하였으며, 루이 15세가 죽은 뒤에는 대부분 런던에 체류하였는데, 여장한 채로 당대 최고로 알려진 검술가 생 조르주기사와 결투하는 등의 일화를 남겼다. 42∼80세까지 여장으로 보낸 그를, 영국 성심리학자 H.H. 엘리스는 트랜스베스티즘대(服裝倒錯)의 전형으로 보았으며, 그 뒤 이장취미(異裝趣味)를 에오니즘(eonism)이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