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고구려의 군사 제도는 왕의 직속 군사들과 나부의 대가들이 이끄는 군사들이 동원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나부의 대가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 그 성과를 왕과 함께 나누어 가졌으며, 때로는 왕에게 포상으로 식읍을 받거나, 정복한 지역의 조세와 공납을 징수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처럼 군사활동=경제적 혜택(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이었기에 고구려 초기에는 전투만을 전문으로 하는 전투귀족단이 존재했다. 하지만 왕권이 강화되면서 그리고 전쟁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각 나부에 속한 군사들도 왕 휘하로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광개토태왕이 왕 직할 군대인 왕당(王幢)을 이끌고 정복 전쟁에 나서거나 자신의 군대를 관군(官軍)이라고 부르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참고로 백제 같은 경우 근초고왕 무렵 군대가 왕 휘하로 편성되게 된다.) 광개토대왕 이후 고구려 군사조직이 나부 차원에서 국가적 차원으로 관리된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군대를 지휘하는 무관은 5위 관등인 위두대형 이상이 임명되는 대모달(大模達) 혹은 대당주(大幢主)가 있으며 이들 아래로 7위 관등인 대형 이상이 임명되는 말객(末客)이 있어 1000명을 지휘했으며 그 아래로는 당주(幢主)가 있어 100명의 군사를 지휘했다. 고구려의 군대 편제는 몽골군의 백호장, 천호장제와 같이 10단위 편제가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대모달(혹은 대당주)는 10000명 정도의 병력을 지휘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의 중앙군이나 지방군이 어떻게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료는 없지만 대략 중앙군은 백제가 각 부에서 500명의 군사를 차출하여 중앙군을 구성한다는 것을 예로 볼 때 고구려도 이와 비슷하게 중앙군을 구성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지방군은 군관구적인 성격이 짙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