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거탑

DFHYE34 작성일 07.03.08 18: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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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큰일이다.

 

배고픈 인턴시절, 부원장이 아끼던 800만 원 짜리 도자기를 깼을 때보다 더 아찔하다.

 

물론, 그 도자기보다 비싼 건 아니지만, 욕실에 나뒹굴고 있는 이 육체는 자칫하면 내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9시 뉴스와 조간신문 헤드라인을 채울 내 기사와 조만간 내가 차지할 외과과장자리에 앉아 비웃는

 

노민국 교수와 이주완과장의 비웃음이 뒤섞여 오버랩되기 시작한다.

 

외과과장 후보인 나와 노민국 교수의 팽팽한 경합이 어찌될지 모른다.. 편히 잠을자본게 언제인가..

 

엄청난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이대로 간다면 정말 미쳐버릴거 같다..

 

그때문인지 오늘 제약회사 김과장의 접대자리에서 많이마신걸까.. 옆에 앉아 섹시함을 풍기는 아가씨가 매력적이다..

 

무슨뜻인진 모르겠지만 과장말이 텐프로라더라.. 텐프로건 템버린이건 난 별로 여자에겐 관심이 없다..

 

지금 내 머릿속엔 온통 과장 장준혁의 명패뿐이다.      


 

내 아내 민수정.. 비록 민원장의 딸이라서 결혼했지만 점점 사랑스럽다. 그런 수정에겐 좀 미안하지만 오늘같이

 

취한밤은 애인 강희재와 함께 보낸다. 그녀는 나를 편하게 해주고 병원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카페주인이라 뜻밖의 정보를

 

주는 괜찮은여자다. 물론 우리관계는 우리둘밖에 모른다. 그런 희재가 있어 아무리 취해 매력있는 호스티스와 잠자

 

리를 대접받아도 뿌리친다. 내야심을 위해선 여자관계에 있어 깨끗해야한다.

 

하지만 사람인생은 새옹지마라했던가.. 집에 들어가면 장난기 많은 수정이 귀찮게 할거같고 요즘 부쩍 참견이 많아진 희재와

 

다툼이 있어 그녀집에 가기도 그렇다.. 그래서일까.. 옆에서 술따르며 안기는 그녀가 참 예뻐보인다.. 역시 텐프로라 그런지

 

유머뿐 아니라 정치 경제에 대한 지식까지 해박하다. 어느새 난 그녀의 입모양에 빠져 들고 있었다. 외로운 오늘 이여자와 밤

 

새도록 대화를 나누고 싶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고민을 좀 덜어보고싶다.. 텐프로는 자기손님과의 대화나 비밀을

 

절대 지켜 준다고 하더라..

 

 

눈치빠른 김과장이 술자리를 정리하고 차를 대기시킨다..나와 그녀를 호텔로 데려가려

 

했지만 사양한다. 난 철두철미한놈이다. 혹시나 호텔에서 나를아는 누군가가 보면 안된다.

 

과장선출을 앞둔 시점에서 혹시라도 말이 나오면 귀찮아질수 있다.

 

대리기사를 불러 가까운 모텔로 간다. 파라다이스?? 좀 허름해보인다.

 

 

얼마나 지났을까..

 

깜빡 잠이든거 같은데 그녀는 보이지않고 샤워기 물소리가 들린다.꽤 지난거 같은데 아직도 씻고있나??

 

아니다. 투명유리사이로 그녀는 안보이고 물만 틀어져 있다

 

문을열어보니 그녀가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게 아닌가!

 

주는 술을 다받아먹더니.. 샤워하다 잠이들었나보다. 흔들어 깨워보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든다..

 

미동이 없다.. 숨을 쉬지 않는다.. 맥박이 뛰지않는다.. 순간 미친듯이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시전해보았다..

 

이기분 아주 오랜만이다..주치의시절 내 환자.. 아니 그 병신같은 놈이 사망했을때와 비슷하다. 
 

 

사망한지 좀 되보이는 전혀 가망이 없다... 사인은 후두골 함몰로 인한 뇌진탕으로 보였다. 바닥에 미끄러져 세면대에

 

부딪친 것 같았다. 잠결에 희미하게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거 같았지만 그땐 신경쓰지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이 이름도 모르는 여자애의 시체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처음엔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갑안에 있던 그녀의, 아니 이 시체의 주민등록증이 이 애가

 

미성년자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종합병원 유력한외과과장 후보인 나 장준혁이 말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에서 원조교제중 사망이라는 기사라도 나가게 된다면, 내 앞날은 끝장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이 여자는 사망했고 난 유일하게 현장에 같이 있던 최초목격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자, 생각을... 명석한 두뇌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내가 아닌가.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욕실 안에서 이여자애의 담배를 태어나처음 피우며, 30분쯤 고민하니,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을정리해 보자.

 

우선, 이 파라다이스란 모텔의 위치는 신도시이다. 초저녁이었지만, 인적도 드물었고,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모텔촌이 형성된 이근처에 올사람이 없다. 내가 아침방송에 몇차례 출연했지만 밤낮을 바꿔 일하는 이지역 유흥가

 

사람들이 과연 나를 알아볼수 있겠는가.. 

 

물론, 나와 이 여자애가 모텔로 들어서는 걸 본 사람이 있다.

 

모텔 프런트에 혼자 앉아있던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빨간 머리의 20대 초반의 청년. 하지만 양아치삘이 나는 저놈이

 

애 학교보내고 남편출근시킨뒤, 아줌마들이나 보는 아침방송을 보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판단이고 ..

 

내가봤을땐 알아봤으면 아는척 했을놈이다. 또한 유리창역시 짙게 썬 팅이 되어있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래, 달아나자.


이대로 시체를 두고 달아나 버리면 되는 일이다. 시체를 발견한다고 해도 같이 투숙했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잠시 동안 생각한 후 나온 대답은 '찾을 수 있다'였다. 난 빨간 머리에게 주차를 맡겼었다. 자동차 키를 건네주는

 

나에게 녀석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와우, 저 바이마흐가 정말 손님 차예요? 한 번 꼭 몰아보고 싶었는데.'


'조심해서 부탁해요.'


'마음 푹 놓으세요.'

 

빨간 머리는 내 차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왜 그녀석에게 차를 맡겼을까?

 

아니 내가 왜 대리를 불러 차를 가지고왔을까.. 정말땅을치며 후회할 일이었다. 바이마흐 특히 장인이 선물해준

 

저모델은 국내에 몇대 되지않는다. 지금 이대로 시체를 두고 달아난다면 분명 잡히고 말겠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래, 업고 나가면 된다.

 

어디가 갑자기 아픈 것같이 해서 급하게 업고 나가면...

 

갑자기 철없던 인턴시절 도영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재수씨랑 연예시절 도영이가 재수씨와 러브호텔에 갔었는데,

 

그때, 제수씨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서 급하게 응급실로 데리고 간적이 있다고 했다.

 

'와, 말도 마. 진땀 뺐다니까. 옷을 벗기고, 침대에 눕히는데, 갑자기 배를 잡고 뒹구는데, 환장하는 줄 알았어.'

 

'하하, 재미보러 갔다가 그게 웬 봉변이냐.'

 

'급하게 들쳐업고 모텔을 빠져 나오는데, 프런트에서 나를 막 붙잡는거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말이야. 나더러

 

   주민등록증을 내 놓으라고.'

 

'아니, 왜?'

 

'생각해봐라. 그 여자애가 죽기라도 하면, 내가 죽였는지, 아니면 진짜 아파서 죽었는 
 

   지 모르잖아. 모텔 같은 숙박업소에선 살인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도피중인 수배자들
 

   도 많아서 그런지 그런 경우엔 되게 민감하더라.'


 

도영이를 곤경에 빠뜨렸던 재수씨는 분명, 도영이의 등에서 신음도 하고, 꿈틀거렸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프런트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꼼짝도 하지 않는 여자를 업고 나가면 빨간 머리는 어떻게 할까?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남자의 등에 업혀 나가는 여자... 이것만큼 이상한 광경도 없을 것이다.

 

희미하게 보이던 빛이 사라져 버렸다. 이대로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난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다 죽어가는 환자를 수도없이 살리는 나 장준혁이 지금은 아무것도 할수가없다.

 

어쨌든 이 시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방법이 있을거 같은데..

 

장준혁 생각하자.. 넌 정말 똑똑한 놈이잖아.. 가만.. 가만......

 

 

데리고는 못 나가지만, 가지고 나갈 순 있다.

 

그래, 어차피 이 여자는 지금 시체가 되어 있고, 시체란 건 결국 의사인 나에겐 고깃 덩어리하고 마찬가지다.

 

그럼, 가지고 나가면 된다. 난 시체의 허벅지, 팔을 만져 보았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근육과 같은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이 계속 틀어져 있어 욕실의 온도가 따뜻해 아직 체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워 있는 시체를 돌려 등을 살펴보았다. 혈액응고가 시작되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반(屍班)도 보이지 않았다.

 

사후경직도, 혈액응고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나에겐 정말 큰 행운이다.


이 시체를 분해한 다음, 큰 가방에 담아 가지고 천연덕스럽게 나가면 된다.

 

혹시 프런트에서 빨간 머리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여자 분은요?'

 

이렇게 되면 곤란해진다. 이 모텔의 프런트는 현관의 정면에 위치해 있고, 프런트의 눈을 피해 현관으로 나가는건

 

불가능하다. 가지고 나간다는 것도 방법이 안 되었다. 결국, 이 큰 키의 시체가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 나가주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는 것이다.

 

큰 키... 큰 키...

 

난 거울을 한 번 보았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룸으로 들어가 모텔의

뒤 쪽으로 나있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상가들만 좀 있을 뿐, 주택은 거의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예상 대로다.

 

모텔이란 곳은 건물의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 파라다이스 모텔도 마치 궁전같이 보이게 짓느라 벽돌을 돌출 시키게 하는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

 

내 머리 속은 퍼즐을 끼워 맞추듯 작전에 필요한 여러 조건을 검토하고 있었고, 결론은 이 시체를 걸어나가게 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 그러자면 일단 수술도구들이 필요한데... 어떤 것들이 필요하지?

 

톱과 여러 크기의 칼들, 남자용 가방과 여자용 빽 몇 개, 그리고, 쓰레기 봉지와 청테이프와 모자.....

 

 

준비는 끝났다. 상점들이 서서히 문이 닫기 시작하는 시내를 정신 없이 돌아다녀, 겨우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쁨보다도 더 나를 휘감고 있는 건 이대로 달아나고 싶다는 욕망이다. 저 모텔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약해지는 의지를 붙잡았던건, 대학시절 해부학 첫 시간, 교수님이 해주셨던 이야기였다.

 

'의사는 인간이 아니다. 의사는 강철이다.'

 

그래, 나에게는 강철과 같은 의지가 있다.

 

이대로 달아난다면 내 야망은 물거품이 될것이다.


 

이런 재수없는 년이 내 앞길을 막을순없다. 난 당당하게 파라다이스 안으로 들어섰다.  

 

프런트 안에 있는 빨간 머리가 나를 보았다.

 

난 내 한 쪽 어깨에 들려져 있는 좀 크다 싶은 쌕에 대해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뭇 궁금했다.

 

이 가방 안에는 여자용 빽이 들어가 있고, 그 안에는 다른 도구들이 들어가 있다.

 

키를 건네준 녀석은 도로 프런트에 있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느냐 하면, 호텔에서는 무거워 보이는 짐을 벨보이들이 항상 들어준다.


하지만, 빨간 머리는 이 정도 크기의 짐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게서 미리 차키를 받고 룸으로 돌아온 나는

 

바삐 욕실로 들어갔다.  사람이란 참 간사한 생물이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난 시체가 없었으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상상을 했다. 헛것을 보았기를.. 하지만, 시체는 그 모습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래, 현실은 받아들여야지. 난 작업에 착수했다.

 

 

욕실 안에서 작업에 필요 없는 모든 것들을 룸으로 옮겼다. 뭐, 비누나 휴지, 샴푸, 타월,어느 욕실에나 있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피가 튀면 닦기 짜증나니깐..

 

그리고, 옷을 모두 벗은 채, 여자애가 하고 있던 브래지어로 시체의 양 발목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시체를 물구나무

 

세운 뒤, 발목에 묶여있는 매듭을 욕실 벽의 옷걸이에 걸었다. 옷걸이의 높이가 낮아서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지만,

 

그런 대로 만족할 만했다.서서히 경직되기 시작한 무거운 시체를 거꾸로 세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어차피, 좀 기다려야 하니까, 여유 있게 앉아서 담배나 태우자. 담배 두 대를 태운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온수를 틀었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우선, 온도의 문제. 어쨌든 시체가 경직이 되면 작업이 힘들어질 것이다.

 

두 번째는, 소리의 문제. 방음시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너야 할때니까.

 

난 철두철미한 놈이니까...

 

세 번째는, 뒤처리의 문제다. 욕실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으면 습도가 높아 피나

 

오물이 튀어도 쉽게 응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밑 준비는 모두 끝났다. 나는 톱을 들었다. 이런 젠장,...

 

손이 풍걸린 사람처럼 떨린다. 좋아.. 간단한 수술이라고 생각하자.. 여기는 수술장이다..

 

하지만, 떨림은 좀처럼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래, 명인대학병원 외과과장실에 앉아 있는 나를 떠올리자.. 그

 

리고 노민국교수와 이주완과장의 얼굴을.. 따지고보면 그놈들 때문에 취하지 않았던가..


나는 시체의 몸에서 목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지금이 몇 시지?

 

새벽 세 시. 피비린내와 배설물의 냄새를 맡으며, 이 곳에서 다섯 시간이나 있었구나. 내 온몸은 피와 오물로 가득했다.

 

어서 빨리 끝내고 목욕이나 했으면 좋겠다. 우선은 좀쉬자.

 

내가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지? 시체의 머리는 미장원에 있는 가발 마네킹처럼 세면대

위에 잘 모셔놓았고, 그 뒤에 어깨와 대퇴부에 있는 경동맥에서 피를 대충 뽑아냈다.

 

부피를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 그리고, 지금 욕실 바닥엔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고깃덩이와 뼈들이 늘어져 있다.

 

자꾸 바닥이 미끌거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자칫하면 여자애가 그랬듯, 내가 뇌진탕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자, 다시 시작하자. 난 피로 물들어 있는 커터를 들었다. 그리고, 얌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머리를 집었고, 두피를 벗기기

 

시작했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10kg이 넘는 쓰레기 봉지를 수백 바퀴는 돌렸으니...

 

뼈는 의외로 차지하는 부피가 적다. 문제는 피와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내장들.

 

구멍을 뚫은 쓰레기 봉지에 그것들을 넣고 쥐불놀이를 하듯이 돌린 탓에 욕실의 천장이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온통

 

피가 튀었다.  원심력의 원리를 이용한 인간탈수기가 된 것이다. 진짜 탈수기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두 개의 빽에 들어가기에는 부피가 커 보인다. 피나 오물들은 배수구나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리면 그만이지만, 내장은 그럴 수도 없다. 결국, 그 방법까지 써야 한단 말인가. 피하고 싶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내가 몸안에 있는 또 하나의 빽. 사람의 위는 상당히 많은 양을 담을 수가 있다. 난 두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코를 막았다.

 

그리고, 쓰레기봉지에 손을 넣었다. 물컹한 것을 한 웅큼 집어냈다.

 

느낌으로는 간(肝) 인거 같은데... 얼마큼 내 위에 담을 수 있을까.


새벽 다섯시. 욕실 청소를 끝냈다. 선반과 세면대, 욕조, 구석구석 단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닦고 또 닦았다.

 

이 곳에서 인체 분해가 일어난 것은 나와 시체만이 알 것이라는 확신 이 들었을 때, 청소를 멈추었다.

 

그리고, 피바다에서 헤엄이라도 치고 나온 듯한 내 몸을 씻었다. 피비린내와

 

구역질나는냄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비누칠 을 했다. 그리고, 양치질도... 상쾌하게 샤워를 끝낸 나는 룸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품같이 한없이편해 보이는 침대가 나를 유혹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여자애가 하고 있던 커다란 링 귀걸이를 이용해 귀를 뚫어야 했다. 학창실절때 한 번은 귀를 뚫어보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와 이런식으로 하게 되다니... 날카롭게 갈긴했지만, 귀를 뚫는 순간,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다니. 거울에 비치는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한 내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이 다음에 할 일은... 화장대 위에 곱게 올려진 천연 가발. 시체의 머리에서 벗겨낸 두피를 머리에 써 보았더니, 약간 작긴

 

했지만,그런 대로 괜찮아 보였다. 이것이 바로 시체를 걸어나가게 하는 방법이다.

 

왜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는가 하면, 그녀의 키가 나만큼이나 크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사람의 눈과 기억은 참 편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눈은 피사 체의 특징적인 부분만 잡아내고, 기억은 그 특징적인 부분만 자신의 뇌에 각인시켜 둔다.

 

데자뷰(dejavu)라는 현상 역시 이런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대학시절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처음 접하는 것을 보고,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그것과 비슷한 것을 보고 인간의 뇌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모텔에 들어올 때, 빨간 머리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내 뒤에 멀찍이 서 있던 여자의 무엇을 보았을까,

 

첫째는 늘씬하게 큰 키다.

 

둘 째는 긴 머리칼, 세 번째는 눈에 띄는 귀걸이. 이 세 가지라고 난 확신한다.

 

그리고, 난 이 세가지로 빨간 머리의 눈을 속일 것이다.

 

여자의 키가 커서, 분해하는데는 힘이 들었지만, 나와비슷한 큰키가 다행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두 개의 빽에는 시체가 나뉘어져 담겨 있고, 귀걸이와 가발도 준비되었다.

 

난 핸드백에서 립스틱을 꺼내 처음으로 화장을 하는 여대생의 기분으로 그것을 입술에 발랐다.

 

전체적으로 화장을 하는 게 변신에 더욱 유리하겠지만, 일단은 내가 화장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어설프게 되기가

 

십상이다. 그리고, 나중일도 생각해야한다. 화장을 지울 일을... 그래서, 입술만 바르기로 했다. 강렬한 빨간색을 바르면,

 

시선은 그곳으로 모아지기 마련이니까. 두피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청테이프로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였다.

 

그리곤 모자를 썼다. 완벽하다. 자세히 보면 이런 어설픈 변장은 눈에 띄겠지만, 지금은 새벽녘이고, 대개의 모텔과

 

마찬가지로 이 모텔의 조명도 그리 밝지는 않다. 그리고, 여자들이 이런 곳에 드나들면서 수줍어하는 건 당연한 일.

 

모자를 눌러 쓰고, 고개를 숙이고 정문을 나간다 해도, 빨간 머리는 눈치를 못 챌 것이다. 자, 이제 나가볼까??

 

복도를 걷는데, 자꾸 다리가 휘청거린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은 참 대단하다. 이런높은 하이힐을 신고 잘도 걸어다니니...

 

하이힐 뿐 만이 아니다. 키는 비슷했지만, 이 여자의 코트와 치마가 나에게는 맞지가 않았다. 하기야, 남자와 여자는 어깨,

 

골반의 뼈의 모습이 현저히 다르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이 그걸 카바해줄 것이다. 코트로 감싼 몸을 보고, 남자니

 

여자니 관찰해 내기는 쉽지 않다. 1층으로 내려 왔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빽 안에 있는 것들은 터지지 않을까. 혹시, 넘어지기라도 해서 가발이 떨어지면 어쩌지, 갑자기 옷이 투두둑 하며

 

뜯어지면 ... 아니야. 불길한 생각은 하면 안 돼. 프런트 앞을 지날 때, 빨간 머리가 고개를 내민다.

 

'저, 몇 호 손님이시죠?'

 

심장이 금새 폭발할 듯 뛴다. 대답을 하면 눈치를 채버릴 것이다. 내가 여자 목소리를 낼수 있을까? 한 번 해 봐?...

 

'아, 203호 손님이시죠?'

 

녀석은 다행히 기억을 하고 있었다. 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룸키는요?'

 

난 조심스레 오른손으로 계단 위를 가리켰다. 이 가리킴의 의미를 알아야 할텐데...

 

'남자 분이 가지고 나오실 거지요? 예,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녀석은 다행히 손짓의 의미를 알아채 주었다. 허둥대지 않고 천천히 프런트를 지나, 현관을 향해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너무나 상쾌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갔다. 그리고, 차안에다 빽과 코트, 그리고, 하이힐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프런트에서 보이지 않는 쪽으로 여관의 뒤로 돌아갔다.


울퉁불퉁한 벽돌을 잡고, 등반을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시간이.

 

하지만, 겨울의 한기에 얼어붙은 벽돌들은 너무나 차가웠고, 난 한 번도 등반 따위를 해본적이 없었다. 겨우, 창틀을 잡았고,

 

있는 힘을 다 내보았지만, 아까 쓰레기 봉투를 돌리느라 힘이 너무 빠져버렸다. 시간을 길게 끌면 안 된다.

 

아직은 새벽녘이라서 어둠에 쌓여있지만, 혹시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본다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이 고생도 물거품이다..

 

 

쿵하고 머리를 찧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우선, 청테이프를 뜯어내며, 인모를 벗었다. 투두둑. 이런,젠장.너무 따갑다.

 

다음은 귀걸이. 귀가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어쨌든 귀걸이 두 개도 무사히 빼냈다. 그리고, 난 입고 있는 옷 위로 내 옷을

 

겹쳐 입었다. 겨울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여름의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절대 이런 차림으론 의심을 피해갈수 없을것이다..

 

화장도 지우고, 가발이랑 귀걸이, 이 따위 것들은 정장 안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완벽하게 다시 남자로 변신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가방을 집어 들고 룸을 나왔다. 프런트가 보였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완전한 탈출이다. 룸키를 프런트에 놓았다.


'수고하세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빨간 머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룸키를 받았다.

 

'다음에 또 오세요.'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현관을 여는순간 나의 눈에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는 격렬히 부딪쳤고,

 

난 가방을 놓쳤다. 가방이 공중에 뜬 그 1초도 안되는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저 가방이 땅바닥에 떨어져서 쓰레기 봉지가 터진다면, 핏물이 조금이라도 흐른다면 그러면, 나의 눈물겨운 노력도 야망도

 

모두 허사가 된다. 탁! 나와 부딪친 남자가 공중에서 가방을 낚아채 주었다. 그리고,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었다.

'어이구, 손님 이거 죄송합니다.'


이모텔 관계자인 모양이다.

 

 ' 괜찮습니다 '

 

가방을든 나는 종종 걸음으로 현관을 빠져나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시동을 걸고 모텔을 빠져나왔다.

 

성공이다. 나의 완벽한 계획이 자칫 망가질 뻔한 내 인생을 지켜냈다.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오늘 밤 나는 시체를 분해했고, 인육을 먹어야 했고, 귀를 뚫어야 했고 두피를 써야했다. 저 모텔 안에서 일어난 일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시체와 나밖에..

 

쓰레기 봉투에 담겨져 있는 시체는 어디 야산에라도 버려버리면 그만이다.

 

워낙 분해를 잘해놔서 신원확인조차 어려울 것이다.


'저 사람, 왜 저렇게 허둥지둥 나가냐?'


'이런데 오는 사람들이 다 그렇죠, 뭐.'


'그건, 그렇고 오늘은 돈 될만한 상품이 좀 있었어?'


'말도 마요, 나이 많은 아저씨, 아줌마들만 버글거렸다니까요.'


'에이, 오늘도 공쳤네.'


'아, 방금 나간 저 남자 손님이랑 같이 온 여자가 끝내 주더라구요. 키도 훤칠한 게,
 

   재미있게 찍혔을 거예요.'

 

'너도 아직 못 봤어?'

 

'예. 좀 바빠서요. 근데, 저 사람들 룸이 없어서 203호에 묵게 했거든 요. 203호에는
 

   카메라가 모자라서 욕실에만 설치를 했잖아요. 그게 좀 아쉽네요.'

 

'괜찮아, 괜찮아. 아까복도 지나가보니깐 욕조물소리만 나더라 얼른 한 번 틀어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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