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교황3 작성일 07.07.06 15: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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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 민지야, 먼저 아빠 차에 타있어.`

 

` 네~ `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 가족은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멀미약을 귀 뒤에 붙이면서 호들갑이었다.

 

가는데만 해도 반나절 이상이 걸리는, 아주 깊은 산골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댁은 2층집에 꽤 좋은 집이었다. 뻥 뚫린 전경에, 고풍스런 가구들 까지-

 

누구나 꿈꿀만한 굉장히 좋은 집이었지만, 아주 산골이어서 사실

 

전경이 좋아도 별로 볼것이라고는 없었다.

 

어릴때는 오히려 그 전경을 싫어하곤 했다. 밤이 되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꼭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귀신들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 출발한다~ 오래 걸리니까 한숨 자~ `

 


 

아빠의 말이 끝나자 마자, 나는 꼭 그러기라도 해야한다는듯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잠에 빠져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번에 내려가는 가족이 꽤 많았기 때문에, 쉽사리 잠에 빠져들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아이구~ 우리강아지~ `

 

 

 

어디선가 들려오는 정겨운 목소리에, 눈을 떴을때는,

 

햇빛이 간간히 들어올 정도의, 울창한 숲이었다.

 


 

` 할머니~ `

 

` 아이구~ 우리 민지왔구나~ `

 


 

이런 깊은 산골에 살아서 그런가, 할머니는 건강해 보였다.

 

가족들이 모두 차에서 내려 모두 함께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네 집은 언제와도 기분이 좋았다. 꽉 막혀있던 차의 공기를 마시다가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좋아졌다.

 

할머니의 집은 넓었다. 하지만, 집에 왔을때마다 내가 가본곳이라고는

 

고작 1층의  안방과 화장실, 거실 뿐이었다.

 

할머니의 집은 2층까지 있는 좋은 별장같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2층에 올라가지 못했던 것은,

 

저번에 왔을때 무서운 얼굴로 나에게 주의를 주던 할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민지야.'

 

'네, 할머니.'

 

'민지야, 민지는 착한 애니까, 할머니 말 잘 들을거지?'

 

'네!'

 

'민지야, 할머니 집 오면.. 2층엔 올라가면 안된다.'

 

'2층에? 왜요? 2층에 괴물 살아요?'

 

'그래. 2층엔 괴물이 살아서.. 민지가 올라가면 왕~하고 덤벼들거야!'

 

'으앙... 할머니, 1층에 있으면 괴물 안와요?'

 

'1층에 있으면, 할머니가 괴물 혼내줘서 괴물이 할머니 무서워서 못와.

 

알았지?'

 

'네~'

 


 

저번에 왔을때가 거의 5년전이었을것이다.

 

그때는 별로 궁금증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저 할머니의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어린 나이 때문에 믿었기 때문에 궁금증이 유발 안됬다고 해야 맞는 말일것이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내 궁금증은 다른 아이들보다 심해졌다.

 

어릴때는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할머니 댁의 2층에 대한 궁금증은,

 

오늘 할머니댁에 옴으로써 다시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를 더 궁금하게 하는것은, 2층에 사는 이모는 올라갔다 와도 아무말 않으시는 할머니가,

 

가족들 중 한명이라도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발이라도 딛으면, 정색을 하며

 

무서운 목소리로 호통을 하시는 것이었다.

 

강렬한 궁금증에 보답이라도 하듯, 내 뇌에서는 즉시 행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가족들은 날 신경쓰지 않는듯 싶었다.

 

마침 내 옆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사촌동생이 있었고, 난 혼자 올라가기에는

 

왠지 무서운 마음에, 사촌의 손을 잡고 말했다.

 


 

` 윤미야, 언니랑 같이 2층 가볼래? `

 

` 응! `

 

` 대신에 조용히 와야돼, 알았지? `

 

` 응! `

 


 

다행히도 윤주는 내 손을 잡고는 까치발을 들고는 조용히 따라왔다.

 

2층까지 이어진 계단은 꽤 높았다. 어느정도 올랐을까, 2층에 올라왔을때는,

 

실망스럽게도 내 기대 이하였다.

 

할머니가 올라오지 말라고 말할만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촌동생의 손을 꼭 잡고, 이모의 방쪽으로 향했다.

 

2층에 올라오니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뭐랄까, 왠지 소름끼치는 느낌.

 


 

[ 끼익 ]

 


 

이모의 방 문을 열고는 들어갔다.

 

방에는 하얀 침대가 있었고,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침침했다.

 

밖은 바람 한점 불지 않고있었다.

 

이모의 방을 한참이나 휘휘 둘러보고 있던 중,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뒤에서 자꾸 누가 날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촌동생인가 하고 뒤돌아봤지만, 사촌동생은 어느새, 하얀색 푹신해 보이는

 

침대에서 새근새근 잠에 빠져 있었다.

 

분명히 밖은 바람한점 불지 않고있었다. 하지만 하얀색 커텐은,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듯, 부드럽게 펄럭거렸고,

 

오싹한 기분에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잠든 사촌동생 옆에 있다보니,

 

어느새 꽤 편안해진 기분에 천천히 잠에 들었다.

 

 

 

 

 

 

 

 

 

 

 

 

 

 

 

 

 

` 언니~ 언니~ `

 


 

윤미의 울음섞인 소리에, 눈을 떴을때는, 이미 밖이 꽤 어둑어둑 해졌을 때였다.

 


 

` 응, 윤미야. 내려가자. 혼나겠다.`

 


 

윤주의 손을 잡고 방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을때, 내 눈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문 하나가 보였다.

 


 

` 윤미야... 잠깐만... 언니랑 저기좀 가보자... `

 


 

윤미가 조용히 내 손에 이끌려 따라왔다.

 

아까는 분명히 보지 못했던 문이었다. 다시 내 머리 깊은곳에서, 궁금증이라는 것이

 

스멀 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 스윽 ]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소리.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을땐,

 

왠 여자 하나가 윤미와 날 쳐다보며 소름끼치게 웃고있었다.

 


 

` 꺄아아아악!!!!!!!!!!!! `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윤미를 품에 안고 1층에서 거의 뛰어내리듯

 

내려왔다.

 


 

` 무슨일이니!? `

 


 

우리가 2층에 올라간걸 예상이라도 한듯, 할머니가 급하게 뛰어왔다.

 

순간 무섭게 변하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윤미를 꼭 안고는

 

자초지종을 말씀드렸고, 그 소리를 다 들은 할머니는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다.

 

다만, 어떤 여자를 봤다는 말에, 무언가를 숨기는듯한 얼굴로 나에게

 

절대 올라가지 말라는 말을 한번 더 덧붙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다시는 그곳에 올라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2층에 대한 궁금증도 대충은 풀린 것 같았다. 유독 2층에 사는 이모만 올라가도

 

뭐라고 하지 않았던 이유는, 워낙 그런쪽에 둔한 이모가 2층에 있어도 별 소리 하지

 

않아서 였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는 올라가지 않을것이라고 다짐하고, 몇일이 지나갔다.

 

 

 

 

 

 

 

 

 

 

 

` 윤미야, 저기 계단에, 엄마 핸드폰 있나좀 찾아줄래? 이놈의 핸드폰이 어딜갔담...`

 

 

 

그 일이 천천히 잊혀질때 쯔음, 사촌과 놀아주고 있던 나는 엄마의 분부를 듣고는

 

한번도 근처에 얼씬하지 않았던 2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다시 가게 됬다.

 

 

 

` 핸드폰이 어디있으려나... `

 

 

 

계단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계단 맨 위 끝에 핸드폰이 있는것을 발견했고,

 

핸드폰을 가지고 내려오려는 순간, 다시 참을수없는 궁금증이 유발했다.

 

그때 헛것을 본날 봤던 문에 대한 궁금증. 그것은 아직 풀리지 못한 궁금증이었기 때문이었다.

 

윤주의 손을 잡고는 천천히,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시 2층으로 향했다.


 

문은 그때와는 달리 그 자리에 똑같이 멈춰있었다.

 

가슴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때 봤던 여자의 형상이 다시 머리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 끼이익 ]

 


 

문을 열자, 어둠속에 가려진 공간에, 그곳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고,

 

그 밑에는......

 

아아, 내가 잘못본것이 아니었다.

 

그때 봤던 그 소름끼치는 얼굴의 여자.

 

그 여자가 피아노를 치며 다시 섬뜩하게 웃으며 날 쳐다보고 있는것이 아닌가.

 

예전에 그 여자를 봐서일까,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 자리에 멈춰서 그 여자의 피아노 연주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눈을 한번 세게 비볐다. 예상이 꼭 들어맞듯, 여자는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나를 더 경악하게 한 것은, 그여자가 없어진 후에도,

 

피아노 건반이 천천히 눌려지며 조용한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저번에 봤던 여자의 섬뜩한 얼굴이 다시 생생이 되살아났다.

 


 

` 꺄아아아악!!!!!!!!! `

 

 

 

 

 

 

 

 

 

 

 

 

 

 

 

 

 

 

 

 

 

[ 부스럭... 부스럭... ]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에 눈을 떴고,

 

눈을 뜬 곳은, 여전히 어두침침한 이모의 방이었다.

 


 

` 일어났니? `

 

 

 

내가 본 사람은 이모였고,

 

이모는 나에게 여길 왜 올라왔으니 따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왜 사촌동생을 찾지 않았는지 알수 없지만, 아무래도 놀라서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된다. 내 사촌이 없어짐으로써... 내 기억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그 여자의 얼굴을 봤으니까.

 

 

 

 

 

 

 

 

 

 

 

 

 

 

 

 

 

 

 

 

 


 

[ 끼익... 끼익... ]

 


 

어두운 2층 통로.

 

윤미가 작은 종종걸음으로 민지가 들어갔던 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민지가 방에 들어가서 소리질렀을 당시, 윤미는 다른 방에 있던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미의 커다란 눈망울이 호기심에 가득 찼다.

 


 

[ 끼익 ]

 


 

문을 살짝 열어 들어가니, 그 방은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때 다른방에 있을때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가 여기서 나는건줄 알았는데,

 

피아노 소리는 여기서 나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쪽 끝에, 왠 소복을 입은 여자 하나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윤미는 그저 친척중에 한사람인줄 알았지만, 왠지 소름끼치는 기분에,

 

뒤돌아 문을 나가려는 순간,

 

그 여자가 윤미를 향해 미친듯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공포감에 윤미가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드렸다.

 


 

`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

 

 

 

 

 

 

 

 

 

 

 

 

 

 

 

 

 


 

이모와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였다.

 

불현듯 마음 놓고 있던 사촌의 비명소리.

 

이모와 내가 거의 동시에 그곳으로 뛰어갔을때는,

 

내가 그때 들어갔던 방문은 온데간데 없고, 왠 여자 하나가

 

사촌을 안고는 정말 섬뜩한 얼굴로 서있었다.

 

그리고, 이모와 나를 한참이나 멍하게 바라보더니, 울다 거의 실신한듯한 사촌을

 

내려놓고 경고하는 눈빛으로 내 눈앞에서 웃으며 사라졌다.

 

 

 


 

그 여름밤의 일은 거의 3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여자가 어디서 왔는지, 또 누군지 알수 없지만,

 

그 여름밤은 절대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이따금씩, 내 꿈에 나타나 그때 그 방에서 피아노를 치며 싸늘하게 웃던 그 여자의 웃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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