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무서운 자식 사랑..?

배재국 작성일 07.07.09 11: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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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 하면 남자들 대게 내가 군대에 있을때 말야... 하고 시작하곤 하죠?

그만큼 허황된 얘기가 많고 과장된 얘기가 많은 곳이 군대란 곳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해야될 이야기는 어찌보면 애뜻한 어머니의 사랑이야기 일 수 있으나 실제 경험한 저로서는

정말 아직도 섬뜩하고 무섭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저도 군인이였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아직 철이 없고 호기심 왕성하고 도전정신이 한창일때 군대란 곳에 갇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항상 일탈을 꿈꾸고 밖의 세상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있었던 그때...

저와 제 동기 3명은 외박을 나가서 점프라는 걸 시도했습니다.(점프라는 것은 보통 외박을 나갔을때 그 부대에서 지정해준 구역을 몰래 넘어간다는 말이고 자칫 잘못걸리면 탈영이라는 누명을 덮어쓸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행위입니다.,)

제가 있던곳이 엄청 시골이어서 굉장히 음산하고 서늘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대앞에있는 작은 읍으로 나간다고 해도 있는것은 식당 몇개와 슈퍼정도? 그래도 외박나온 군바리들을 위해서 여관 몇개는 있더라구요..그 흔한 피씨방 같은건 꿈또 꾸지 못할 정도로 아주 시골입니다.

 

그나마 피씨방이 있는곳으로 버스를 타고 나가면 군바리들이 워낙 많아서 몇시간동안 기다렸다 해야되는 아주 몹쓸 곳이었지요.

시간이 일분 일초가 황금같던 그 시절 과연 몇시간이나 기다렸다가 한다는것이 가당키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점프라는걸 시도를 한거죠.

점프라고 해봤자 그 피씨방이 있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정도 나가는 것 뿐이었지만 그당시 저희에게서는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저희는 점프를 성공하고 너무 들떠 가지고 있던 한달치 생활비(그래봤자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험난한 곳에서 담배 한갑 살 돈 없이 한달을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가는 다녀오신 분들은 알고 계실겁니다. 때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그런 때 였습니다. 따듯한 냉동도 못 먹고... 으 정말 비참하죠...)

를 몽땅 날려버렸습니다.

이제 실컷 놀다가 술도 어느정도 취해서 막차를 타고 부대앞에 있는 여관에서 자러 갔습니다.

막차라서 그런지 아니면 시골이라서 그런지 버스에는 저희밖에 없더라구요.

술도 어느정도 들어갔겠다.. 간만에 여자친구 미니홈피에서 여자친구 얼굴도 봤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희는 완전 들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맨 뒷자석에 앉아 한참을 실컷 떠들면서 놀고 있는데...  정말 아무도 없는 산 밑에서 버스가 서더니  어느 한 아주머니가 탔습니다. 시커먼 보자기 같은걸 안고 타더라구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저희는 계속 웃고 떠들고 놀았죠.

몇분 후에 아주머니가 저희한테 오시더라구요.

맨 앞좌석에 앉아있었던 아주머니는 저희가 관심도 없었고 멀어서 잘 보지 못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얼굴이 너무 아쓰럽더라구요.

너무 울어서 정말 눈도 뜨지 못할정도로 눈이 퉁퉁 부어있었고 저희 앞에서도 계속 눈물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목도 쉬어서 쉰 목소리로 저희한테 부탁을 하더라구요.

지금 이 보자기 안에 있는게 자기 아인데 죽었다고.....조용히 해 주면 안되겠냐고..아주 정중하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너무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죽은 애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저렇게 부탁을 하시고 보자기에 있는게 죽은 애기 라는 사실을 알고 저희는 정말 그 후로 찍 소리도 못하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다시 울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애기 아빠도 죽고 애도 죽고 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다면서 정말 서럽게 우셨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희 손을 잡더니 옆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꺼내 무언가를 쥐어주며 부탁하나만 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쥐어준것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만원짜리 빳빳한 뭉치...

어림잡아도 백만원은 되어 보이더군요.

 

부탁은 바로 애기를 묻어야 되는데 힘이 없어서 그러니 같이 도와달라는 것...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아주머니가 너무나도 애절하게 부탁을 해서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같이 차에서 내렸습니다.

정말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에서.. 중요한건 막차라는 거...

 

하지만 그때는 그런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너무나 불쌍해서..,..

 

땅을 팔 삽 같은거도 없고... 뭐 도구 같은것이 없어 땅을 파는데 정말 애를 먹었습니다.

돌이랑 나무가지 같은걸로 한참 파고나니 아주머니가 그만하면 됐다고 검은 보자기를  통채로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더니 그 앞에서 함참 서럽게 우시다가 이제 됐다며 덮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막 흙을 덮을려고 하니 갑자기 아주머니가 잠깐 기다리라면서 메고 있던 가방에서 아까 저희한테 주었던 그 돈뭉치를 꺼내 애기옆에 두는겁니다. 뭉치가 10개도 넘었어요.

한개당 백만원이라고 해도 천만원도 훨씬 넘었다는말이 되죠...

 

저희는 놀래서 아무말 못하고 흙을 덮었습니다.

발로 꼭꼭 다지고 나서 흐른 땀을 닦으니 이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거,....

 

어쩌지 하면서 난감해 하니 아주머니가 핸드폰으로 콜택시를 불러 주셨습니다.

자기는 애기 옆에 조금 더 있다가 가겠다며 저희를 보내주었습니다.

 

돌아와서 저희는 당연히 잠을 잘 수가 없었죠...

여관에 셋이 앉아 그냥 눈만 뻥긋뻥긋 뜨고 있다가 아까 받았던 돈을 3등분 해서 나눠 가졌습니다.

한사람당 30만원정도 돌아가더군요. 

 

그리고 다음날 복귀를 하고 저희는 갑자기 생긴 꽁돈을 신나게 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잊혀지듯이 저희도 그 사건을 서서히 잊었는데...

 

두달쯤 흘렀을까?

그때 같이 나갔던 동기 한명이 또 외박을 나가자는 것입니다.

물론 저희는 돈이 없었죠,,,(아시겠지만 외박한번 나가면 돈이 꽤 깨지는거 아시죠?)

돈도 없는데 어떻게 가냐고.... 얘기를 하다가 그때 땅에 묻었던 돈 얘기를 조심히 꺼내더라구요.

솔직히 돈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적은 돈도 아니고 천만원이 넘는 돈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저희가 했던 행동들이 천하의 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짓거리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아니였습니다.

딱 백만원만 꺼내가자고 그렇게 행동에 옮겼습니다.

아침에 외박을 나가서 버스를 타고 그때 그 자리에 내렸습니다.

내렸던 바로 앞에 정말 큰 돌덩이가 놓여져 있어 그 장소를 기억할 수 있었던 거였습니다.

 

다들 담배 한 가치 피고 심호흡을 한번씩 하고 땅을 팠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파도 돈은 커녕 검은 보자기도 안나오는 거에요.

 

장소는 그곳이 확실했습니다. 친구녀석이 그때 다 묻고 옆에 자기 손수건을 묶어둔 나뭇가지를 비석처럼 꼽아놨었거든요.

정말 그때보다 더 깊고 넓게 뒤적거렸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땅이 얼어서 더 안파지는데 힘들게 힘들게 파내려갔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지치고 허무해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이상한 웃음소리 같은것이 들렸습니다.

다들 놀래서 뭐지뭐지 하면서 두리번 거리다 정말 충격적이고 경악할 만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우리 바로 위에 나뭇가지에 메달려 우리를 쳐다보며 웃고있는 그 아주머니... 웃는다기보다 흐느낀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네요..

 

나뭇가지에 자신을 끈으로 묶고 우리를 두 눈으로 또렷히 쳐다보면서 괴상한 소리로 흐느끼고 있던 아주머니....

 

정말 미친듯이 소리치면서 도망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섬뜩하고 무서운 그런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가끔 생각나요...

 

나무위에서 자신을 끈으로 묶어 우리를 쳐다보던 그 아주머니.. 창백하고 하얀얼굴로 피눈물을 흐르며 흐느끼던 그 아주머니..

 

 

혹시라도 어딘가에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지금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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