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아주 긴 내용의 글도 있었는데
그나마 짧으면서 중요부분만 있는 글이 있길래 올려봅니다.
(유일한 생존자가 있는데 그 생존자 증언 위주의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더 끔찍해요..ㅡㅡ)
정말 끔찍하고 무섭습니다..ㅠㅠ
글읽기 귀찮으신분은 진한글씨만이라도 보세요
지존파살인사건 [至尊派殺人事件]이란. 다음과 같은 사건이다.
1993년 4월 경, 두목 김기환(27)은 강동은(23, 학교 후배), 김현양(23), 강문섭(21), 문상록 (24, 교도소 동기), 백병옥(21)[1995년 11월 2일 사형당할 당시 나이] 등과 함께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의 포커판에서 대학입시 부정사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행동으로 나타내자는 데에 뜻을 같이하고 '지존파'라는 이름의 범죄집단을 조직했다.
이들은 ‘돈 있고 빽 있는 자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행동강령을 만들어서 10억원을 모은다는 목표 아래 1,200여 명에 달하는 백화점 고객명단을 입수하여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93년 7월 살인연습을 위해서 충남 논산의 길에서 23살 가량의 여자(최미자씨)를 무작위로 납치한 뒤에 성폭행하고 살해하여 암매장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에 아지트를 건설했다.
겉으로는 보통 집으로 보이지만 밤에 중장비를 동원해서 몰래 지하실을 만들어서 거기에 창살감옥과 소각장을 설치했다. 94년 9월 8일 새벽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까페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던 이경숙은 까페 밴드 마스터인 이종현(가명:36세)의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양평군 와부읍 양수리를 드라이브 하러 갔다. 까페 일을 마치고 경치가 좋은 양수리를 가끔 드라이브 했다고 한다. 이때 갑자기 르망 승용차가 앞을 가로막고 포터 화물차가 뒤를 막았다.
이종현은 차를 급정거 시키고 르망 승용차 운전수에게 항의를 하기 위해 그랜저에서 내렸으나 승용차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뛰어내려 이종현에게 가스총을 쏘고 입과 눈을 테이프로 가렸다.
사내들은 차로 뛰어들어서 이경숙도 테이프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 이경숙과 이종현은 지존파의 아지트로 납치되었다. 당시에는 그곳이 어디인지도 알수없었다고 한다. 둘은 지하실 철창 안에 감금되었다. 지존파 일당은 이경숙을 쇠파이프로 위협하여 식사를 하게 하고 샅샅이 심문했다. 그리고 차례로 이경숙을 성폭행했다. 일당은 이경숙에게 뺑기통과 야인이라는 책을 던져주고 "우리와 함께 지내면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거야." 라고 했다.
다음날 밤 지존파는 이종현과 이경숙에게 강제로 대량의 소주와 맥주를 먹였다. 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죽은 것으로 해주겠다고 했다. 조사후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둘을 죽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경숙은 살려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애원하여 김현양은 이경숙을 살려주려 했다.
하지만 문상록은 반대를 하여 둘은 멱살을 잡고 싸웠다고 한다. 사내들은 술에 취해 기절한 이종현을 죽이기로 하고 비닐을 쒸우고 목을 졸라 죽였다. 김현양은 이경숙에게 이종현의 목을 조르도록 강요했다.[경찰은 이 당시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고 한다.] 94년 9월 13일 소윤오-박미자 부부가 지존파에게 납치되었다. 소윤오 부부는 협박당해 돈을 빼앗겼다. 9월 15일 이경숙은 협박을 받아 소윤오에게 강제로 공기총을 쏘아 살해했다. 이경숙을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부인 박미자는 양 어깨와 양 다리를 도끼로 찍혀 살해당했다.
김헌양은 박미자의 시체에서 인육을 도려내 이경숙에게 먹으라고 지시했으나 이경숙은 거부하였고 인육은 김헌양 자신이 먹었다. 지존파는 소씨 부부의 사체를 소각했다. 소각할때는 마당에서 바베큐를 하여 냄새를 지웠다고 한다.
9월 15일 김헌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가 실수하여 폭발이 일어났고 머리의 상처를 고치기 위해 영광종합병원으로 치료를 하러 가면서 이경숙과 동행했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 동안 핸드폰과 치료비에 쓰기 위해 가져간 돈 50만원을 이경숙에게 맡겼다. 이경숙은 김헌양이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에서 뛰쳐나와 택시를 타고 달아났다. 이경숙의 상태를 보고 택시기사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이경숙은 폭력배들에게 쫒기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영광에 있는 폭력배는 자신이 다 안다고 말했다. 이경숙은 택시기사도 지존파와 한패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근처의 포도밭에 내려달라고 했다. 이경숙은 포도밭 주인에게 부탁하여 렌턴카를 타고 대전으로 왔다. 그리고 범인들이 다시 쫒아올지 몰라 택시를 바꿔타고 서울로 왔다.
밤12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 서울에 도착해서 그녀는 우선 여관으로 갔다. 범인들이 집과 직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벽2시에 친구와 그 남편을 불러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1994년 9월 19일 추석연휴 마지막 날. 지존파 살인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4년 9월 20일 서초경찰서는 전국을 무대로 납치살해 소각 암매장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해가며 5명(이때 이로부터 8개월 전 조직원 송 모씨를 살해한 것도 밝혀져서 한명 추가)을 살해한 살인 범죄단인 지존파 일당 6명을 검거했다.
재판결과, 정상이 참작된 이경숙을 제외한 살인ㆍ강도ㆍ사체유기죄 등을 적용, 사형을 선고받은 지존파 일당 김기환(27), 강동은(23), 김현양(23), 강문섭(21), 문상록(24), 백병옥(21)은 1995년 11월 2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두목 김기환이 최후에 대해서...
온 국민을 경악시켰던 지존파를 우린 기억한다. 두목 김기환의 경우 부하들이 종교에 귀의한 뒤에도 스스로를 ‘악마’라고 부르짖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보름 앞두고 영세를 받았다.
그후 깊은 참회를 하고 불우이웃을 위해 영치금을 맡기는가 하면 자신의 장기는 물론 시신까지 기증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 “죽일 놈들을 다 못 죽이고 잡혀 억울하다”며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지존파 김현양도 세례를 받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큰 죄를 짓고 이곳에 왔지만 이곳에서 구원을 얻게 돼 기쁘다 ”는 유언을 남기고
형을 받았다.
- 국민일보 이지현기자의 기사에는 이렇게 되어있지만...
#1995.11.2 집행 김기환
지존파 일당 6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두목 김기환은 7시 35분에 이끌려왔다. 최후로 할 말이 있는가라고 묻자 “죄인이 할 말은 없으나 남자는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회개하기보다는 자기가 했던 말을 합리화하려는 것 같았다. 그 후 냉소하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께 내가 새 인생을 걷는다고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7시 55분에 집행됐고 8시 8분에 절명했다.
- 역시 이런 기사도 국민일보에 있다...이 부분은 ‘사형장 일기’-문장석목
사 - 에서 발췌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