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이야기는 현역시절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 입니다.
들었다고 해서 선임한테 "너 그 얘기 아냐?" 라는 식으로 들은게 아니라
제일 친했던 후임이 직접 겪고서 반쯤 얼굴이 질려서는 일이 있었던 다음날 해준 이야기 입니다.
(참고로 이야기를 들려준 후임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병장입니다.)
이야기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기본 골격만 유지한채로
나름대로 각색했기에 조금은 실제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실화라고 믿으셔도 됩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약 1개월전 드디어 나도 병장을 달았고 군생활은 서서히 편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이어지는 작업에도 이제는 어느정도 견딜만했고 오히려 훈련보다는 작업이 훨씬 수월했지만
문제가 있다면 병장이 되고서도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초소근무 뿐이었다.
그날은 전날 내린 비탓인지 구름으로 달빛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고
같이 근무를 서게 된 녀석은 갓 일병을 단 후임병이었다.
아직은 짬밥이 모자라다고 할만한 녀석이지만 평소 눈치가 빠르고 행동도 싹싹해서
꽤나 맘에 들어하던 녀석이었다.
근무시간은 가장 힘들하고 하는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의 근무였고 근무지는
해안가를 앞에 둔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한 초소였다.
지금까지 몇십번이고 근무를 선곳이라 이제는 초소에 발을 들이기만 해도 바로 잠들수 있을만큼
허름하지만 아늑한 곳으로, 오래된 나무 냄새가 특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초소였다.
근무자들을 태운 차가 출발하고 20분 뒤 우리 둘은 초소에 도착했다
이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1분이라도 더 눈을 붙이는 편이 좋았던 나는 언제나처럼 초소안에 들어갔고
후임에게 경계를 부탁했다.
막 잠들기 시작해서 30분 가량이 흘렀을때 갑작스레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통신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집어들고 잠시 할말을 고르고 있는 사이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려주세요! 지금 초소 뒤쪽 창고에 갇혀있는데 너무 무섭고 힘들어요!"
일단은 성인남자의 목소리였지만 군인치고는 지나치게 여린목소리였다.
이시간에 창고안에 혼자 갇혀있다는 점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앞서 반사적으로
누군가 위험에 처했으니 서둘러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소 뒤쪽 창고말입니까?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풀어 두었던 총과 장비들을 챙기고 그대로 뛰쳐나가며 후임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야! 지금 누가 뒤쪽 창고에 갇혀있다고 하니까 금방갔다 올게 초소 지키고 있어!"
달려나가는 귓가로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스쳤다.
평소 꽤나 먼듯이 느껴졌던 창고도 달리고 보니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예전에는 탄약 창고로 쓰였다고 하는 낡은 콘크리트 건물은
지금은 무슨 용도로 어느 부대에서 쓰는지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문앞에 도착하자 먼저 보인것은 살짝 녹이 슨 큼지막한 자물쇠였다.
'아차... 열쇠도 없이 그냥 뛰어나오다니...'
생각해보니 멍청한 일이다. 살려달라는 말에 다급한 나머지 아무 생각도 없이 뛰어와 버렸다.
하지만 일단은 도착한 이상 안에 있는 사람을 안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물쇠를 이리저리 만져봐도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초소에서 연락받고 왔습니다! 안에 누구 있습니까?"
이상한 일이다. 창고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근처의 숲에서 들리는 벌레소리 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달빛도 보이지 않는 탓에 창문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할 수 없어
막무가내로 다시한번 문을 두드렸다.
"초소에서 연락받고 왔습니다! 안에 아무도 없습니까?"
역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몇번인가 말을 걸어본 뒤 결국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자
곤경에 처한 사람에 대한 걱정보다는 누군가의 장난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앞섰다.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이시간에 누군가 창고에 갇혀있다니...
게다가 자물쇠에는 녹까지 슬어있었다.
다시한번 창고에 아무런 기척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허탈한 마음으로 초소로 돌아갔다.
역시 걸어서 가니 10분은 족히 넘는 거리였다.
초소에 도착해 문을 열자 안에는 후임병이 굳은 얼굴로 통신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계서라고 했더니 여기서 뭐해 임마?"
"그...그게 말입니다. 병장님이 초소에서 떠나고 5분 뒤쯤부터
갑자기 누가 통신날려서 말입니다. 지금 창고에 갇혀있는데 문밖에 누가 와 있다고
군인인거 같은데 자기 죽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무서워 죽겠다고 계속 소리치더니
10분전쯤에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뭐? 아 젠장 내가 가서 겁먹었나 보네. 야 일단 부대 연락해서 창고 키 가져오라 그래
누구 갇혀있어서 빨리 빼내야 될거 같다고 그러고... 나 나가서 담배 한대 피고 올게."
원래라면 내가 통신을 날려야 할 일이지만 기껏 구하러 갔더니 겁먹었다는 얘기에
갑작스레 허탈감과 피곤함이 밀려와 주위에 누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한대를 다 태우고 능숙하게 꽁초와 냄새를 제거할때 즈음
부대에서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하사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열쇠를 들고 왔다.
"아. 젠장 어떤 *새끼가 이시간에 창고에 갇혀있다고 사람깨우고 지랄이야..."
하사의 투정이 끝나자 간단히 경례를 한 뒤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구하러 갔는데도 아무 대답도 없었고 안에 사람...."
'가만... 몇번이고 안에서 소리가 나는지 확인해 봤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후임말에 따르면 그녀석이 몇번이고 살려달라고 소리쳤다고 했는데
그렇게 커다란 창고도 아닐 뿐더러 철제로 된 문을 통하면 대부분의 소리를 들리는게 당연했다'
"안에 사람이 뭐 임마!"
잔뜩 찡그린 얼굴로 하사가 머뭇거리는 나를 질책했다.
"아... 아닙니다. 같이 가보시지 말입니다."
"빨리 따라와! 빨리 끝내고 가서 자자!"
빠른 걸음으로 앞서나가는 하사를 뒤쫒으며 후임에게 경계를 부탁했다.
정확히 10분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신속하게 하사가 자물쇠를 풀기 시작했고
낡고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서서히 문이 열렸다.
창고는 근 몇년간은 사용했던 흔적이 없었고 내부에는 아무것도 적재돼 있지않았다.
손전등으로 여기저기를 비춰도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연락받고 왔습니다!"
역시 대답이 없다. 작은 창고인 탓에 딱히 찾아볼만한 곳도 없었고
주위를 둘러봐서 눈에 띈 것이라곤 문 바로 옆의 책상위에 놓여진 통신기뿐이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통신기 위에도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잠시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하사가 욕찌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너 이 x새끼 졸았지? xx새끼 너때매 이거 창고키 찾느라고 얼마나 x빠진줄 알아?"
"아닙니다! 진짜로 들었습니다! 후임병도 똑같은 사람한테 연락받았지 말입니다!"
잠시 할말을 잃은 듯한 하사가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 x새끼들 초소에서 대기해! 지금 통신병 불러서 족쳐가지고 아무것도 없으면 각오해라"
끌려가듯 하사와 함께 초소로 돌아가서 한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앉았다.
담배 한개피가 절실했지만 통신병을 데리고 온 하사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그렇지 않아도 나쁜 상황이 더 악화된다는 생각에 연신 한숨만을 몰아쉬었다.
"야. 너 확실히 들었지?"
고개도 들지 않은채로 후임에게 물었다.
"네 확실히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어찌나 다급하던지 진짜 무슨 일이라도 나는줄 알았습니다."
"후우...."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무슨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릴게 뻔했다.
그렇게 또 몇분정도가 흐르자 하사가 통신병들을 데리고 와서 통신기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미 4시를 넘겨 교대 인원까지 도착했지만 아직 돌아가지 못한채로 있었기에
일단은 적당히 시간을 끌어보자는 생각에 초소문을 나와서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이제 교대하겠다고 하사에게 말하려는 순간
창고에 다녀온듯한 통신병이 헐떡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하사님! 애초에 이 초소랑 창고랑 연결된 통신회선 없는데 말입니다.
혹시나 해서 창고도 가봤는데 거기 안쓰는데라서 그런지 회선 연결된데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일 이상한게 말입니다..."
통신병의 말을 듣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돌아선 하사가 온갖 욕찌기를 퍼부어대려는 순간
숨을 고른 통신병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제일 이상한게 이 초소 통신기 완전히 고장나 있는데 말입니다.
이 상태로는 통신 날리는 것도 받는 것도 안될겁니다.
애초에 어떻게 본부랑 연락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미동도 없이 서있는 하사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담배 한개피가 절실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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