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달이 넘은 이야기다....
난 고고학을 전공하는 연구원으로 세종도시 건설현장에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하고있었다.
세종도시 건설부지는 시 외곽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마을들이 위치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얕으막한 시골마을 그 사이사이로 아늑하고 아름다운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여기는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무릉도원처럼 보였다. 어르신들은 땅이나 지작물 보상 등의 문제로 토지공사측과의 다툼으로 우리를 다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으나 우리가 문화재 발굴조사를 하는 팀이라는 것을 알고 이내 부드러워 지셨다. 여하튼 참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가끔 발굴조사를 하다가 문득문득 보이는 노을과 그 속으로 퍼져나오는 저녁밥짓는 향기는 사람들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했다.
뭐... 현장 상황정도는 이쯤으로 접고....
작년 6월부터 조사에 착수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일단 기초조사였기 때문에 현장에 사무실을 설치하거나 그러지 않고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마을사람들도 꽤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마을사람들도 하나둘 타지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고철장수들은 귀신같이 찾아와 문틀이며 세면대며 심지어 방문 손잡이까지 다 띠어갔다. 그러면 저번주에 주차했던 장소가 이번주면 마치 흉가처럼 되어버리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래동화속 마을같던 곳은 점점 사라져갔다.
발굴조사가 진척되는동안 토지공사도 가만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발굴조사 완료후 원활한 사업시행을 위하여 곳곳의 전기나 하수를 끊기시작했다. 이제 점점 사람들이 살지 않으면서 하루에 두번씩 다니던 버스도 사라졌고 부서지거나 유실된 도로도 방치, 응급처리만 하면서 이곳은 점점 세상과 동떨어져갔다.
우리도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돌아가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현장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일부는 숙소생활을하거나 출퇴근을 했다. 인적없는 산골에서 숙소생활을 하고 발굴조사 성격상 무덤이나 인골도 자주 접하다보니 아르바이트생들끼리 이런저런 괴담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전부 일상과 웃음속으로 묻혀갔다.
나는 언제나 출퇴근을 하였는데 역시 처음에는 별 문제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워낙 많아서 다 숙소에서 자지 못하고 내 차를 타고 상당수 출퇴근을 해서 혼자 다니는 일이 별로 없었기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야근을 하거나 사정상 아르바이트생들이 안나와 혼자 퇴근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마련이다.
현장 사무실은 우리 집으로 통하는 국도와는 상당히 떨어져서 이제는 가로등도 나가버린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참 달려 나가야 했다. 혼자 퇴근을 해야하는 첫째날... 주위는 인적하나없고 너무 어두워서 뭐라도 튀어나올것 같았다.
-나도 어지간히 간이 쫄아버렸구만.....
나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운전에 몰두했지만 뒤에서 누군가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뭐야.... 18.... 내가 이정도로 겁이 많았나? ... 그래도 한때는 용맹한 육군병장이었는데...
나는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백미러를 바라보았지만 불빛이라고는 내 서치라이트가 전부인 시골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까지 그렇게 무서웠던적은 없었던것같다. 나름 살면서 여러가지 일을 겪어왔지만 누군가 뒤에 있는것 같다는 섬뜩한 그 느낌이 이렇게 오래간적은 없었다. 다 낡은 폐교 앞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 그 느낌은 국도를 타고 다른 차들의 서치라이트가 보이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이 거기서 끝나길 빌었다. 그날은 피곤했고 불현듯 생각난 무서운 생각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했다. 사실 느낌이 무서웠다는것이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날 이후로 난 혼자 늦게 퇴근하는것을 꺼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내 마음데로 되는게 아니기에 그 뒤에도 몇번 혼자 퇴근을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그 느낌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난 연구원이었고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공포분위기를 조장할 수도 없었기에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서운 느낌은 나 혼자 받은 것일수도 있잖은가? 흐이구... 어느새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버렸는지... 하면서 되도록 야근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바1: 아휴.... 저 어제 시내에 나가려고 차가지고 혼자 나갔다가 정말 들어오기 싫었어요.
본인 : 뭔소리야? 왜?
알바1: 아니....왜 그 초등학교 앞에 있잖아요? 거기 앞에 지나가는데 왜그렇게 무섭던지 정말 후진해서 들어와버리고 싶더라니까요? 눈 딱감고 나갔는데, 들어올때도 어찌나 무섭던지 정말 이제 혼자 못나가겠어요...
알바2: 너도? 야, 나는 거기 혼자 지나갈때면 백미러 돌리고가.... 꼭 누가 나 쳐다보는것 같어....
알바3: 나도나도, 나도 얼마전에 알바1 차 빌려서 나갔다가 무서워서 사이드미러 접어놓고 나갔는데?
본인 : ....
나 혼자만 그런게 아니었어? 이런... 그래도... 나까지 덩달아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수는 없지....
그러던 어느날...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역시 야근이 있어서 아르바이트생들을 먼저 퇴근시키고 혼자 퇴근을 해야했다. 걱정은 됐지만 뭐... 별일 있겠어? 그렇다고 집에 안갈거야? 에이씨... 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난 이상한 습관이 있는데 혼자 심심하면 내 자신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뭐 심각하게 내 분신이 보이고 뭐 이지랄 하는게 아니라...-_-;;; 그냥 정치이야기라든지 역사이야기라든지 이런걸 상대가 없으니 혼자 이야기 하는것이다.
평소에는 별말 없이 운전만하고 지나가다가 그날 혼자 2차대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나온게 실수였다.....
-야, 결국 동부전선 개전이 성급했다만은 할수 없는거야 안그러냐? 응?
-.....나?
-.....!!!!!
끼이이이익!!!!
인적이 드문길이여서 가능한한 빨리 나가려고 밟고있었는데 안설수가 없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누구냐... 누가 뒤에서 대답한 거냐.....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차에서 내렸다. 정신이 없었다. 백미러로 뒤를 돌아볼 용기는 안나서 차에서 내리고 좀 있다가 뒷좌석을 열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차를 몰아서 도망쳐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가 이상한 취급받았다..... 일부는 웃어넘기고 나머지도 좀 특이하게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만 믿는것 같았다.
그러다가.... 발굴조사 지역이 내가 그 일을 겪은 도로 옆의 낮은 구릉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지금까지 확인된 묘지만 200기가 넘는다.... 과거 공동묘지였던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더 나올것으로 보인다. 그 산 위에서는 내가 그 일을 겪은 도로가 내려다보인다.....-_-;;;
이렇게 내 이야기는 끝이다. 아직도 난 세종도시에서 발굴조사를 하고있고 아직도 그 길을 지나간다. 그리고 날이저물고 그 길을 혼자 지나갈때면 반야심경을 외우며 지나간다. 누구든지 한번씩은 누군가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섬뜩한 느낌을 받은적이 있을거다. 그러나 그 느낌이 그렇게 오래 그리고 구체적으로 대답까지 들어본 경험은 별로 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