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을 빼앗긴 총각 원혼의 피눈물

cry4you 작성일 09.05.26 03: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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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북한산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며칠 전부터 준비한 제물과 서슬이 퍼렇게 날을 세운 작두까지 차 한가득 싣고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북한산 중턱의 굿당으로 향했다.

작두굿을 하는 날은 나를 비롯한 사람들 모두 긴장감을 늦출수 없는 날이다.

 

피리 소리가 새벽 하늘을 가르며 굿은 시작 되었다.

5색 천이 하늘 높이 펼쳐지고 하늘 문이 열리면서 부채를 든 7선녀가 내려와 내 몸을 감쌌다.

그리고 하늘 끝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작두에 올라라."

나는 이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무아지경에 빠지고 아무 두려움 없이 작두날 위로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굿을 끝낼 때쯤 해는 지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왔다.

차 창 밖으로 줄줄이 늘어선 가로등 불빛이 돌아오는 길을 밝혀주었다.

그런데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알 수 없는 영혼이 보였다.

가로등 아래 서서 울고 있는 남자 영혼이었다.

힘 없이 고개를 들었을 때 영혼의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타고 있던 차는 무심히 그 영혼 앞을 스쳐 지나갔고 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영혼은 사라지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그 영혼의 잔상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누굴까...'

 

다음날 여자 손님 한 분이 찾아왔다.

30대 초반의 A씨는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의 궁합을 보려고 왔다고 했다.

나는 A씨와 남자친구의 사주를 받아들고 두 사람의 사주와 궁합을 봤다.

하지만 궁합보다는 다른 근심이 A씨의 얼굴에 숨어 있었고

나는 두 사람의 사주를 점상에 내려놓고 말을 꺼냈다.

"지금 궁합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얼굴이 굳어지는 A씨를 바라보며 그 뒤에 숨겨진 과거를 보았다.

남자 영혼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누군가를 부르는 영혼.

찢겨진 옷 사이로 그 영혼의 뼈가 드러나 보이고 충혈된 두 눈에서는 한 없이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 가로등 아래 그 영혼이었다. 순간 내 마음도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A씨에게 내가 본 일들을 이야기 했다.

내 말을 듣는 동안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남자 영혼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듣자 A씨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처음 그 사람을 만난 건 5년 전 쯤이었습니다.

친구 소개로 알게 되었고요. 우리는 참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둘 다 산에 오르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자주 산을 찾고는 했는데요. 가장 많이 갔던 산이 북한산이에요.

하지만 남자 친구 부모님들은 저와의 결혼을 반대하셨어요.

그 때부터 조금씩 우리는 싸우기 시작했고요. 결국 저는 그 남자 몰래 선을 봤어요.

지금 궁합을 보려고 한 남자가 선으로 만난 남자에요.

 

옛 남자친구에게 미안하지만 헤어지자고 했고요.

결국 제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크게 싸우고 서로 이별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 남자는 계속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저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남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꿈속에 그 남자가 나타났는데 피눈물을 흘리면서 제 이름을 부르는 거에요.

그것도 우리가 자주 가던 북한산 속에서."

 

A씨의 목이 메어왔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마음 속 응어리를 토해내듯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나는 3일 만에 다시 북한산을 올랐다.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A씨도 함께 북한산에 올라왔다.

다시 북한산 산신 할아버지에게 제물을 바치고 동자들에게는 사탕을 올리고

객사로 억울하게 떠난 젊은 영혼을 위로했다.

 

돌아오는 길에 긴 침묵을 깨고 A씨가 내게 말을 건넸다.

"북한산 단풍이 참 아름답지요."

눈물 가득 고인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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