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서운글터 게시판이 있다는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뭐 사실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가 어릴적에 격은 친구 동생의 교통사고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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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 전, 제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과 5월 8일 어버이날 사이였습니다.
어버이날 행사인지 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암튼 무슨 행사를 한다며 거의 전교생이
무슨 연습을 하고, 평소보다 늦게 하교길에 올랐습니다.
정문을 나와 허름한 문방구 앞을 지나고 있을 때 뒤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오빠! 같이가."
저보다 2살 어린 초등학교 2학년이던, 제 친구의 여동생(A)이었습니다.
저희 집 방향은 시내 외각쪽이라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동네였고, 그나마 있는 몇몇 친구들은 학원에
다니느라 하교길에는 거의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모여서 집에 가는 아이들을 보면 항상
부러웠고 쓸쓸했었는데, 함께 하교할 사람이 생기니 나름 기뻤었습니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자주 놀러 다니던 때여서 여동생과도
제법 친분이 있었습니다. A가 나름 이쁘장하게 생기기도 했고, 아무튼 기분 좋은 하교길이 되었습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시 A는 하얀색에 빨간 꽃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자기 원피스를 가리키며
"나 이거 엄마가 어린이날 선물로 사줬다! 이쁘지?"
라며 아주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불과 몇분 후에 그런 끔찍한 사고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무슨 행사 준비하는데 더워서 짜증난다 어쩐다 주저리주저리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고 집에 거의 도착해 가고 있었습니다.
A는 집에 가기 위해 길을 건넜고, 여기서 사고가 터졌습니다.
검정색점 : 사고자리
녹색화살표 : A가 건넌 곳.
파란색점 : 내가 서있던 곳
좀 활달한 성격이었던 A는 집에 가려 길을 건너면서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오빠 내일봐"
A가 길을 다 건너는 것을 보고 저는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2걸음 정도 움직였을까? 갑자기 뒤에서 커다란 뻥? 펑? 생전 처음 들어본 이상한 소리가 나서 다시 고개를 돌렸습니다.
순간 완전히 몸이 굳어지더군요.
24톤짜리 덤프트럭이 급정거를 하고 있었고 한 10여미터 떨어진 제 발 앞꿈치 까지 피가 튀었습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핏빛 살덩어리들이 천지에 깔려있었습니다.
트럭 뒤쪽에는 인간? 이라고 믿기 힘든, 그냥 사람만한 핏덩이가 짓뭉게져 있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자랑하던 원피스도 갈기갈기 찢겨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팔이나 머리, 다리.. 이런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의 핏덩어리였습니다.
머리 속이 하예지면서 그냥 멍하더군요.
눈물도, 비명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이 풀리고 온몸에 감각이 없었습니다.
몽롱해 지면서 그대로 주저 앉았던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바로 옆에 사시던 아주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오시자 마자 비명을 지르시며 제 눈을 가리고
집안 욕실로 끌고 가셔서 찬물로 제 머리를 감기시고 손을 주물러 주시며
"괜찮아.. 괜찮아.. 아무일 아니야.. 괜찮아.. 괜찮지?.. 아무일도 아니래두.. 괜찮아.. 걱정하지마..걱정하지마.."
이런 식으로 저를 계속 달래주셨습니다.
찬물로 머리를 적시고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정신이 어느 정도 들었습니다.
정신이 들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군요. 그냥 욕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30여분을 엉엉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약 2시간 정도 잤나봅니다. 밖은 깜깜하더군요. 잠에서 깨니 아주머니께서 꿀물과 청심환을 주셨습니다.
이제 괜찮타고 인사를 하고 밖에 나와서 보니, 아직 경찰들과 여러 사람들이 현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핏물이 완전히 닦여지지 않은듯 도로는 변색되어 있었고, 약간의 비릿내도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습니다.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아.. 그때 아이스크림만 안사먹었어도.. 조금만 더 같이 가다가 건넜다면..'
등등 무수히 많은 생각이 떠오르며 또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몇일밤을 울었던것 같습니다.
이날의 충격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 사고로 인해 제 성격 자체가 바뀐 듯한 기분도 듭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A의 치마가 트럭의 바퀴에 빨려 들어가면서 그대로 깔렸다더군요.
대략 10여년간 제가 이 사고를 목격했단 소리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괜히 생각하려 들면 그날의
충격이 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여전히 제가 이 사고를 목격했단 사실을 모르시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사고 후 1년쯔음 지났을 무렵.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고 있을 때 전형적인 괴담과 비슷한 일이 생겼습니다.
꼭 1년은 아니지만, 1년 비슷하게 시간이 흐른 후인 그해 5월달에 그 죽은 A의 여동생이 태어났고,
부모님은 그 아이에게 죽은 A의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후 이사를 갔고, 가끔 고향을 들릴때마다 사건현장 바로 옆의 공원에 앉아 잠시 묵념을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