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무서워할 수 밖에 없던 '이순신'

불멸의여해 작성일 09.07.23 18: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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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량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통영 주민들의 손으로 건립되었습니다.

통영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착량지' 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착량이란 이름은 '파서 다리를 만들다' 란 뜻으로 당포해전에서 패한 왜군들이

도망가기 위해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협곡을 파서 다리를 만들어 도망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착량묘 건립 비화가 있습니다.

전란이 끝난 후에 착량지 부근에서 밤마다 이상한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절규하는 소리, 곡하는 소리 등등.. 가지각색의 소리가 들려왔죠.

통영 주민들은 그 소리가 날마다 이어지자 밤잠을 못이루었고 결국 그 소리가

임진왜란 때 죽은 왜군들이 내는 울음소리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왜군을 꼼짝못하게 하셨던 이순신 장군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하여

착량지가 마주보이는 언덕 위에 초가를 짓고 그 곳에 영정과 위패를 모셨습니다.

그러자 다음날부터 왜군들의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하나 명량대첩비에 얽힌 미스테리.

명량대첩비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기념하여 건립된 비석입니다.

(명량대첩 : 13척으로 333척의 왜선을 무찌른 해전)

그런데 이 비석은 나라에 큰 혼란이 있을 때 마다 땀(혹은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제강점기 때.

한일 합방 직후부터 주민들이 떠들기를 명량대첩비가 밤새 자꾸 땀을 흘린다는 것입니다

한 두번도 아니고 매일같이 땀을 흘린다는 소문이 들리자 일제는 이 비석을 없애기 위해

철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비석이 아무리 뽑아내려 해도 꿈쩍도 안하는 겁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겨우겨우 뽑아낸 비석을(구체적인 방법이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ㅈㅅ;;)

운반하기 위하여 국민학교 학생들이 동원되었는데 비석을 실은 배가 또 몇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겨우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비석은 어디로 갔을까요?

해방 후 명량대첩 비석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동분서주했는데

경복궁 근정전 앞 뜰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땅 끝에 서 있던 명량대첩비가 서울 경복궁 뜰에 묻혀있었다니

이순신 장군께서 얼마나 슬퍼하셨을지..

이제 이 비석이 더 이상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잔혹한 일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또한 왜군이 이순신 장군을 죽어서까지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알 수 있군요.

앞으로 가위 눌리거나 귀신 보이시는 분들, 집에 귀신이 산다고 고민하시는 분들은

이순신 장군 영정을 프린트해서 벽에 걸어보세요.

혹시 모릅니까?

이순신 장군께서 님의 집을 수호해주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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