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두뇌는 어떡해서든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수 만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열심히 작업중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적당한 답안을 제시했다.
"개구리..........."
"뭐?"
"정상병님..개구리 소리 아닙니까?"
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정상병은 그제서야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잘 들어보니 그렇기도 하다."
아무 말없이 잠시 그 정체모를 소리를 듣고 있던 정상병이 말을 이어갔다.
"그럼 아까 니가 봤다던 건 뭐야?"
"그게...저..............."
내 머릿속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안 되겠다. 요 앞까지 순찰 좀 해보자."
"순찰 말입니까? 그냥 본대에 연락하심이...."
"이 새끼 겁 졸라 많네. 당직사관 오늘 누군지 알아? 수송관이잖아. 그 미 친 똘아이 새끼.
그 새끼가 니 말을 믿어 주겠냐고? 아마 군화발로 이단 옆차기 할거다."
난 나름대로 강심장이라고 생각하며 내 스스로를 단련시켜왔지만 솔직히 겁이 많다.
차라리 수송관한테 욕먹고 이 상황을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그러나 수송관 못지 않은 성격의 정상병은 이런 나의 생각에 절대로 동의할 인물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우리 둘은 손전등을 손에 쥐고 그 토악질하는 소리를 향해 조금씩 걸어나갔다.
장대비 속에서 손전등을 비추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했다.
빗줄기에 빛이 산란되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우...에....엑.....우...에....엑.."
거의 십수미터 전방까지 다다른 것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깨에 매달린 k-2소총의 개머리판을 펴고 총구를 들어올려 전방을 조준했다.
내 머리는 더 이상 전진하지 말것을 명령하고 있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철커덕!!!!!!!!!!!"
정상병이 갑자기 장전을 했다.
안전핀을 풀었는지 안풀었는지 모르지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기세였다.
제발 정상병이 미쳐 날뛰지 않길 바랄 뿐이다.
행여나 정상병이 나를 귀신으로 본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멀어야 10미터 전방이다.
땀인지 빗물인지 모르는 액체로 내 얼굴은 이미 흥건히 젖어있었다.
그런데 수미터 앞에 도달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고안한 답안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분명 사람소리였다. 개구리 소리가 아니었다.
아직도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렸지만 이건 분명 사람소리였다.
"우......에..엑!!......우.......에..엑!!"
손전등을 비추었지만 확인이 안되었다.
잡초와 잡목으로 우거진 덤불속이라 직접 파헤치지 않는 한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정상병은 떨리는 목소리로 보이지 않는 형체를 조준하며, 수하를 했다.
"누..누구냐?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그러자 갑자기 소리가 멈추었다.
심장이 터질 듯 했고, 온 몸이 오그라드는 듯 했다.
그 토악질 소리가 들리지 않자 빗소리만이 주위를 감쌌다.
그러나 그 시끄러운 빗소리도 우리 둘에게는 무섭도록 소름끼치는 고요한 적막이나 다름 없었다.
"써치라이트 켜!!!"
"예?"
잠시 넋이 나간 듯 나는 정상병의 명령을 놓치고 말았다.
"초소의 써치라이트 켜라고 새꺄!!!!!!"
그제서야 나는 조금씩 뒷걸음질치며, 초소로 향했다.
위병소는 야간 근무 중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써치라이트를 켤 수가 없다.
써치라이트를 켜면 그 날 근무일지에 보고를 해야 되며,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 저것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초소 안의 스위치... 그것을 올리는 것만이 나를 진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난 초소에 들어가기도 전에 내 바램이 어긋났음을 알게 되었다.
초소문을 열자 초소안에 누가 있는 것이다.
손전등에 비친 흰색과 검은색...
전설의 고향에서나 볼 수 있는 처녀귀신이라고 부르던 흰 소복의 검고 짙은 긴 생머리....
어쩌면 단순한 흰색과 검은색을 내 머리가 그렇게 해석했는지도 모른다.
눈으로 보이는 검은색 두 점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더 이상 내 두다리는 버티지 못하였다.
기절해 보았는가?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훈련소에서 행군 중에 탈진으로 기절해 본 적이 있다.
체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수통의 물을 한꺼번에 들이키는 바람에 염분부족으로 탈수와 탈진이 동시에 온 것이다.
6시간 넘게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과 천근만근같은 몸을 이끌고 난 계속 걸었다.
그리고 도착지점 200여미터를 앞두고 안도감이 밀려오자 나는 바로 쓰러져 버렸다.
그런데 그 때는 기절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난 내가 잠깐 잠이 든 줄 알았다.
조교와 동기들의 도움으로 난 몇 초만에 바로 깨어났다. 그리고 행군을 완료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나른해지면서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외마디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헉!"
내가 소리낸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건 소리도 아니다.
숨이 나오다가 목에 걸린 것이다.
영화 속의 비명은 다 거짓이었다. 정말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갑자기 사물이 멀어지고 눈 앞의 영상이 시선 중심으로 모아지면서 주변이 tv화면 꺼지듯이 어두워진다.
그래도 난 군인이었나 보다.
무릎을 털썩 꿇어 주저앉으며 기절 직전까지 갔지만 내 오른손의 소총은 놓지 않았다.
내 머리는 그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떨어뜨린 손전등 때문에 그 형상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소총을 들어 쏘라고 명령하였지만 정말로 바늘하나 들어올릴 힘조차 없었다.
"저..정ㅇㅇ 상병님....정ㅇㅇ 사..상병님...."
난 * 듯이 정상병을 불렀지만 만취한 사람처럼 혀가 구부러져 발음이 되지 않았고, 가는 숨소리만이 새어나왔다.
저항할 수 없는 어떤 강력한 기세에 눌린 나는 바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뭐하고 있어 강아지야!!!!!!"
정상병의 * 듯한 외침이 들렸다.
"야 이 신발놈아!! 불켜라고!!!"
그런데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자세로 머리를 숙인 채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장대비만 계속 맞고 있었다.
'차라리 기절해 버렸으면 좋겠다. 바보같은 내가 정말 싫다. 개병 신이다. 머저리같은 새끼. 지랄맞은 새끼'
이런 내 스스로를 자책하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맴돌자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정상병이 참지 못하고 돌아왔다.
내 오른쪽 뺨에 손전등이 비춰지는 것이 느껴졌다.
"야....너 왜 그래?"
조용히 다가와 내 얼굴을 확인하던 정상병이 또 다시 물었다.
"야 신발놈아. 초소에 불 켜라고 했는데 너 뭐하고 있는거야?"
난 그제서야 고개를 천천히 돌려 울먹이며 거친 말을 내뱉았다.
"이...씨..신발..초소안에 있단 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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