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연재] 군대에서 6

새터데이 작성일 10.06.11 23: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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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대는 정상병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뭐? 뭐라구?"





"그 신발년이 초소안에 있단 말입니다."






평소 거친 언행을 하지 않는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뱉는 욕설을 막을 수 없었다.




정상병은 후다닥 총을 초소쪽으로 겨누고 천천히 손전등을 비추었다.




이리저리 살피던 정상병이 내게 물었다.






"뭐 ....뭐......뭐가 있다는 거야? 응? 아무 것도 없잖아"




화가 난 듯한 정상병은 초소문을 부셔져라 쾅 닫아 버렸다.




오늘 그 여자가 날 엿먹이려나 보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갑자기 군화발이 내 오른쪽 어깨를 강타했다.





정상병이 욕설을 내뱉으며 나를 발로 밀어버린 것이다.






"이 강아지야! 정신 안 차려!!"






무릎을 꿇은 상태에 넘어진 나는 다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바보같이 보이는 내가 미웠는지 정상병은 다시 한번 군화발로 내 가슴팍을 밀어붙여 나를 넘어뜨렸다.






"병 신같은 새끼!! 일어나 이 강아지야!! 이런 일로 주저앉아 있냐? 이 병 신새끼야!!"





내가 상체를 다시 일으키자 정상병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나를 넘어뜨렸다.




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무능한 군인처럼 보이는 내 자신이 미울 뿐이었다.





수 차례 정상병의 발길질이 끝나자 그제서야 나는 제 정신이 드는 듯 했다.





온 몸에 독기같은 기운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난 정상병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내 자신을 두들겨 패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정상병은 한 동안 내 앞에 서서 거친 숨을 수차례 몰아 쉬었다.




"헉헉...뭐가 있다는거야? 강아지...헉헉."




이 말이 끝나자 정상병은 초소문을 거칠게 열어제끼고 들어가 서치라이트 스위치를 올렸다.





순간 전방 50여미터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역시나 장대비 때문에 빛이 산란되어 사물은 정확히 확인이 안되었다.





주변이 밝아졌음을 느낀 정상병은 다시 그 소리가 나던 덤불 숲으로 미 친듯이 뛰어갔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소총을 움켜쥐고 정상병을 따라 뛰어갔다.






"이 신발년아!! 나와!! 어딨어? 이 신발년!!!"






* 사람처럼 정상병은 덤불 숲속에 들어가 발길질을 하고 소총의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이 개년 죽여버리겠어!!! 나와 이 썅년아!!"





무려 5분여동안 * 듯한 행동을 반복하던 정상병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스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상병이 덤불숲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판쵸우의의 여기저기가 찢겨있고, 그의 온 몸은 빗물로 흥건해져 있었다.




뒤집어쓴 판쵸우의와 헬멧라인 아래로 콧날과 입만 보이며 긴 숨을 내 뱉고 있는 정상병의 모습은




조금 전의 그 형상보다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돌아가자."






좀 전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나즈막한 억양으로 정상병이 말을 했다.






정상병이 총을 쏘지 않은 걸 보면 행동은 * 듯 보였지만 정신은 있었나 보다.





초소로 돌아와서야 우리는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상병은 초소 문앞에서 한 번 멈칫하더니 천천히 초소 문을 열고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통신보안, 상병 정ㅇㅇ입니다."






서치라이트의 스위치를 조용히 내리며 정상병은 수송관에게 서치라이트를 켜게 된 경위를 보고하고 있었다.






"자세한 건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치광이 수송관이 우리 말을 믿어줄까 염려가 되었지만 정상병의 판쵸우의가 여기저기 찢겨있고




두려움에 휩싸인 듯한 우리 둘의 모습을 본 수송관은 30분이 넘도록 조용히 우리 얘기를 들어 주었다.




결론은 역시 내가 헛 것을 본 걸로 끝났다.





"들어가 쉬어라. 오늘 들은 얘기 내일 중대장한테 보고하겠다."






그 날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적은 이 부대에 처음 배치받은 날 빼놓고 처음이다.





다음 날 우리는 중대장에게 불려갔다.




결론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날 만큼은 중대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군인정신 부족같은 훈계는 하지 않았고, 근무에 열중하라는 말만 하였다.







그 날 이후로 정상병은 말이 없어지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내무반 뒷뜰에 혼자 앉아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우리는 소대별로 돌아가면서 일주일 동안 식당청소와 아침 근무자 식사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주는 우리 소대가 담당이었다.




밥을 챙길 수 없는 아침 근무자의 식사는 담당 소대가 미리 준비해놔야 한다.




그런데 배식과 청소에 열중한 나머지 아침 근무자의 식사가 늦어진 것이다.




근무자가 돌아왔을 때 부대원들은 거의 식사가 끝나가는데 근무자 식사가 준비 안된 것이다.




근무자인 1소대 이상병이 우리 소대 일병들에게 다가와 짜증을 냈다.






"이 자식들이 어디다 정신팔고 다니는거야?"






그제서야 근무자 식사를 깜박했다는 사실을 안 일병들은 밥을 먹던 도중 급히 일어나 사과했다.





"시정하겠습니다. 곧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일병 막내축에 속하는 나는 후다닥 식판 두 개를 들고 배식판으로 향했다.




이상병은 계속 아니꼽다는 듯이 성질을 냈다.






"2소대 왜 그래? 정신차려 임마!!



니네 귀신 나타났다고 위병소에 불도 켰다며?"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정상병이 음식물이 담긴 식판을 이상병에게 던져버렸다.






"이 신발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욕설과 함께 *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고 정상병은 이상병에게 달려들어 주먹과 발길질을 사정없이 날렸다.




며칠 전 밤에 보았던 정상병의 그 모습이 다시 재현된 것 같았다.




여느날 같았으면 뜯어말리고 끝날 일이었지만 그 날은 정상병이 큰 실수를 하였다.




중대장이 사병식당에서 식사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중대장 앞에서 사병들간의 그런 험한 꼴을 보였으니 난리가 아니었다.




분노한 중대장은 정상병과 이상병에게 군장을 매고 연병장을 돌 것을 명령했다.




늘 보는 얼차려이지만 다른 점이라면 그 날은 군장 속에 모래와 자갈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중대장은 굉장히 엄했다.




반나절동안 쉬지 않고 뺑뺑이를 돌리는 것도 모자라 점심시간이 되자 식당까지 포복으로 기어서 가도록 했다.




서서 밥먹는 중에도 군장을 벗지 못하게 했고 식사가 끝나자 다시 포복으로 연병장까지 기어가 뺑뺑이를 돌게 만들었다.





부대 분위기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침체되어 있었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룻동안의 얼차려가 끝나자 정상병은 이상병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낸 후 조용히 내무반 뒷뜰로 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의 몸은 물을 끼얹은 듯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나는 그가 괜히 나 때문에 얼차려를 받은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정ㅇㅇ 상병님.. 괜찮습니까?"




나의 물음에 정상병은 아무 대답도 없이 담배만 깊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멍하니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연신 담배만 빨던 정상병이 입을 열었다.





"야.....이ㅇㅇ"



"일병! 이ㅇㅇ!!"




"그날...니가 귀신봤다는 날...."




"예.."




"니가 초소안에 그 여자가 있다고 했을 때 말야..내가 확인했잖아"




"예.."





정상병은 계속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지막 한 모금의 담배를 빨며 말을 이었다.










"나도 초소안에서 그 여자 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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