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오끼나와 미 해군기지에서 한미연합사 소속으로 파견근무하던 지인이 겪은 사건을 각색하여 엮은 것입니다.-
"따르르릉.........따르르릉..."
내가 이 부대에 온지 1년이 되었지만 내 숙소 개인 전화가 울린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도 없었을 뿐더러 대부분의 연락은 내 휴대폰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새벽 4시......
오랜만에 듣는 낯선 벨소리에 나는 벌떡 깨어났다.
"네?"
"통신보안, 헌병대 병장 이ㅇㅇ입니다."
"헌병대? 헌병대에서 이 새벽에 무슨 일이지?"
"박한수 대위님이십니까?"
"그래.."
"지금 곧 헌병대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뭐라고?"
"급한 일이니 지금 곧 헌병대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야...병장아...니가 그냥 오라 그러면 내가 가야 하냐?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지."
"지금 전화로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어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단 잠에 빠져있던 터라 약간의 짜증이 밀려왔다.
"이 자식이 말 길을 못알아 듣네. 그냥 이유를 말하라고."
"...............살인사건입니다."
"뭐? 살인사건?"
나는 옆으로 누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대위님 부대의 최태영 중사가 살인혐의로 헌병대에 수감되었습니다."
"뭐? 뭐라고???"
나는 수화기를 던지 듯 내려놓고 서둘러 복장을 챙겼다.
원래 하사관들과 장교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이 부대에 오자마자 최중사와 친해졌다.
그의 거침없는 유머와 넉살은 매번 규칙과 복종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군인인 나에게 마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나에겐 최중사와 같은 능력이 없다.
내 성격만큼이나 늘 나의 삶은 메마르고, 딱딱했다.
그런 나에게 최중사의 언행은 마치 인생이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만난 지 한 달도 안되어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할 정도로 서로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평소 온화한 성격임에도 늘 책임이 앞서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더 강직하고 우직하게 그 일을 수행했다.
그 때문인지 최중사는 상관들 뿐만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런 그가 지금 살인혐의로 헌병대에 수감되어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헌병대에 도착한 나는 바로 최중사를 찾았다.
유치장에 수갑과 족쇄를 차고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최중사가 눈에 들어왔다.
군수사관이 나의 출현을 보자 먼저 말을 걸었다.
"동거하던 여자 친구를 권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뭐라구요?"
"이건 관할 경찰서에서 1차 조사를 마치고 저희 쪽으로 보낸 파일입니다."
군 수사관은 두툼한 파일철을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군 검찰로 송환되기 전에 한 번 보시죠. 그리고 검찰로 송환되면 저 친구와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을 겁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지금 얘기를 나누시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파일을 급히 열어봤다.
수 많은 조서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끔찍한 사건현장 사진이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본 군 수사관은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살해 도구는 K5 권총입니다.
여자 친구의 멱살을 쥔 채 권총으로 무려 12발을 얼굴에 대고 쏜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권총의 총알은 몸에 박히는데 워낙 근접 사격이라 총알이 모두 머리를 뚫고 나갔습니다."
나는 사체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토악질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 막았다.
사체는 반듯이 누운 상태였고,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뒤통수 부분이 총탄의 파열효과로 3분의 1 정도가 사라졌고, 여자의 머리는 으깨어 세워놓은 삶은 달걀처럼
사방에 파편을 뿌린 채 누워 있었다.
"최..최중사가 죽인게 맞습니까?"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현재로서 그렇다니요?"
"총소리를 들은 최중사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도착했을 때 최중사가 권총을 들고, 사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고 하더군요."
"최중사가 자기가 죽였다고 하던가요?"
"본인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지만, 경찰 조사 결과로는 외부 침입흔적이 전혀없고, 그 방안에 있는 족적은 최중사와 여자 친구 뿐이었다고 합니다.
곧 지문 감식 결과가 나오겠지만 현재로서는 제 3자의 소행으로는 보기 힘듭니다."
"권총은....권총은 어떻게 된 겁니까? 평소 소지하지도 않는데.."
"권총의 일련번호로 보아 대위님 부대 무기고에서 탈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파일을 들여다 보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최중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까이 철창 너머의 그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최중사....니가 그랬어?"
그는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최태영!! 니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줄 알아?"
여전히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야 임마..말을 해봐!! 죽였든 안 죽였든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내 목소리가 격앙되어 감에도 최중사의 대답이 없자 군 수사관이 중간에서 말을 끊었다.
"지금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극도로 혼란스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사가 계속 진행되면 본인도 입을 열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여기까지 하시죠."
나는 철창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최중사를 향한 시선을 계속 유지했다.
이대로 군 검찰로 넘겨져 재판까지 간다면 범행의 잔혹성으로 보아 분명히 사형선고를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조금 전에 사단장까지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아침이면 국방장관까지 보고가 올라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셔서 부대 재정비에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당분간 이리 저리 불려 다니느라 고생 좀 하실 겁니다."
나는 군 수사관의 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지금 내 앞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 친구를 꺼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최태영...니가 그런거 아니지? 내가 알아보마.."
나는 나즈막한 숨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넨 후 조용히 뒤돌아 섰다.
그런데 그가 반응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 자세임에도 최중사는 나의 돌아서는 발걸음을 느꼈는지 뭐라고 혼자 속삭였다.
"애기...울음"
나는 돌아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그에게 돌렸다.
그리고 물었다.
"뭐라고?"
군 수사관도 그의 말에 호기심을 보이는 듯 내 얼굴을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다시 한 번 최중사가 죽어가는 숨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기....애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애기 울음소리?"
나와 군 수사관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확인 한 후 그의 말을 경청했다.
신음소리처럼 들리긴 했지만 최중사의 말은 모두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계속-
웃대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