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이네요.. 입대를 앞두고 아르바이트 할때였습니다.
그날 야간근무도 없고해서 집으로 일찍귀가하는데 친구가 술이나 가볍게 한잔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친구동네에서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꽤나 한적한 동네였습니다.
기분좋게 마시고 제가 길을 몰라 친구가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더니 피곤하다고
저희 집쪽으로 가는 버스번호만 알려주고 휑하니 가버리더군요.
야속한친구를 뒤로 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반대편 인도서 할머니 한분이 무단횡단으로 제쪽으로 오시더군요.
버스타시려는 분인갑다 하고 신경안쓰고 있었는데 저한테 오시더니 손목시계를 냅다 내미시고
눈이 침침해서 안보인다고 시간좀 알려달라 하시더군요. 그래서 열시 삼십분쯤이라 말씀드렸더니 정확히 알려달랍니다.
33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맙다면서 몇초인지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냥, 잉? 하는생각과 함께 알려드렸더니
너무 고맙다고 음료수라도 하나 사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왠 떡이냐 싶었는데 근처에 가게도 없고
괜히 음료수 하나 얻어먹으려다 버스 놓칠까싶어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사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근처에 가게도 없고 그러다 버스놓칠것같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반대편에 골목으로 가리키며 저기에 아는 가게있다고 계속 가자고 하십니다. 싫다고 해도
극구 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정류장서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는데 갑자기 요새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다며
욕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당황스러워서 이래저래 설명드리다가 소용없을거 같아서 그냥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제 손목을 딱 잡더니 막 잡아끌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체구는 작아도 이십대 초반 남자가 할머니한테
힘으로 끌리겠습니까 그냥 딱 버티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다시 무단횡단으로 반대쪽으로 가시더군요.
끝났나 싶어 한숨돌리려는데 도로 한가운데 서더니 노인 차에 치이는꼴 보고 싶냐고 별 욕이 다 나오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릅니다.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고 해서 그냥 바라보는데 아까 가르켰던 골목에서 봉고차 한대가 스윽나오더군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만한데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동안 친구들한테 들었던 앵벌이니 새우잡이니 하던 이야기들이
마구 생각나더니 뇌에선 비상신호 울려대기 시작하더군요...
버스가 올 방향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습니다. 뛰면서 뒤를 보는데 그 봉고차가 제가 달리는 방향으로 오더군요.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 봉고차 중간쪽 창문에 빼꼼 나왔있던 머리가;;
진짜 식겁해가지고 죽어라 달리는데 마침 앞에서 버스한대 오길래 손 막 휘저어가며 버스 세워서 무작정 탔습니다.
기사님께 감사합니다 남발하고 있는데
제 표정이 안좋아보였는지 무슨일이냐 물으시길래 상황 설명드리니 집이 어디냐고 하시더군요.
물론 제가 타야될 버스가 아니었습니다. 기사님이 좀 가면 시내 나오니까 거기서 갈아타라고 하시더군요.
시내에서 내리긴 했는데 이 밤이 무서워 근처에 보이는 찜질방으로 가서 거기서 하룻밤 보냈습니다.
이 날 이후론 한동안 어르신들이 말걸거나 하면 괜히 흠칫거리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