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는 두 다리가 없는 형이 하나 있었다. 형이라고 부르기에도 상당히 부끄러운, 내 인생에 있어서
도움은커녕 짐밖에 되지 않는 못난 형. 온몸을 방바닥에 문대며 두 팔로 기어가는,
혼자서는 화장실변기에 앉지도 못하는, 그렇게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항상 형 노릇을 하려는
못난 형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형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항상 내 옆에서 같이 tv를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같이 나가서 뛰어 놀 수만 없었을 뿐이지,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형과 함께 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비록 다른 형제들처럼 손잡고 함께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형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특수학교에 갈 때마다 혼자서 학교에 가는 내 걱정에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차 조심하고, 누가 괴롭히면 형한테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그런 형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건 중학교를 들어가고서 부터였다.
물론 덩치는 형이 다리가 없어서 나보다 항상 작았지만 형의 존재가 작게 느껴진 건 그 때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같은 반 친구들은 장애를 가진 친구가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그 친구를 도와주기는커녕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며, 빙 둘러싸고 욕을 하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사실을 버젓이 알면서도 항상 주의만 주고 끝냈다.
그렇게 반 친구들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학기가 끝나기 전에 그 장애를 가진 친구는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갔다. 하지만 전학을 갔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특수학교에 가지 않는 한 일반학생과 다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나마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비교적 양심이 있던 그 시절의 나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형이 생각나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 분위기, 장애를 가진 친구를 놀림감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머릿속에 잡혀버린 나는 장애인 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점점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내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형이 창피해서.
하지만 형은 내 생각도 모르고 항상 친구들 좀 집으로 초대하라고 그랬다.
“진수야, 너는 친구도 없냐? 집에 친구들 좀 데려와, 같이 놀게”
형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다고 둘러댔다.
“아, 내가 아직 친한 친구가 없어”
“그래? 너 혹시 왕따야?”
“그런 건 아니야”
“누가 너 따돌리면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형이 그럴 때마다 형이 조금씩 미워졌다.
모든 게 형 때문인데 내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형이 본격적으로 싫어졌다.
순전히 형의 장애 때문에 형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형을 증오하는 마음을 키운 것은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부모님의 탓이 컸다.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절실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내게 형의 수발을 들라고 하시면서 강제로 나의 시간을 빼앗으셨다.
고작 지 몸뚱이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 때문에 나는 번번이 내 자신을 억누르고 참아야했다.
한 번은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형이 말했다.
“나가도 좋아, 나는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와라. 엄마가 뭐라고 하면 형이 꼭 지켜줄게. 걱정 말고 다녀와”
왠지 선심을 쓰듯이 말하는 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그렇게 형을 믿고 나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싸대기를 맞았다.
아버지는 내게 실망을 하셨다며 나를 때리셨고,
어머니는 방바닥에 똥을 싸지른 형을 씻기느라 나는 신경 쓰지도 않으셨다.
‘지켜줘? 누가 누구를 지켜줘? 똥오줌도 못 가리는 *주제에’
그 날 나는 아버지에게 맞은 뺨을 눈물로 쓸어내리며 잠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내 배 위에 누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 내 배위에 어떤 사람의 등짝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내 배 위에 눌러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해서 그 사람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포기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돌아봤다.
형이 웃고 있었다.
“으악!!!”
내 생에 가장 끔찍하고 더러운 악몽이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에는 휴대용 변기가 생겼고, 나는 그 변기를 닦고, 처리하는 일을 도맡았다.
고등학생인 내게 형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는 것은 너무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어른이 되어도 형이 내 곁에 있다면?
내가 성인이 돼서 독립을 하더라도, 형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나는 형을 죽어야 할 사람으로 취급하고 막대하기 시작했다.
형이 알아서, 눈치껏 떠나주기를 바랬다.
내가 형을 막 대하는 태도에 어머니는 형이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하시지만,
그것은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옭매는 사슬이었다.
장애인 아들을 낳은 어머니의 죄책감이라는 끊어지지 않는 사슬.
사실 어머니는 불쌍한 여자다.
누구보다 형에게 얽매인 삶을 사셨으니.
‘*, 망할 놈의 형, 너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텐데.’
그리고 나는 오늘 계획을 세웠다.
그 망할 새끼를 패주기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일하러 나가신 오늘.
나는 형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형은 공부를 하는지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이 공부해서 뭐하게?”
나는 형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반사람이랑은 말 섞기가 싫냐?”
나는 발로 치는 강도를 높였다. 있는 힘껏 형의 얼굴을 발로 찼다. 형의 코가 옆으로 꺾이면서
시뻘건 코피가 쏟아졌다. 나는 피를 쏟으며 아파하는 형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형을 밟았다. 지난 17년 동안 억눌려있던 분노를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터뜨렸다.
얼마나 두드려 팼을까? 형의 얼굴은 이미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는 이미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죽었나?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윗배가 아려오는 불쾌한 고통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불쾌한 기분을 씻어내 줄 시원한 바람이 필요했다.
나는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까워지자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인가? *, 몰라 어쩌라고’
사이렌 소리 너머로 구급차에 실려 가는 누군가가 보였다.
형이었다.
온몸이 터져서 알아볼 수는 없지만 형이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아이고!! 어쩌면 좋아!! 민수가 자살을 했어!! 자살을!!”
다음날 알았다.
형이 유서를 쓰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그 때 형은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방안의 내 죄의 증거인 피를 전부 닦아내고 자신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뛰어내린 것이었다.
형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하던 말이 떠올랐다.
“형이 꼭 지켜줄게”
윗배가 아려왔다.
그 기분 나쁜 고통.
내 신체의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듯한 아련한 고통.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다. 어느 정도 충격에서 깨어나서 회복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내게 사진 한 장을 건네셨다. 형과 내가 아기 때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형과 내가 함께 붙어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아기는 두 다리는 서로 공유한 채, 상체만 따로 가지고 있었다.
서로 붙어있는 사진을 보고, 당황한 나를 보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뒤에 있는 게 진수 너고, 네 윗배에 붙어 있는 게 네 형 민수야. 서로가 꼭 붙들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불쌍한지. 사진봐,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있지? 엄마는 정말 고민 많이 했어. 둘 다 살리려면 하나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
울먹이면서 말을 하시더니, 끝내 어머니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하셨다.
윗배가 아려왔다.
내 신체의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듯한 아련한 고통.
아주 먼 옛날에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뱃속에 있을 때, 나는 뒤에서 형을 끌어 안으며 말했다.
“형, 무서워”
형은 조그만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걱정마, 형이 꼭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