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스코틀랜드의 식인가족 `소니 빈`

새터데이 작성일 11.03.11 01: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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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식인 일족과
                             소니 빈 
                            sawney beane

소니 빈은 스코틀랜드인으로 에딘버러에서 동쪽으로 150킬로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울타리 설치나 하수구 쳐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소니도 그 일을 거들고 있었지만, 그러한 일들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나태하고, 교활했고, 난폭하며 반사회적인 성격이었다. 

자신 혼자서 생활을 꾸려갈 만한 나이가 되자, 그는 곧바로 집을 나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결정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할 정도의 무책임하고 성악한 젊은 여자를 데리고 "홈" 을 만들기 위해 겔로웨이 해안으로 갔다. 

그들의 "홈"은 조수가 빠지면 좁고 긴 모래밭 앞마당이 나타나는, 바다에 접한 벼랑의 동굴이었다. 그곳은 깊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수없이 뻗어있는 1마일이 넘는 거대한 동굴이었다. 

입구로부터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완전한 어둠이었고. 이틀에 한 번꼴로 조수가 높아지면 동굴 입구로부터 수백 야드는 바닷물에 잠겨서 침입자를 거부했다. 이 어둡고 습기찬 구멍에, 그들은 "홈" 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완벽히 사람눈에 띄지 않는 은둔지로써 더할 나위 없는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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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빈이 거주했던 동굴이란다


실제, 동굴은, 집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둥지라고 하는편이 어울렸다. 
그리고 이 둥지에서 소니 빈은 4반세기에 걸친 공포의 시대를 만들어 냈다. 

소니의 계획은, 강도짓을 해서 강탈한 것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가까운 마을을 이어주는, 인기척 없는 좁은 길에서 여행자를 노리는 것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결코 말이 나지 않도록 소니는 반드시 희생자를 죽였다. 

빈은 마을이나 가게, 시장에서 식량을 사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 
돈이 될 것 같은것은 가리지 않고 탈취했지만, 단서가 잡힐 것 같은 물건들을 처분하는 요령을 몰랐다. 
이러한 물건들은 환금 할 수 없는 재산으로서 동굴안에 쌓이고, 파묻히고 있었다. 머지않아서 물건들은 점점 늘어갔다. 
강도와 살인으로부터 뺏은 돈으로는, 충분히 생활할 수 없었다.  어떻게 충분한 식량을 조달할지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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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희생자들로부터 빼앗은 물건들을 섣불리 판다는 것은, 교수대로 직행할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왜, 죽인 사람들의 몸뚱이를 쓸데없이 버리고있지?  




 




왜 그것들을 먹지 않는 건가? 


  빈과 그 아내는 이 발상의 실행에 착수했다. 희생자들을 덮친 후, 그들은 해안의 길에서 동굴까지 희생자의 신체를 끌고갔다. 
동굴 깊은 곳. 소기름의 파리한 촛불 빛 아래서, 그들은 희생자의 내장을 끄집어 내고 잘랐다. 사지와 살은 말려서 소금에 절였다. 그리고 인육을 보존하는 별도의 동굴 벽에 고리를 사용헤 걸어두었다.

20년간, 이 '행위'는 계속되었다. 뼈는 동굴의 한켠에 쌓여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어지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면서 지역사회에는 극도의 불안과 경계심이 일었다. 
연속해서 일어나는 실종사건은, 마을사람들에게 시골길을 혼자서 걷는 것을 피하게 했다. 

그들은 희생자 및 살인자를 수색하는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노력했지만, 소니는 결코 발견되지 않았다. 
동굴은 너무 깊었고, 이틀에 한번씩 바닷물로 범람하는 동굴에 사람이 살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또 누가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실제로 먹고 있다고는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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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속 두사람의 생활은 그 패턴에 안주했다. 그의 아내는 동굴 안에서 자식을 낳기 시작했다. 가족은 결코 동굴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지 않았다. 식량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었으므로, 다른 것을 사는데 훔친 물건들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고, 소니는 대담하게도  가끔 물건을 사러 가까운 마을에 가서 신중을 기해 그것을 시험했다. 
눈에 띄지 않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만을 가져갔기 때문에 그는 의심을 사지 않았다. 

빈 일가의 아이들은, 동굴앞의 황폐한 물가에서, 대낮의 밝은 빛 아래서 티없이 뛰어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침입자를 지키는 동안 신체를 단련했다. 이는 식량을 마련하기위한 체력을 갖추기 위해서 였고, 살해 및 식인은 습관이 되었다. 그것은 살아 남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들에게 있어서는 정상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이상한 상황하에서 그들은 14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리고 차례차례로 성장한 아이들은, 근 친상간에 의해 8명의 손자와 14명의 손녀를 낳았다. 그렇게 빈은 일족을 존속시키고 늘리어 갔고, 당연하지만 일족들끼리 서로를 먹는 일이 없었다. 

놀랄 만한 일은, 매우 많은 아이들, 또 젊은이들이 동굴 근처를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기묘한 현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조사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 지나가던 주민에 의해 그럴 만한 기회는 있었겠지만 그런 경우 그 동굴에 너무 가까이 접근한 탓에, 일족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 뒤, 그들에게 먹혀 버렸기 때문에 이들의 비밀이 밖으로 세어나갈 일은 없었다. 

빈 일가의 아이들은 다른 인간이 음식물로써 끌려오는 것을 의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큰 아이들은, 전혀 교육을 받고 있지 않았다. 원시적인 말투와 살인, 그리고 식인 요리에 대한 기술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은 굶주림과 욕구를 채우려는 짐승같은 집단으로 변해갔다. 아이들은 커지자 유괴와 살인에 참가하게 되었고, 빈 일가는 무서운 규모로 커지고 있었다. 살인과 유괴는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그 기술이 세련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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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빈 일족

먹는 입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육이 부족되는 일은 없었다. 너무 많아서 소금절이하고도 남아서 썩어 가는 부분은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와 같은 일로 가끔 동굴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썩은 인간의 잔해가 해안가로 밀려오는 일이 생겼다.

기분 나쁜 유물은 절단 된 사지 및 마른 고기덩어리 부분으로, 출처를 특정할 수 없었다. 또, 언제 죽었는지를 추측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당국에 의해, 행방불명자의 리스트와 그것들과의 관계가 곧바로 연관지어지게 되었다. 

당국은 사건에 관련된 정보 수집에 착수했다. 행방불명자와 사지 절단은 연관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금절이로 된 인간의 고기는 아득하게 불길한 뭔가를 암시하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행방불명자의 행적을 더듬어, 살인자를 색출하려는 수사당국의 초조한 노력들은, 마지막으로 희생자들을 만났을 뿐인 무고한 사람들의 불운한 체포 및 사형으로 귀착했다. 빈 일가는 의심받지도, 발견되지도 않고, 동굴 안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었다. 

수년이 경과되어 가족들은 나이를 먹고 커졌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굶주리고 있었다. 
그래서 유괴 살인 계획또한 한층 더 대담하게 조직 되었다. 그것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였다. 

때로는 6명이서, 많게는 남녀합해 십수명의 식구가 매복, 살인을 벌였다.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누구 한사람 도망친 일이 없었던 것은 언뜻 보기에 매우 이상한 일로 생각될수도 있지만, 소니 통솔하의 일련의 작전(?)은 가히 군대의 그것이었다. 길 양쪽에서 가드 부대가 퇴로를 차단하고, 공격 중심부대가 사냥감을 무너뜨린다.는 일련의 작전은 유효했다. 

이러한 대학살의 범인들을 찾아내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이 행해졌지만, 
아무도 그 깊은 동굴을 탐색하려고는 생각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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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계속되지 않았다. 

--단 한번의 실패는 빈일가를 파멸로 몰고갔다. 

25년만에 처음으로, 판단 미스로 빈 일가는 자신들보다 넘는 수의 집단을 상대로 하게되었고, 
그것은 빈 일가 종족의 존속과 멸종에 있어 결정타가 된 사건이었다. 

그 실수는 이렇게 일어났다. 어느날 밤, 빈 일가는 가까운 시장으로부터 말을 타고 돌아가는 부부를 공격했다. 우선 여자를 잡고 남자를 말에서 끌어 내리려고 다투고 있는 사이, 여자를 알 몸으로 만들고, 배를 갈라 내장을 끌어내어, 동굴쪽으로 끌고 갈 준비를 갖추었다. 

여자의 남편은 이러한 잔학행위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저항했고, 
빈 일가의 몇 사람인가가 쓰러졌다.

그리고, 원래라면 마지막에는 그도 중과부적으로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을 처지가 되었을테지만, 
그의 운명은 기적적으로 바뀌었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그 현장에, 같은 시장으로부터 돌아가는 20여명의 군중이 그곳에 도착했던 것이다.
수시간의 맹렬한 사투 끝에 소니 일가는 싸움을 포기하고 절단한 여성의 시체를 남겨둔 채, 당황한 쥐새끼같은 꼴들로 동굴로 달아났다. 그것은 빈 일가의 전술과 방침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중대한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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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일족의 습격으로부터 살아서 빠져나온 기록상의 단 한사람이 된 그 남자는, 진술을 하기 위해서
글래스고의 최고 행정관에게 출두 하였고, 자신이 목도한 일을 진술하였다.

그리고 수사가 시작되었다.

소니의 일족들은 분명히 겔로웨이 지구 부근에 살고 있는 것과 그들의 행적에서 발견된 것은 그들이 식인종이란 것을 시사하고 있었고, 그 결정적 증거에는 그들이 버리고 달아난 여성의 시체와 그 내장이 들어 내어진 현장이 증명하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의 규모에 최고 행정관은 영주에게 이를 보고했고 영주는 곧 바로 그 중대함을 인식했다. 
영주는 무장한 400명의 군인과 다수의 수색견과 함께 겔로웨이로 향했다.

영주, 그리고 장교 및 수행원 일동과 지역 사람들에 의해, 갤로웨이 역사상 가장 큰 수색이 개시되었다. 
그들은 겔로웨이 지방 및 해안 전체를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해안의 수색이 개들을 따라 바닷물이 차올라 있는 동굴을 지나고 있을 때, 개들은 죽음과 부패의 희미한 냄새를 맡아내고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색대는 바닷물을 헤치고 어두운 동굴속으로 들어갔다. 

동굴안으로 들어갈 수록, 수색대는 그곳에서 광기의 무리의 냄새가 배여있는 것을 느꼈다. 

기름횃불과 창과 검을 빼들고 그들은 동굴의 좁아진 통로를 따라, 조심조심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그들은 식인족 소니 빈의 행동 거점이고 "홈" 인 깊은 동굴의 종점, 죽음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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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동굴의 습기찬 벽에는 인간의 사지 및 몸통, 남녀의 신체 조각들이 정육점과 같이 열을 지어 고리에 걸려 있었다. 한쪽편에는 시계, 반지, 보석 등을 포함한, 의류와 귀중품을 모아 둔 광경을 볼 수 있었고, 또 다른 방에는 25년에 걸쳐서 쌓여진 수많은 뼈들이 차 있었다. 

빈 일가의 가족 48명도 그 곳에 있었다. 400명의 병사들이 압박해 오자, 그들은 잠시 대항했으나, 퇴로는 없었다. 
동굴의 출구는 무장한 사람들에게 차단되었고, 그들은 포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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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와 일행은 그들을 끌고 에딘버러로 행진했다. 
소니 일가와 같은 식인족은, 교양 있는 재판관과 배심원에 있어서 그들은 존재가치를 따질 무리가 아니었다. 

원래 부모인 두 명과 26명의 남자와 20명의 여자 죄수들 모두는, 동굴의 혈거자로써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인간의 고기로 자랐고, 강도와 살인이 정상적인 생활 습성이었다. 이 스코틀랜드의 불쾌한 *의 결과물인 식인 일족에게 주어질 자비는 있을 수 없었고, 어떠한 정의에 준하는 재판도 있을 수 없었다.

빈 일가는 남녀 모두에게는 별도의 법제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세대를 넘어 정상적인 법과 증거와 사법과는 배제되어야 할, 악명 높고 또한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너무나 큰 적이었고, 가장 나이어리고 순진한 아이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권리는 없었다.   + + + + + + +

다음날, 전원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들이 희생자들을 잘게 자른 것처럼 남자들은 잘게 잘려졌다. 산 채로 팔과 다리가 절단 되었다. 또 여자들은 남자들이 출혈로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마녀처형과 같이 장작불로 태워졌다. 








그러나, 빈 일가는 누구 하나 후회의 빛을 나타내는 자는 없었다고 한다.  

출처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글쓴이 : 김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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