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대가 다 그렇듯, 제가 근무했던 부대 역시 귀신 목격담, 괴담 같은것이 무성했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도 몇 있긴 하지만, 그 당시 군대라는 환경과, 짬이 안되던 시절의 고참들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게 마련이라, 고참들이 해주는 귀신 이야기는 철썩같이 믿었던 것 같네요. 암튼... 제가 있던 부대는 전방은 아니었고, 후방이었습니다. 대전 근처라고 하면 왠만한 분들은 아실 듯 하네요. 부대는 평지에 외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위치 선정은 정말 좀 쌩뚱맞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고참에게 들은 말로는, 이 지대 일대가 예전에 무당촌? 그런거였다던가, 아니면 늪지대를 매립한 땅이라 평지라던가.. 하는 말들도 있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부대 주변 사방을 설명하자면, 동쪽에는 숲이 무성하여 아무도 오지 않는 곳(가을날 새벽에 경계근무를 서면 정말 을씨년스럽습니다)이 있고, 서쪽에는 작은 천이 흐르며, 남쪽에는 철조망 너머 이웃부대가 있고, 북쪽에는 도로가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하면 안될것 같아 여기까지만.. 이등병이었던 어느날, 저와 몇개월 차이 안나는 고참과 새벽에 경계근무를 나갔습니다. 경계 초소는 도로가 보이는 북서쪽 초소(북쪽 울타리와 서쪽 울타리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저를 놀리려는 의도였는지, 아니면 무서운건 같이 공유하자는 의도였는지, 고참은 자기가 겪은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고참이 이등병 부사수였던 시절, 새벽 경계를 나간 날이었습니다. 아마 계절은 겨울이었었나 그랬을겁니다. 초소 위치는 마찬가지로 현재 경계를 서고 있는 북서쪽 도로쪽 초소.사수는 곯아 떨어져 있었고, 혼자 경계를 보고 있던 그 고참 역시 혼자서는 졸음이 오기 마련으로, 사르르 눈이 감기는 찰나, 어떤 소리에 정신이 들더라고 합니다. 보통은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부대 바깥에서 일어나야겠지만, 그날은 부대 안쪽 초소 앞쪽 길(초소 앞은 시멘트 혹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는 평탄한 곳)에서 누군가 다가 오는 듯한, 전투화를 도로 바닥에 질질 끌면서 다니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이미 부대 안에서는 전투화 끈에 목매달아 자살했다던 사람의 귀신이 전투화를 끌고 다닌다는 괴담도 있었던지라, 혹 그 귀신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던 차, 그 소리는 점차 잦아들어 조용해지고.. 덕분에 정신이 그나마 깨 보니 헛 것을 들은거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부대 안, 초소 맞은편에 위치한 건물 지붕위에.. 하얀색 옷을 입은 무언가가 건물 지붕 위 끝(동쪽)에서부터 초소가 있는 서쪽 지붕 끝까지 (고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개가 달리는 듯한 속도로')자신을 보면서 달려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초소 특성상, 전투화 발을 한번 쿵 딛으면 초소 전체가 울리는 터라, 그 고참이 귀신을 보고 움찔하던 차에 졸고 있던 사수도 깼고...뭐냐고 묻는 사수의 말에, 그 고참은 앞 건물 지붕위에 귀신이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하지만 그 순간, 다시 지붕위를 보니 귀신은 온데간데 없었다고 하네요. 너도 잤냐? 라고 사수에게 깨지는건 둘째치고, 이제껏 알고 들었던 귀신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개가 달리는 속도로 달리는) 귀신을 목격한 것에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